[인터뷰] 노환규 전 의협회장, 대웅제약의 꼬리 자르기 의혹과 리베이트 구조적 문제 지적

국내 제약업계의 ‘리베이트’ 영업에 대해 “걸리냐, 안 걸리냐의 문제일 뿐”이라는 말이 있다. 제약사의 리베이트가 그만큼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돌려 말한 것이다.

그렇다면 제약업계가 리베이트 영업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중 하나를 꼽자면 국내 제약사와 다국적제약사의 비교 불가 체급이다.

수많은 오리지널 의약품은 다국적제약사가 보유하고 있다. 또 대규모의 연구 인력과 자본을 신약개발에 쏟아붓는다. 그 결과 전 세계 상장사 중 영업이익률 1위부터 10위까지를 다국적제약사가 차지하고 있다. 누구나 예상하는 애플이나 GM이 아니다.

슈퍼울트라파워의 다국적제약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은 역사, 부족한 자본과 인력을 가진 국내 제약업계가 정상적인 영업을 한다는 것이 애초 불가능에 가깝다. 일부에서는 그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리베이트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을 펴기도 한다.

골리앗과의 영업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이라고 해도 리베이트는 현행법상 엄연한 범죄행위이다. 이에 리베이트 영업을 근절하기 위한 노력이 제약업계 안팎에서 꾸준히 시도됐다. 리베이트쌍벌제, 일괄약가인하, 때로는 ‘대규모 검찰 수사’와 같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때마침 지난해부터 이어진 다국적제약사에 대한 검찰과 경찰의 리베이트 수사가 점점 그 폭을 넓히며 국내 제약사까지 리베이트 대상에 포함되고 있다는 소식이 무성하다.

리베이트가 결코 제약업계의 발목을 잡는 덫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업계 내부의 우려가 현실화 되는 셈이다. 그런데 리베이트에 대해서는 의사들도 할 말이 있다.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장을 지난 25일 그가 운영하는 의원에서 만나 리베이트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노환규 전 의협회장이 지난 25일 인터뷰에서 리베이트 사례와 구조적인 문제를 말하고 있다.
노환규 전 의협회장이 지난 25일 인터뷰에서 리베이트 사례와 구조적인 문제를 말하고 있다.

노환규 전 회장은 의약품 리베이트는 일부 의사들의 양심적인 문제가 아니라 없어지기 어려운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어 그 뿌리가 깊으며 일부 제약사들의 리베이트 형태는 매우 다양한 방법이 동원된다는 말로 이야기를 꺼냈다.

- 구조적인 문제라고 함은 무엇을 말하는가

국내 제약사가 주로 판매하는 복제약 값이 높게 책정되어 있다. 전문의약품값은 제약사가 아니라 정부가 결정한다. 그런데 개발비가 거의 들지 않는 전문의약품 가격을 정부가 높게 책정해 놓았으니 마진율이 높고, 높은 마진에서 리베이트를 제공해서 많이 팔리기만 하면 이익이 따라서 늘어나는 구조다.

이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리베이트는 사라지지 않는다. 정부는 의사들만 범죄자로 몰아갈 것이 아니라 이 구조적인 문제 해결에 집중해야 한다.

- 리베이트가 확산되게 된 배경은

리베이트는 다양한 방법으로 이뤄지는데 국내의 리베이트가 확산되는데 큰 계기가 된 것이 있다. 바로 리베이트를 의사가 아닌 지역 담당 영업사원에게 수당형식으로 지급한 것이다. 그로 인해 의사가 리베이트를 받지 않으면 영업사원이 가져가는 형식이 되었다.

의사가 돈을 안 받는 것과 그것을 영업사원이 가져가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이런 리베이트 지급방식이 리베이트 확산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 구체적인 사례로 국내 제약사의 리베이트 행태를 설명해달라

얼마 전 ‘지누스’라는 회사에서 의료기관에서 받은 정보를 빼돌려 다국적 회사에 판매해서 대표가 구속된 사건이 있었다. 지누스는 의료기관이 심평원에 청구하기 전에 자료를 받아서 삭감될 수 있는 부분을 찾아주는 삭감방지 프로그램인데 의료기관으로부터 자료를 받은 후 이를 삭제하지 않고 보관했다가 자료를 빼돌린 것이다.

그런데 이 지누스의 지분 상당 부분의 실소유주는 실제 대웅제약이다. 그리고 대웅제약은 월 이용비용이 수만 원에 달하는 지누스의 프로그램을 의원급 의료기관에 설치를 해주고 대웅제약의 약을 처방하면 그 프로그램 사용 비용을 대납해주었었다.

한때 지누스 프로그램의 사용기관이 1만여 개에 이르렀는데 대웅제약이 전체의 비용을 대납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런 식의 영업을 상당 기간 계속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리베이트쌍벌제가 발효된 이후에는 많이 위축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지누스 지분의 상당 부분을 자회사를 통해 대웅제약이 갖고 있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 그런데 최근 지누스가 개인정보를 빼돌려 대표가 구속되는 와중에도 대웅제약과의 연관성은 물론 이름조차 거론되지 않았다. 이점은 의문이다.

또 어떤 제약회사들은 의료기관의 마케팅 비용을 대납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여전히 리베이트를 제공하는데, 의사들이 요구하는 경우보다 제약회사들이 공격적으로 리베이트를 제안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얼마 전, 내가 개원했을 때에도 80만원 상당의 TV를 사주겠다고 어처구니없는 제안을 한 회사도 있었다. 구조적인 문제의 해결 없이 리베이트는 사라지지 않는다.

노 전 회장은 또한 “리베이트의 형태가 변하면서 곳곳에서 부작용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으로 ‘배달 사고’다.

-배달 사고는 정치권에서만 벌어지는 줄 알았는데 제약업계에도 발생한다니 놀랍다

리베이트를 하다 적발된 뉴젠팜의 리베이트 명단에 1200만원을 받은 것으로 적힌 의사가 자신은 절대 받은 적이 없다고 항의한 적이 있다. 그래서 조사해보니 뉴젠팜의 영업사원이 중간에 착복한 사실이 드러났다.

그 영업사원이 자신의 통장에 현찰로 입금한 금액이 확인된 것만 2억6000만원이고 실제로 5억원에 달할 것이라는 조사결과가 나와 충격을 주었다. 지난 2013년 신풍제약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었다. 실제로 리베이트 영업에서 이런 ‘배달 사고’가 비일비재하다.

노환규 전 의협회장이 지난 25일 인터뷰에서 리베이트 사례와 구조적인 문제를 말하고 있다.
노환규 전 의협회장이 지난 25일 인터뷰에서 리베이트 사례와 구조적인 문제를 말하고 있다.

지난해 제약업계는 한미약품의 쾌거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한미약품이 지속해서 R&D에 투자한 결과물인 신약이 세계무대에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한미약품의 성공으로 제약업계뿐만 아니라 바이오, 헬스케어 시장 등도 활기를 얻었다.

정부에서도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하고 또 법령제정과 규제 개선을 통해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나서고 있다. 국내 제약사도 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이어지면 제2의 한미약품이 나오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러나 노 전 회장은 최근 제약업계에 불고 있는 훈풍에 대해서는 긍정적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우려의 목소리도 냈다.

2010년, 한미약품은 의사들의 미움을 한몸에 받았다. 리베이트쌍벌제가 국회를 통과한 직후 의사들의 통장에 한미약품에서 현금을 송금하는 일대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미약품은 리베이트로 성장해온 대표적인 회사였는데 정부에 리베이트쌍벌제를 건의한 다섯 개 제약회사 중 하나로 알려짐으로써 의사들 사이에 한미약품 불매운동이 들불처럼 번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리베이트로 얼룩진 과거가 있다면 지금의 한미약품을 만든 계기도 ‘리베이트’였다고 노 전 회장은 말한다.

과도한 영업부서의 욕심이 의사들의 불매운동으로 이어지고 큰 매출의 타격을 입게 되자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은 이관순 연구소장을 사장으로 발탁시키는 결정을 내렸다.

 

대다수 제약회사가 여전히 영업 중심의 경영을 할 때 한미약품은 연구소장을 사장으로 발탁하는 과감한 결정을 내리고 신약개발에 몰두했다. 그 결정이 결과적으로 신의 한 수가 되었다. 전화위복이 된 것이다.

-리베이트 영업에서 R&D로 변경해 성공한 한미약품의 어디가 우려된다는 말인가

한미약품의 성공사례는 오너의 적극적인 의지와 연구소장 출신의 사장, 그리고 뛰어난 연구진이 이뤄낸 쾌거다. 그런데 이런 성공사례를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한미약품의 경우 다른 제약사보다 많은 연구개발비를 사용한 것은 맞지만, 해외 사례에 비춰본다면 여전히 열악한 환경에서 기적을 일군 것이다.

그런데 한미가 해냈으니 다른 회사들도 조금만 투자하면 신약개발이 가능하겠거니 라고 정부가 인식할 것이 염려되는 것이다. 열악한 투자로는 한미약품처럼 된다는 보장이 없다. 그래서 한미약품이 대박을 친 것이 기쁜 소식인 한편, 조금만 투자해도 이런 블록버스터급 대박을 만들 수 있겠다는 인식이 심어질까 봐 우려되는 것이다.

제약업계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할 근본적인 처방 없이 모두가 한미약품처럼 발전할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현재 노환규 전 회장은 오랜 칩거를 끝내고 건강세상네트워크 전 대표와 ‘환자의사연대’를 결성해 곧 활동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그에게 국내 제약회사들의 또 다른 리베이트 행태를 다시 들어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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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한 기자

전 대학병원 연구원. 'MBN 세상의눈', '용감한 기자들', 'EBS 다큐프라임' 출연. 내부고발·공익제보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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