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원협회가 지난 18일 ‘문재인 케어, 원점에서 재검토 하라’는 입장을 내놨다.

전문

문재인 정부가 지난 9일 모든 의학적 비급여의 건강보험 편입, 개인 의료비 부담 상한제 등을 골자로 하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 즉 문제인 케어를 발표했다. 올해부터 2022년까지 총 5년 6개월간 30조6000억원을 건강보험 재정에 투입해 2015년 63.4%인 건강보험 보장률을 70%까지 올리겠다는 것이다.

의료비 부담에 대한 국가책임을 획기적으로 강화하겠다는 정부의 발표를 반대할 국민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대책에 소요될 막대한 재원을 과연 조달할 수 있느냐다. 재원조달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여론조사 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11일 시행한 조사에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에 ‘공감한다’는 응답이 76.6%로 ‘공감하지 않는다’는 응답 17.5%보다 월등히 높았으나, 재원 조달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는 ‘재원 조달이 어렵다’는 응답이 50.3%로 나와 ‘재원 조달이 가능하다’는 응답(43.8%)보다 높게 나왔다. 이에 대한의원협회는 정부가 발표한 보장성 강화대책을 분석해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었다.

'문재인 케어' 발표하는 문재인 대통령(출처 YTN)


비급여 진료비 규모의 과소 추계
정부는 이 대책 시행으로 연간 13조5000억원에 달하는 비급여 의료비 부담이 4조8000억원으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정부는 비급여 규모가 13조5000억원이라는 근거자료를 제시하지 않았다. 일부 언론보도에는 2014년 15개 종합병원을 포함한 1400여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시행한 건강보험환자 진료비 실태조사를 토대로 추계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극히 일부 의료기관만으로, 그것도 건강보험환자만을 조사해 전체 비급여 규모를 제대로 파악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는 현재 OECD가 제안한 매뉴얼에 따라 매년 국민보건계정을 작성하고 있고, 이렇게 작성된 데이터는 검증을 거쳐 OECD에 등록된다. OECD는 각국의 의료비 규모를 비교하기 위해 국민보건계정 DB를 구축하고 매년 회원국의 통계를 ‘OECD Health Data’로 발표한다.

2016년 6월에 발표된 ‘2014년 국민보건계정’에 의하면, 2014년 총 국민의료비(경상의료비)는 105조원이고, 이 중 가계직접부담금은 38조7000억원(36.8%)이며, 가계직접부담금 중 법정본인부담금은 13조8000억원, 비급여 본인부담금은 24조9000억원으로 나왔다. 이처럼 공신력 있는 국가공인통계가 버젓이 있음에도 왜 일부 의료기관 대상의 건강보험환자 진료비 실태조사 결과를 추계한 자료를 사용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지난 6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의료분류체계실장이 보건복지포럼에 기고한 ‘국민의 적정 부담을 위한 비급여 관리 방향’에도 “국민보건계정 자료에 의하면 2014년 비급여 부담금은 무려 24조9000억원에 달하며 이는 법정 본인부담금(13조8000억원)의 180% 수준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2013년 5월 국회예산정책처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에 따른 재정 소요 추정 및 지불보상체계·수가계약방식의 개선방안’ 연구용역보고서에 의하면, 2011년도에 이미 건강보험 비급여 본인부담 총액이 21조600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대한의원협회 제공


이번 보도자료에 2014년 가계직접부담 의료비 비율이 36.8%라고 했는데, 이 역시 국민보건계정에서 인용한 수치이다. 결국, 정부가 발표한 13조5000억원의 비급여 규모는 국가공인통계에 나온 24조9000억원의 54%에 불과하다. 비급여 규모의 과소 추계는 재정소요액의 과소 추계로 이어져 결국 건보재정 파탄의 중요한 단초가 될 것이다.

보장성 강화 일부 항목의 재정 소요 내역 추계
대한의원협회는 문재인 케어의 보장성 강화 항목 중 3대 비급여와 개인 의료비 부담 상한제 등 극히 일부 항목의 재정 소요 내역을 추계했다. 정부는 국민 부담이 큰 3대 비급여(선택진료·상급병실·간병)를 실질적으로 해소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3대 비급여 해소에만 총 21조8000억원이 소요되고, 환자본인부담금을 제외한 건강보험 지출액만 무려 16조5000억원이 추계됐다.

2014년 기준 연간 선택진료비 총액은 9879억원으로서 선택진료비가 폐지되고 수가 신설·조정 등을 통해 적정 보상할 경우, 신설된 수가의 환자 본인부담률을 30%라고 할 때 5년간 건강보험 소요액은 3조2000억원에 달한다. 2014년 기준 상급병실 입원료 본인 부담은 9879억원이며, 환자 본인부담률을 30%라고 할 때 5년간 건강보험 소요액은 3조5000억원에 달한다.

2015년 1월 ‘병원경영·정책연구’에 게재된 ‘입원환자에 대한 포괄간호서비스 제도 도입을 위한 과제’ 논문에는 2013년 기준으로 급성기 의료기관의 연간 소요재정으로 총 2조4729억원으로 추계했다. 따라서 간호·간병 통합서비스의 환자 본인부담률을 20%라고 할 때 5년간 총 9조9000억원으로 추계됐다.

정부는 소득 하위 50% 계층에 대한 건강보험 의료비 상한액을 연 소득 10% 수준으로 인하해, 향후 5년간 약 335만명이 추가로 본인부담상한제 혜택을 받게 되며, 현재 기준으로 본인부담상한제를 적용받는 대상자도 연간 40~50만원의 추가적인 의료비 지원을 받게 된다고 발표했다. 2016년에 61만4511명이 1조1758억원의 본인부담상한제 혜택을 받아 1인당 지급액은 191만원이었다. 이 금액을 적용한 결과 5년간 총 7조8000억원이 추계됐다.

또한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중증질환 재난적의료비 지원사업 효과평가 및 제도화 방안’ 연구보고서에 의하면, 의료급여·차상위·건강보험 대상자 모두를 대상으로 재난적 의료비 사업을 제도화할 경우 연간 2839억원이 소요된다. 건강보험 상위 5분위를 제외한 경우, 5년간 1조3000억원이 소요되는 것으로 추계됐다.

대한의원협회 제공


결국 정부 재정 투입액 30조6000억원 중 3대 비급여, 본인부담상한제 확대, 재난적 의료비 지원사업 제도화 등의 5개 항목에만 무려 25조6000억원의 건보재정이 소요되는 것으로 추계된 것이다. 그렇다면 남는 돈은 단 5조원에 불과하다. 이 돈으로 MRI·초음파 급여화, 3800여개 비급여의 예비급여화, 치매국가책임제, 노인 틀니·치과임플란트의 본인부담률 인하, 15세 이하 입원진료비 본인부담률 인하(5%) 등의 보장성 강화 사업을 모두 다 시행할 수 있다는 말인가. 정부는 각 보장성 강화 항목 당 소요되는 상세 추계내역을 즉시 공개해야 할 것이다.

건강보험지출 급증 예상을 무시한 문재인 케어
정부는 건강보험재정 누적적립금 21조원 중 10조원과 국고지원금 확대, 지출관리 강화 등을 통해 30조6000억원의 소요재정을 충당하겠으며, 국민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보험료율 인상을 과거 10년간의 평균 수준(3.2%)에서 관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재원조달 계획은 건강보험재정 지출이 급증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올해 3월 7일 기획재정부의 2016~2025년 8대 사회보험 중기재정 추계 결과 보도자료에 의하면, 고령화로 인한 노인 진료비 증가 등으로 건보재정 지출이 연평균 8.7%씩 증가해 2024년 100조원을 돌파하고, 건강보험 당기수지는 2018년부터 적자로 전환되고 적립금(2017년 21조원)도 2023년경 소진될 전망이다. 지난 7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간한 ‘인구구조 변화와 사회보험 장기 재정전망’ 보고서에서도 고령화 등 인구변화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등으로 2020년 19조원의 적자가 발생하고, 2025년에는 한해 적자만 55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처럼 정부 기관에서조차 노인 진료비 급증으로 2018~2020년경부터 적자가 발생하고, 건강보험 적립금 21조원도 2023년경 소진될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정부는 가만 놔둬도 자연 소진될 것이 확실한 적립금을 활용해 보장성 강화대책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더군다나 정부는 건강보험 국고지원금 확대 계획을 밝히지 않고, 건강보험료 인상률도 이전 수준으로 관리하겠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많은 소요재원을 건강보험 지출관리만으로 충당하겠다는 것인가.

노인 '임플란트' 건강보험 적용 확대(출처 YTN)


문재인 케어는 꼼수 대책
이번 문재인 케어의 핵심은 비급여를 급여화 또는 예비급여화해 가격과 진료량을 통제함으로써 보장률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즉 정부는 전체 의료비 총량에서 비급여 진료비를 줄이면, 상대적으로 보장률이 올라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의 보장성 강화 대책은 정상적이지 않고 효과가 입증된 것도 아니다. 보건복지부조차 2015년 2월 ‘2014~2018 건강보험 중기보장성 강화 계획’에서 “우리나라 국민의료비에서 차지하는 공공의료비의 비중은 2012년 54.5%로 OECD 평균 72.3%에 미흡해 가계 부담이 큰 국가”라고 밝힌 것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즉 가계부담이 큰 것은 비급여 때문이 아니라 바로 정부재원과 건강보험 수입으로 구성된 공공의료비율이 매우 낮기 때문이다.

공공의료비율만 높으면 가계부담이 감소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정부는 공공의료비 비중을 높일 생각은 별로 하지 않고 오로지 비급여 통제에만 집중하고 있다. 이는 전혀 올바른 방향이 아닌 꼼수 대책임을 잘 보여준다. 결국, 보험회사들 배 불릴 일만 하는 것이다. OECD Health Data에서 제시하는 의료보장률은 국민의료비 대비 공공의료비(공공재원)의 비율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이 공공의료비율을 건강보험 보장률로 호도하고 있다. 일부 단체에서는 건강보험 보장률을 OECD 선진국처럼 80%, 90%로 상향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나, 이 수치는 바로 공공의료비율임을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

이번 정부의 보장성 강화대책은 비급여 진료비 규모와 재정소요액을 과소 추계했을 뿐만 아니라, 노령화 및 보장성 강화로 인한 의료비 급증 예상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재난적 부실 정책이다. 지금 상태에서 문재인 케어를 강행할 경우, 의료계의 재정 위기 경고를 무시하고 강행했으나 1년도 되지 않아 건강보험재정 파탄을 초래했던 의약분업 사태와 같은 일이 되풀이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국민은 건강보험료 폭탄을 맞게 되고, 대한민국 의료는 좌초하게 될 것이다. 대한의원협회는 문재인 케어를 원점에서 전면 재검토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는 바다.
김승한 기자

전 대학병원 연구원. 'MBN 세상의눈', '용감한 기자들', 'EBS 다큐프라임' 출연. 내부고발·공익제보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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