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렉터파이로 잘 알려진 화장품 전문가 피현정은 유튜브에서 성분표를 바탕으로 나쁜 제품과 착한 제품을 판별해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주로 ‘화해’ 앱에서 사용하는 ‘20가지 주의성분’과 ‘알레르기 유발성분’이 그 기준이 된다.

20가지 주의성분이 몇 개 이상이면, 혹은 알레르기 유발성분이 하나라도 있으면 그녀는 거침없이 ‘탈락’을 외친다. 이런 기준에 방송 때마다 대다수의 제품이 우수수 탈락한다. 심지어 특정 제품에 대해서는 성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슈렉’이나 ‘덩템’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피현정의 유튜브 채널 '디렉터파이' 방송 한 장면

이렇게 성분으로 ‘나쁜 제품’을 걸려낸 후, 그 다음은 품목 별로 효과와 가성비를 따져서 ‘착한 제품’을 선정한다. 화면 앞으로 제품을 내밀며 그녀는 말한다.

여러분, 요거 쓰세요. 성분도 괜찮고, 가격도 괜찮고. 요거 쓰시면 돼요.

올해 1월부터 방송된 <겟잇뷰티 2018>에서도 비슷한 광경을 볼 수 있다. 노(No) 협찬을 내세운 ‘뷰라벨’이라는 코너에서 4명의 전문가들이 나와 최고의 화장품을 선정한다. 수십 개의 제품들이 컨베이어벨트로 줄지어 이동한다.

그러다가 이들이 정한 ‘유해성분’ 9가지가 함유된 제품은 쓰레기통을 연상시키는 박스 안으로 떨어진다. 이렇게 수십 가지 제품을 떨어뜨린 후, 살아남은 나머지 제품을 임상테스트해 최고의 ‘뷰라벨’ 제품을 선정한다.

겟잇뷰티 뷰라벨 코너의 한 장면

이 두 가지 사례만 보아도 지금 이 시대에 화장품 전문가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다. 케모포비아로 불안이 가득한 시대, 이들은 위험으로부터 소비자를 보호하는 역할을 자처한다. 이들은 성분표로 ‘위험한 제품’과 ‘안전한 제품’을 판정하고 ‘베스트제품’을 선정해 정답을 던져준다.

화장품 전문가들이 왜 너나 할 것 없이 화장품 재판관을 자처하며 모든 정답을 알고 있다는 태도를 취하는지는 데이비드 프리더먼이 <거짓말을 파는 스페셜리스트>(원제 Worng)에서 언급한 ‘오즈의 마법사 증후군(Wizard of Oz Syndrome)’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권위 있고 대단해 보이는 사람 앞에 서면 정신이 마비돼 그 사람이 하는 말을 전적으로 믿고 따르는 현상을 뜻한다. 도로시가 오즈의 마법사에 홀려 서쪽 마녀의 빗자루를 가지러 간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는 천막 뒤에 앉아있는 초라한 할아버지였지만 가면과 화술, 특수효과가 그를 위대하고 힘 있는 마법사로 만든 것이다.

오즈의 마법사는 카리스마 있는 외모와 뛰어난 화술로 오즈를 지배했으나 실제로는 서커스단에서 이런 저런 기교를 배운 초라한 노인이었다

우리 모두에게는 똑똑하고 멋있어 보이는 전문가가 확신에 차서 말하면 그 말을 전적으로 믿으려하는 심리가 있다. 특히 주장이 짧고 쉽고 명쾌하며, 간단하고 파격적인 해결책을 던져주면 그 전문가에게 더욱 신뢰를 갖는다. 조금이라도 복잡하게 설명하거나 결론이 모호한 말을 하는 전문가는 대중을 사로잡을 수 없다. 반드시 간단명료해야 하며 그것만 따라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확신을 주어야 한다.

TV에서 보는 수많은 건강쇼를 보면 알 수 있다. 인기를 누리는 쇼닥터들, 건강전도사들은 “양파에 항암효과가 있다”느니 “병아리콩을 먹으면 살이 빠진다”는 식의 파격적인 주장을 펼친다. 이렇게만 씻으면 도자기피부가 된다, 이것만 바르면 20년 동안이 된다 등의 주장을 펼치는 미용 전문가들도 있다.

실제로 대중은 이런 사람들을 좋아한다. 아니, 열광한다. 대중은 확실한 결론을 내려주는 사람, 쉬운 해결책을 던져주는 사람을 전문가라고 믿는다.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쉽게 설명해주고, 간단하게 요약해주고, 이것만 지키면 다 잘 될 거라고 믿음을 주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러나 이런 전문가들이 정말로 다른 전문가들보다 더 뛰어나고 더 많은 지식을 알고 있어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진짜 전문가는 확신도 없고 해결책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표적으로 암과 다이어트를 생각해보자. 암 전문의들은 암을 예방하는 확실한 해결책이나 단 하나의 치료법을 주장하지 않는다. 다이어트를 전문적으로 연구해온 과학자들도 단 하나의 비법을 내세우지 않는다.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왜 진짜 전문가보다 지식이 얕은 전문가(?)들이 목소리가 더 큰 걸까. 심리학의 ‘더닝-크루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가 이를 설명해준다. 사람들은 아는 것이 별로 없을 때 오히려 확신한다. 경험이 많지 않고 아는 것이 없을 때는 자신이 갖고 있는 경험과 지식이 전부인양 착각해 확신에 차서 말하게 된다.

반대로 많은 경험과 지식이 쌓이면 늘 여러 가지 가능성, 오류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기 때문에 함부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신중하게 말한다. 그래서 진짜 과학자들의 말은 어렵고 지루하고 확실함도 없지만 사이비 전문가들의 말은 쉽고 간단하고 명쾌하다.

지식과 확신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더닝-크루거 효과. 그래프를 보면 아는 것이 별로 없는 초보 단계일 때 확신(자신감)은 가장 높다. 그러나 지식이 쌓이면서 확신은 곤두박질친다. 절망의 계곡을 방황하다가 그걸 딛고 일어서면서부터 서서히 지혜가 쌓여 점차 깨달음을 얻고 대가의 단계에 들어선다

화장품전문가들이 성분표만으로 위험한 제품과 안전한 제품을 가르고 베스트 제품을 선정해 정답을 던져주는 것이 어떤 점에서 오류인지 몇 가지만 짚어보자.

첫째, 물질의 안전은 단지 무엇이 들어있냐 안 들어있냐에 따라 결정되지 않는다. 파라벤이 적혀있으면 자동적으로 위험한가? 향료가 적혀있으면 위험한가? 이런 식으로 위험과 안전을 분류하는 것은 화학에 대한 몰이해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다.

화학에는 절대적 안전도 없고 절대적 위험도 없다. 상대적 안전과 상대적 위험이 있을 뿐이다. 독성이 강한 성분이 들어있다고 해서 그 자체로 제품이 위험해지는 것은 아니다. 독성이 강해도 양이 적으면 아무 해가 없고 오히려 필요한 기능을 수행해 이로운 역할을 할 수 있다. 파라벤, 향료, 색소 등이 모두 좋은 예다.

둘째, 위험을 따지기 위해서는 독성만 고려하는 것이 아니다. 양과 노출량, 노출방식을 고려해 유해성(hazard)과 위해성(risk)을 따져야 한다. 위에 언급한 화장품전문가들이 하는 말을 분석해보면 독성과 유해성, 위해성을 전혀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겟잇뷰티> 1회에서 안인숙이 올챙이 독성실험을 근거로 파라벤이 위험하다고 주장하는 장면은 코미디에 가깝다.

겟잇뷰티 뷰라벨 코너의 한 장면. 올챙이 독성실험을 근거로 파라벤이 위험하다는 주장을 내보내고 있다

이 논문의 제목은 <파라벤이 무당개구리 초기 배아의 발생, 유생의 생존, 운동성 및 변태에 미치는 영향>이다. 말 그대로 올챙이에 대한 파라벤의 독성을 알아보고자 하는 실험이다. 올챙이가 얼마큼의 파라벤을 먹어야 치사량이 되는지, 얼마큼을 먹을 때까지 성장에 영향이 없는지, 얼마큼 먹었을 때 어떤 기형이 나타나는지를 꼼꼼히 조사한 연구인 것이다.

인간에게도 파라벤 치사량이 있다. 50킬로그램의 성인이 한꺼번에 105g 이상을 먹어야 죽는다. 같은 체중의 사람이 소금을 먹을 경우는 한꺼번에 적게는 25g, 많게는 250g을 먹으면 죽는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엄마가 소금으로 아들을 죽인 사건도 있었다.

그러니 소금으로 당연히 올챙이 기형도 만들 수 있고 죽일 수도 있다. 소금은 허용치도 없이 화장품에 마음대로 쓰이는데, 왜 화장품 전문가들은 소금이 위험하다고는 말하지 않는가?

셋째, 이들이 베스트 제품을 선정하는 방식은 전혀 과학적이지도 상식적이지도 않다. 임상실험이니 테스트니 하며 겉으로는 과학의 옷을 입었지만, 과학은 이런 것을 과학으로 쳐주지 않는다. 화장품은 바르는 사람의 피부상태에 따라 반응이 제 각각으로 나타난다.

한 제품을 수십 명에게 바르게 해 통계를 내는 것도 아니고, 겨우 한 사람이 한 제품씩 바르고 결과를 측정해서 비교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전문가가 직접 써보고 발림성, 커버력, 발색력을 비교해서 순위를 정하면 그게 모든 사람에게 정답이 되는가? 특히 커버력과 발색력은 취향의 영역이 아닌가?

무엇보다 필자는 이들이 유해성분을 정하고 그에 맞춰 시중의 제품들을 필터링하는 방식이 사회적으로 ‘유해’하다고 생각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와 관련 과학자들, 화장품회사들을 믿지 말라는 강력한 메시지가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화장품 소비자들은 식약처 말이라면 콧방귀를 뀐다. 저명한 화학자가 설명을 해도 식약처의 대변자, 기업의 앞잡이라고 비난한다. 케모포비아가 무서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단순히 화학물질에 대한 공포에서 머물지 않고 정부와 제도에 대한 불신으로 확산되기 때문이다.

정부로서는 위험을 다루는 것보다도 국민의 불신을 다루는 것이 더 어렵다. 때로는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불필요한 조치까지 해야 한다. 생리대 사태가 대표적인 사례다. 불신이 아니었다면 그 많은 생리대를 전수조사하고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VOC 기준을 만들고 전성분을 공개하는 조치를 취할 필요가 없었다.

케모포비아는 화학물질에 대한 비이성적 공포와 더불어 정부와 제도에 대한 불신으로 많은 사회적 비용을 초래한다(그림 출처 https://blog.spotchemi.com/fighting-chemophobia-with-common-sense)

케모포비아로 불안이 극대화된 시대, 우리는 화장품 전문가들의 올바른 역할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과연 나쁜 성분, 쓰지 말아야 할 제품, 써야 할 제품을 꼭 집어주는 것이 이들의 바람직한 역할인가? 지금 당장은 이들이 제공하는 정보가 편리하고 달콤할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여기서부터 얻는 것은 안전이 아니다. 그저 잠시의 안심과 위안을 얻을 뿐이다.

게다가 화장품과 화학물질에 대한 편견만 가득 키워 오히려 케모포비아는 더욱 심해진다. 심지어 전문가들이 주는 정답을 받아만 먹다보니 이들의 조언 없이는 아무 것도 결정하지 못하는 사고불능의 상태에 빠지게 된다.

케모포비아는 화학의 문제가 아니라 심리의 문제다. 이것은 극복해야 할 공포의 문제이지 피해야 할 화학물질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의 저명 화학자인 미셀 프랜슬(Michelle Frnacl)은 케모포비아에 대해 “진짜 공포라기보다는 일종의 색맹(color blind)과 같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이 증상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자신들이 접하는 화학물질에 대해 완전히 ‘블라인드’ 상태이기 때문이다. 잘 알아서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몰라서 두려워하는 것이다.

결국 케모포비아의 핵심은 무지다. 따라서 케모포비아의 근본적 해결책은 화학에 대한 인식의 수준을 키우는 것이다. 이것은 화학물질로 인한 위험에 대한 대중의 전반적 이해수준을 높이는 문제이기에 결코 개인의 차원에 맡길 문제가 아니다. 학교 교육 및 대중 교육, 정부 차원에서의 제도, 다양한 경로의 소통,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한 과학자들의 관심과 끈질긴 커뮤니케이션 노력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의 활동은 바로 여기에 집중되어야 한다. 무엇이 위험하다, 안전하다를 판정하고 블랙리스트와 해답, 따라야 할 행동강령을 주입시키는 것이 아니라, 화장품과 화학의 관계에 대한 건강한 지식, 시중에 떠도는 루머, 괴담, 위험정보에 대한 독해력을 길러주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위험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능력이 향상되면 케모포비아는 저절로 치유된다.

지금 당장은 획기적인 변화를 기대하기 힘들다. 많은 사람이 전문가들이 던져주는 달콤한 해결책에 사로잡혀있기 때문이다. 변화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먼저 전문가를 소비하는 우리의 방식에 반성이 일어나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전문가의 말에 지나치게 의존해왔다. 그들이 하는 말을 검증 없이 그대로 믿었다. 깊이 있는 설명은 생략하고 오직 몇 줄짜리 해답만 얻으면 그걸로 만족했다. 전문가들이 이토록 피상적이고 가벼워진 데에는 우리의 탓이 크다.

우리가 그런 전문가만 좋아하고 일회적으로 이용하기를 반복했기 때문이다. 전문가에 대한 맹목적 의존을 그만두고 스스로 답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늘어날 때 진정한 변화가 시작된다. 일단 시작되면 그 속도는 생각보다 빠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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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모포비아
최지현

화장품비평가. 작가 겸 번역가. ‘뉴스위크’ 한국어판 번역위원을 지냈다. 2004년과 2008년에 두 차례 폴라 비가운의 ‘나 없이 화장품 사러 가지 마라’를 번역하면서 화장품과 미용 산업에 눈을 떴다. 이후 화장품비평가로 활동하면서 ‘헬스경향’, ‘한겨레’ 등에 과학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화장품의 기능과 쓰임을 정확히 알리고 있다. 지은 책으로 '서른다섯, 다시 화장품 사러 갑니다'(2020·세종도서 선정), ‘화장품이 궁금한 너에게’(2019), ‘나나의 네버엔딩 스토리’(공저), ‘명품 피부를 망치는 42가지 진실’(공저) 등이, 옮긴 책으로 ‘하루 30분 혼자 읽기의 힘’, ‘아무것도 못 버리는 사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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