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브란스, 국내 최초 베체트병 환자 심장이식 성공

대한민국 장기이식 분야의 새로운 발자취 기록 전망

희귀·난치성 질환으로 분류되는 베체트병 환자에 대한 국내 첫 심장이식 치료가 성공을 거뒀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심장혈관외과 윤영남·이승현 교수팀과 심장내과 강석민·심지영·오재원 교수팀은 “베체트병으로 인해 심장이식을 받은 남성이 4개월간의 회복단계를 마치고 최근 일상생활로 완전히 복귀했다”고 말했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심장혈관외과 윤영남 교수(사진 오른쪽)와 심장이식을 받은 베체트병 환자 이승영씨

우리나라 최초의 ‘베체트병 심장이식 환자’로 기록될 주인공은 이승영(50)씨. 이씨는 지난해 말, 세브란스병원에서 공여자의 심장을 이식받았다. 장기간의 재활·약물 치료과정을 거쳐 이달 초, 의료진으로부터 일상생활로의 완전복귀 가능 판정을 받았다.

이씨는 지난해 1월, 극심한 호흡곤란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하는 과정에서 베체트병을 알게 됐다. 평소 입안이 자주 헐고 아팠으나, 바쁜 일상 탓으로 여겨 소홀히 여겼던 것이 질환을 키우는 원인이 됐다.

정밀검사 결과, 베체트병에 의한 염증이 대동맥과 대동맥판막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침범했다. 대동맥 판막부전으로 인한 심한 호흡곤란과 폐부종, 대동맥박리증까지 동반한 상태였다.

이씨는 즉시 염증 손상 부위를 인공혈관으로 대체하는 수술을 받으며 세 차례 인공판막 교체수술과 면역억제제 약물치료를 꾸준히 받았지만, 심장혈관을 침범한 염증이 워낙 넓었기에, 호전을 기대하기 어려웠던 의료진은 심장이식을 결정했다.

심장이식 공여자를 기다리는 동안 이씨의 몸 상태는 점점 악화됐다. 염증 수술 부위의 다량출혈과 심정지가 찾아왔고 약해진 심장기능은 회복되지 않았다. 심장과 폐의 기능을 대신하는 체외막산소화장치(ECMO)에 의존하게 됐으며, 신장기능 저하에 따른 혈액투석 치료까지 병행했다.

응급상황에서 일시적으로 심장과 폐의 기능을 대신하는 인공심폐기 ‘에크모’

다행히 뇌사자의 심장을 이식 받을 수 있게 됐으나, 앞선 수술들로 장기유착이 극심했으며 작은 자극에도 출혈이 발생하는 몸 상태 탓에 의료진은 큰 부담을 안고 수술에 돌입했다.

의료진은 보다 철저한 수술계획을 세우고 철저한 준비과정을 거친 후 심장이식 수술을 시작했다.

이식수술 후, 장기간 이어진 회복단계에서도 의료진들은 맞춤형 심장재활치료와 염증을 막고 면역거부 반응을 억제 할 수 있는 약물치료에 정성을 다했다.

또한, 심장 외 다른 신체 부위의 베체트병 발현을 조기 진단하기 위해 류마티스내과·안과 같은 연관 임상과와의 협진을 통해 면밀히 추적했다.

심장이식과 회복 과정을 주도한 윤영남 교수는 “베체트병 염증이 심장 주변 주요 혈관으로 침범했을 경우, 생존율이 매우 낮다는 것은 학계의 정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내 최초 베체트병 환자에 대한 심장이식 시행으로 일상에 복귀시킨 것은 매우 큰 의미를 지닌다”며 “통증을 동반한 구강점막 궤양이 자주 생기거나 베체트병 진단을 받은 환자라면 특별한 증상이 없더라도 심장초음파를 포함한 정기적인 심혈관계 검사를 실시해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함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베체트병은 구강과 생식기의 궤양, 피부와 눈의 염증을 특징으로 하는 희귀한 전신성 염증 질환이다. 구강, 생식기 및 피부의 증상은 자연적으로 치유되기도 하지만 특별한 이유 없이 재발하기도 한다. 눈을 싸고 있는 외측 섬유건 막에 생긴 염증인 후포도막염(posterior uveitis)이 생기기도 한다. 이 외에도 관절, 혈관, 중추신경계, 소화기계에도 염증이 재발하기도 한다.

1937년 터키의 피부과 의사인 후루시 베체트(Hulusi Behcet)가 처음으로 재발하는 구강궤양, 외음부궤양, 눈의 홍채염을 하나의 증후군으로 묶어서 단일 질환으로 정의를 내리고, 동시에 원인으로 바이러스를 제시했다. 그의 이름을 따라 베체트병으로 불리게 됐다.

베체트병은 서구에서는 아주 희귀한 질환이다. 이 질환을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중동과 아시아에 사는 사람, 즉 지중해와 동아시아의 고대 무역로인 실크로드 지방에 사는 사람들이다. 터키인들에게서 이 질병의 발생 빈도가 가장 높은데, 10만명당 80명에서 370명의 비율로 발생한다고 한다.

일본, 한국, 중국, 이란,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베체트병의 발병 빈도가 높은 편이다. 일본에서는 이 질환이 후천적으로 실명을 하게 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간주한다. 이 질환은 주로 30~40세 사이에 발병한다. 일본, 한국에서는 여성에서 남성에 이 질환의 발생 빈도가 높지만, 중동국가에서는 남성에게서의 발생 빈도가 더 높고 특히 젊은 남성에서 예후가 나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베체트병의 정확한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유전적 소인, 면역이상 등 복합적인 요인이 관여하리라 추측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