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난 편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대한민국 국민은 OECD 국가 중에서도 꽤 오래 산다(순위 11/34).

대한민국 국민은 다른 OECD 국민보다 의료서비스를 2배 이용을 많이 한다. (외래도 2배, 입원도 2배) 병·의원을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높은 의료서비스 접근성’은 국민수명연장에 크게 기여했다.

의료서비스를 2배 많이 이용하면서도 의료비는 OECD 국가들의 3분의 2가 채 안 되는 64%밖에 안 쓴다. 그 이유는 의료비 수준이 매우 낮기 때문이다. 의료비 수준이 낮은 것은 정부가 건강보험수가를 원가 이하(원가의 70% 수준)로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의료비가 이렇게 싼데도 의료비 때문에 재정 파탄에 빠지는 사람들이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많다. 그 이유는 “다른 나라는 의료비를 국민이 골고루 나누어 부담하는데 즉 정부 부담분이 많은데 우리나라는 의료비를 개인의 책임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몇 가지 의문이 생긴다.

1. 정부는 왜 건강보험수가를 원가 이하로 유지했는가?
2. 그렇다면 의료기관들이 다 망했어야 했는데 의료기관은 어떻게 살아남았는가?
3. 의료비가 싸다는데 여전히 의료비가 부담스러운 이유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보자.

1. 정부는 왜 건강보험수가를 원가 이하로 유지했는가?

현재의 건강보험 제도는 1977년 박정희 대통령이 시작한 의료보험제도로 시작됐다. 당시 대한민국은 매년 10%가 넘는 고속성장을 거듭할 때였지만 (1970~1977년 연평균 경제성장률 10.66%, 통계청) 여전히 국민소득은 1인당 GDP가 1000달러를 갓 넘는 수준으로 우리는 여전히 가난한 약소국가였다(1977년 1034달러).

국가재정도 열악하고 국민의 경제력도 취약한 나라에서 국가 의료보험제도를 시작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어떻게든 국가 의료보험제도를 시작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렇게 무리하게 시작한 이유에 대해 혹자는 북한과의 체제경쟁 때문에 서둘러 시작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박정희 정부는 정부도 국민도 모두 돈이 부족한 상태에서 의료보험제도를 시작하게 됐다.

그러다 보니

저부담(적게 거두고),
저보장(적게 보장하고),
저수가(의료기관에 적게 지불하는)라는

이른바 3저(低) 시스템의 원칙에 따라 의료보험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정부가 돈이 없다 보니 공공의료기관을 짓고 의사들의 교육비를 감당하기보다는 민간의료기관과 민간의사들에게 국민의 의료서비스를 위탁하고 그 비용만 통제하는 방식으로 가게 됐다. 현재 전체 의료기관 중 94%가 민간의료기관이다.

2. 정부는 어떻게 건강보험수가를 원가 이하로 유지할 수 있었는가? 그리고 병·의원은 어떻게 살아남았는가? 편법과 비급여

1977년 박정희 대통령이 처음 의료보험을 시작했을 때부터 의료보험수가는 관행수가 즉 평상시 받던 비용의 50%도 채 안 되는 비용에서 시작됐다. 의료기관들은 불만이었지만 크게 반발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처음 의료보험제도가 시작될 때에는 500명 이상의 큰 기업에 다니는 직장인들만 대상이 됐고 이에 따라 의료보험가입자가 전체 국민의 5%도 채 안 됐기 때문이다. 의료기관들은 5%에서 손실을 보더라도 나머지 95% 환자에게서 이익을 만들면 되기 때문이다.

대한의원협회 제공

그런데 의사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가 생겼다. 의료보험 대상이 점점 빠르게 늘어나더니, 노태우 대통령 시절인 1989년에는 의료보험 가입자가 전 국민이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강하게 반발을 했다. 그러나 시작부터 첫 단추를 잘못 꿴 ‘원가 이하의 낮은 건강보험수가’는 바뀌지 않았다. 정부는 매년 의료수가를 얼마나 올려줄지를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가 아닌 경제기획원(현 기획재정부)에 맡겼다. 건강보험수가의 결정권을 국민의 건강을 담당하는 부서가 아닌 경제부서에서 관장하는 것은 의료보험이 처음 시작된 1977년부터 40년이 지난 2017년 현재까지 바뀌지 않았다.

건강보험 재정을 유지하기 위해 국민으로부터 건강보험료를 징수해야 하는데 이것은 강제로 걷는 일종의 세금 성격(준조세)을 갖고 있기 때문에 경제부서에서 관장하도록 하는 것이다. 경제부서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건강보험 제도의 운영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정부의 예산지출을 줄이는 데만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에 의사들의 적정수가 인상 요구를 완강히 무시해왔다. 한 마디로 그냥 ‘개’무시했다.

건강보험수가는 원래 건강보험공단과 의사협회 등 각 의료단체와의 계약에 의해 결정되는데, 건강보험공단의 안 즉 정부안을 의료단체가 거부하면 건강보험수가의 인상 폭이 오히려 삭감되는 페널티를 받게 된다. 이 때문에 의료단체는 울며 겨자 먹기로 계약서에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른바 갑질 중의 갑질인 셈이다.

이로 인해 병·의원들은 엄청난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출처 대한신생아학회

신생아 집중치료실을 예로 들어보자. 2012년 신생아학회는 신생아중환자실 병상 1개당 연간 평균 5784만2229원의 적자가 발생한다고 밝혔다. 신생아중환자실 병상을 20개를 이용하면 연간 11억원이 넘는 적자가, 40개를 운영하면 연간 20억원이 넘는 적자가 발생한다. 이로 인해 지난 5년간 전국의 신생아실은 914개, 신생아중환자실은 231병상이 축소됐다.

이 같은 현상은 국내 신생아중환자실의 생존율에서도 차이를 보이는데 우리나라 신생아의 NICU 병상 생존율은 70% 수준으로 일본이나 미국보다 매우 낮은 수치를 보인다. 병상 한 개당 1년에 약 5800만원의 적자가 발생한다면, 이게 정상인가?

그렇다면 이렇게 적자가 심한 상태에서 병·의원들은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병·의원들은 다양한 방법(대부분 편법)으로 살아남았고, 정부는 그것을 묵인해왔다.

병·의원 생존전략 비교

3. 의료비가 싸다는데 여전히 환자들에게 의료비가 부담스러운 이유는? 정부가 책임지지 않는 비급여

의료수가(건강보험수가)가 원가의 70%라는 말의 뜻은 무엇일까? 우리는 ‘건강보험수가’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건강보험수가란 한마디로 “정부가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모든 의료행위에 대해 매겨놓은 정찰가격”이다.

즉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의료서비스는 정부가 가격을 매겨놓았는데 그 수준이 원가의 70%라는 뜻이다.

위암의 수술적 치료를 예로 들어보자.

사진=로봇수술

위암의 가장 기본적 수술방법은 칼로 째고 하는 방법이다. 가장 복잡한 고난도의 수술방법은 배꼽 부위에 작은 구멍을 하나 내어 로봇팔을 이용해 수술하는 방법이다.(로봇수술) 칼로 째고 하는 수술방법은 고통스럽고 회복 기간이 긴 반면 건강보험이 적용되고 치료비는 수십만원에 불과하다. 그 가격을 정부가 결정하고, 의료기관은 정부가 결정한 그 가격만 받아야 한다. 이 금액이 원가 이하라는 뜻이다. 그러나 로봇팔을 이용해 수술하는 로봇수술은 고통이 매우 적고 회복 기간이 짧지만,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이른바 비급여 항목이다. 치료비는 정부가 아닌 병원에서 결정하고 가격은 수백만원에서 1000만원을 웃도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대목이 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째고 하는 수술방법’의 경우 환자는 총치료비의 20%만 내면 되는데 ‘로봇수술’을 선택하는 경우 건강보험공단이 1원도 책임지지 않고 환자 본인이 100%를 지불해야 한다. 의료기관은 환자에게서 받으나 정부에서 받으나 매한가지인데, 환자에게는 그 부담이 크게 다르다는 것이다.

필자가 직접 그린 그림(출처 노환규 블로그)

즉, 정당한 의료수가(건강보험수가)를 정부가 원가 이하로 눌러놓아 발생하게 된 손실을 극복하기 위해 의료기관들은 로봇수술 등 다양한 비급여 항목들에 대해 손실을 극복하고도 남을 만큼의 비용을 책정했는데 이 때문에 환자들의 부담이 커지게 된 것이다.

필자가 의협회장 당시 서울 소재 모 대학병원에 가서 MRI를 찍고 받은 명세서를 봐도 마찬가지다. 130만원 가까운 진료비를 냈지만, 건강보험공단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모두 환자 자부담으로 진료를 받았다.

4. 비급여로 인해 높아진 의료비 부담, 실손보험 시장만 키워

비급여 진료비가 커지자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상황이 벌어졌다. 비급여 진료 때문에 환자의 부담이 너무 많이 늘어나게 된 것이다. 그러자 정부는 민간보험사들이 기존에 판매하던 정액보험상품(일정액을 보상하는 보험상품, 예로 암 진단을 받으면 3000만원을 지급하는 암보험) 외에 실제 환자에게 발생하는 실제 손해를 보험금으로 지급하는 ‘실손의료보험’의 판매를 허용했다.

민간보험사의 실손의료보험 판매가 처음 허용된 것은 김대중 대통령 시절인 1999년이다. 입·통원 의료실비보험이 10년 만기형 상품으로 처음 나왔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 때 의료실비보험의 보장 기간이 80세 만기로 확대됐다. 이명박 대통령 때인 2008년 의료실비보험 판매가 생명보험사에도 허용됐는데 그 이전에는 화재보험사만 판매할 수 있었다. 2009년 10월부터 의료실비 보장을 표준화했고 보장 한도를 100%에서 90%로 축소했다. 2011년부터는 모든 약관을 통일했고 2017년 현재 약 3500만명 국민이 의료실비에 가입했다.

필자가 직접 그린 그림(출처 노환규 블로그)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민간 의료보험에 가입하고 있는데 기본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국민건강보험과 민간 의료보험이 공존하는 구조를 잘 만들어 나가는 것이 과제다.
-2012년 6월 1일 <중앙일보> 보도

누구의 발언이었을까. 임채민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의 발언이다. 즉 민간보험의 활성화는 정부가 원했던 구조다.

5. 정부가 왜곡된 구조를 유지한 이유

1977년 대한민국에 처음 정부 주도의 의료보험제도가 시작되었을 때는 정부도 국민도 돈이 없어서 저부담·저보장·저수가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정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경제 규모가 세계 10위권이 된 지금까지도 낮은 보장과 낮은 수가, 그러면서도 국민의 높은 의료비 부담 체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분명 잘못되고 왜곡된 것이다.

대한민국은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뤘고 그 과정에서 잘못된 건강보험을 바로잡을 기회들이 있었다. 그러나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왜 정부는 이런 비정상적인 구조를 원했고 유지해왔을까. 그것은 정부라는 조직이 기본적으로 정치인이 운영하는 정치적 집단이기 때문이다. 즉 정치적 목적으로 지속해서 국민이 속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국민이 속기를 바랐다니 이게 무슨 말일까.

건강보험료는 급여나 소득에서 강제로 떼는 것이기 때문에 건강보험료의 인상은 조세저항을 일으킨다. 반감을 불러일으키고 정치인의 입장에서는 표가 떨어지는 일이다. 그런데 의료실비보험을 위해 내는 민간보험료는 광고에 속아서 자기 뜻으로 선택적으로 가입하는 것이기 때문에 “언젠가 내가 낸 돈보다 더 많은 보상을 받게 될 거야”라고 생각을 하게 되어 느끼는 반감과 저항이 적다.

정부는 이점을 노렸다. 보장성을 높이려면 건강보험료를 올려야 하는데 욕먹는 건강보험료 인상을 피하면서도 낮은 보장성의 문제를 국민과 민간보험사들 사이에서 알아서 하라고 떠넘긴 것이다.

국민에게는 이익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민간보험사들이 거둬들인 보험료 중에서 보험상품을 모집하고 운영하기 위해 쓰는 사업비의 비중은 건강보험공단이 쓰는 사업비 비중의 7배에 달한다. 그리고 국민이 의료실비보험으로 내는 돈은 건강보험료의 3배에 달한다. 결국, 정부는 생색만 내고 환자와 의사는 속거나 핍박을 받는 구조였다.

필자가 직접 그린 그림(출처 노환규 블로그)

한국보건사회연구원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2014년 발표한 ‘한국의료패널 분석보고서’를 보면 실손보험 포함 민간의료보험 가입률은 2012년 기준 국민 10명당 8명꼴인 80.4%, 가구당 가입한 민간의료보험 개수는 4.64개, 매월 보험료는 월평균 34만3000원 이었다. 2015년 기준 가구당 건강보험 평균 보험료가 9만4000원이었으니 민간의료보험료가 건강보험료의 3배 이상에 달했던 셈이다. 그 와중에 건강보험공단은 매년 차곡차곡 돈을 쌓아두고 있었다.

6. 그 와중에 늘어난 건강보험 흑자

그러면서도 정부는 건강보험료를 슬그머니 그리고 꾸준히 올렸다. 급속한 고령화로 인해 의료비지출이 급증하는 가운데서도 정부가 운영하는 건강보험공단은 2011년 이후 매년 엄청난 흑자를 내기 시작했다.

늘어나는 건강보험 흑자(출처 국민건강보험공단)
늘어나는 건강보험 흑자(출처 국민건강보험공단)

그런데 2016말 기준 약 20조원의 누적흑자는 실제 수치가 아니다. 실제 수치는 이를 훨씬 웃돈다. 위 수치는 마땅히 정부가 지불해야 하는 돈을 미지급한 상태에서의 흑자분이다.

정부가 내지 않은 돈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국고지원금이고, 또 하나는 공무원들의 건강보험료다. 2007년 제정된 건강보험법에 따라 정부는 (2017년 말까지 한시적으로) 건강보험재정의 20%(14%는 국고의 일반회계에서, 6%는 건강증진기금에서)를 지원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정부는 건강보험예산을 낮춰잡는 방법으로 매년 15~17% 정도만 지원을 해왔다. 정상적으로 냈을 것을 기준으로 하면 미납금의 규모만 10조원을 훨씬 웃돈다.

7. 비정상적인 왜곡된 건강보험제도를 개혁하겠다는 ‘문재인 케어’

‘문재인 케어’는 이런 건강보험의 왜곡된 문제점을 총체적으로 개선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나온 것이다. 정부가 그동안 쌓아왔던 흑자재정을 풀어서 국민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참 좋은 취지이고 박수를 받아 마땅한 일이다.

그런데 왜 의사들은 반발하는 것일까. 필자는 왜 비판을 하는 것일까. 더욱이 필자는 의사협회장 시절 줄곧 “왜곡된 건강보험을 개혁하자”고 주장해왔고, 그 방향은 지금의 문재인 케어와 거의 정확히 일치하는데 왜 강력하게 문재인 케어를 비판하는 것일까.

그 이유가 매우 중요하다.

다음 편에 계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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