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할 때 갑자기 숨차면 ‘비후성 심근증’ 의심···돌연사 위험

두꺼워진 심장이 피 뿜어내는 통로 가로막아
증상 일시적이고 진단 어려운 탓에 치료 놓치기 쉬워

3층집 계단을 오르다 갑자기 숨이 가빠 병원을 찾은 박정현씨. 그는 협심증 진단을 받고 3년간 약을 복용하다 최근 자신의 병이 ‘비후성 심근증’이란 걸 알게 됐다.

숨이 차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건 협심증과 같았지만, 심장 자체가 두꺼워져 심장 밖으로 피가 나가는 통로가 좁아져 있었던 게 원인이었다. 협심증은 심장혈관이 좁아지거나 막혔을 때 생긴다.

박씨처럼 자신도 모르게 비후성 심근증을 앓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다. 대략 인구 1000명당 2명꼴로 발병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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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국내에서 이 병을 앓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한 통계는 아직 없다. 평소에는 증상이 없는 경우가 많고, 있더라도 잠시 안정을 취하면 금방 회복되기 때문이다.

심장질환을 의심하고 병원을 찾아 심초음파 검사를 해도 정상인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결과가 나올 때가 많아 의사들 역시 진단에 애를 먹는 것도 이유 중 하나다.

삼성서울병원 비후성심근증클리닉 이상철 교수(순환기내과)는 “증상이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보니 환자들이 병을 인지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며 “진단 역시 까다로운 탓에 경험이 많은 의사가 꼼꼼히 살펴봐야 병을 발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비후성 심근증은 돌연사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국내에 보고된 한 논문에 따르면 지난 2007년부터 2010년까지 광주전남 지역 심혈관 질환 사망자의 약 7%가 비후성 심근증 환자라는 분석이 있다.

특히 운동선수의 경우 비후성 심근증으로 인한 사망 위험이 더욱 높다. 격렬한 운동 시 심장은 보다 많은 피를 뿜어내야 하는 데 비후성 심근증 환자는 피가 나가는 통로가 좁다 보니 심장이 더 많이 움직여야 한다. 더 많이 움직인 심장은 더욱 더 두꺼워지게 되는 등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위험을 키운다.

실제로 지난 2003년 카메룬 출신의 유명 축구선수 마크 비비앙 푀가 컨페더레이션스컵 대회에서 경기 도중 쓰러져 사망한 사건은 축구팬들 사이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일반인 역시 봄부터 마라톤대회 등 운동량이 급격히 늘어나게 되는데, 본인도 모르는 사이 두꺼워진 심장이 치명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만큼 주의가 필요하다.

비후성 심근증 환자는 맥박이 빨라지는 것을 제일 경계해야 한다. 격렬한 운동, 폭음 등은 절대 삼가야 하고, 사우나도 피하는 게 좋다.

치료 역시 곰곰이 따져보고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급격한 심장기능 이상으로 인한 돌연사를 예방할 수 있다. 숨이 차고 심장이 심하게 두꺼워져 있다면 심장을 안정시키는 약물치료가 진행되고, 돌연사 위험이 높다 판단되면 제세동기를 삽입할 수도 있다.

환자에 따라 거대해진 심장의 일부를 떼어내는 수술도 가능하다. 대동맥을 통해 수술기구를 집어넣어 피가 흐르는 통로를 막고 있는 심장근육 일부를 잘라내는 방식이다. 미국 심장학회도 수술이 가능한 환자에게는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으로 추천하고 있다.

최근 국내에도 이러한 치료법이 소개돼 일부 대학병원에서는 활발하게 수술이 이뤄지고 있는 중이다. 삼성서울병원 비후성심근증클리닉 김욱성 교수팀(심장외과)은 이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미국 메이요클리닉에서 수련을 받은 뒤 2013년 하반기부터 수술을 시작했다. 지난해 11월까지 수술 받은 환자 17명을 추적 조사한 결과 사망은 물론 합병증 발생도 없다. 모두 정상생활을 되찾았다.

김욱성 교수는 “비후성 심근증은 병을 인지하는 것이 치료의 첫 걸음”이라며 “내외과적 치료를 통해 충분히 극복 가능한 만큼 심장이 내는 이상신호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