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폭행 방치하는 병원장도 공범

필자는 마지막 국민학교 세대였다. 국민한교 5학년이 되자 선생님들은 훈육이라며 학생들에게 회초리를 들기 시작했다. 체벌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었겠지만, 40여명이나 되는 학생들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그게 제일 쉽고 빠른 방법이었을 것이다.

중학교에 올라가서부턴 체벌은 더욱 일상화됐다. 등굣길 교문 앞에는 늘 학생부 선생님이 몽둥이를 들고 서 있었고, 몇 명의 학생들은 교문 구석 한쪽엔 ‘엎드려뻗쳐’를 받는 모습은 낯선 풍경이 아니었다. ‘선도’라는 명목에 행해지던 관습이었다.

그 시절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가하는 체벌은 미디어에서도 당연한 문화로 소개했다. 선생이 학생들에게 매타작을 한다거나 군대에서 선임이 후임에게 폭력을 가하는 장면은 늘 익숙한 모습이었다. 드라마 <종합병원>에서도 실수를 저지른 레지던트가 의료과장에게 구둣발로 정강이를 맞는 모습 역시 시빗거리도 되지 못했다.

체벌은 ‘장유유서’라는 유교 문화와 일제강점기 시절 주입된 일본식 군국주의, 1960~80년대 군부정권을 거치면서 생긴 전 사회의 ‘병영문화’가 복합적으로 뒤섞이며 탄생한 악습이다.

2000년대 들어 정치사회가 발달하고, 사회문화도 전체보다는 개인을 중시하는 경향이 확산하면서 ‘체벌을 금지하자’는 여론은 빠르게 퍼졌다. 이제는 체벌 금지로 인해 교내 선생님들이 학생 지도에 있어 애를 먹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하지만 체벌이 당연시되는 조직이 아직 남아 있다. 여전히 ‘상명하복’이 유지되고 있는 조직인 의료계다. 그중에서도 수련의료기관에서 행해지는 전공의 폭행은 아직도 관습으로 남아있다.

지난 2017년에는 한양대병원에서 근무하는 김모 교수가 전공의를 폭행해 물의를 빚었다. 그는 전공의가 수술보조를 제대로 하지 못하자 생리식염수를 전공의 얼굴에 뿌렸다. 또 정강이를 발로 차고 주먹으로 가슴을 때리는 폭행도 있었다. 폭언은 예사였다. 이렇게 김모 교수에게 당한 피해자만 해도 7명에 달했다.

전공의 폭행은 한양대병원 한 곳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부산대병원 조교수 2명은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전공의 11명에게 수차례 폭행을 하다 적발됐다. 이들에게 맞은 전공의들은 온몸에 피멍이 들고 고막이 터졌다.

부산대병원 교수, 전공의 상습 폭행(출처 연합뉴스TV)

최근 세브란스병원 전공의 12명은 지난달 A교수의 폭언 등을 문제 삼아 학교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이 교수는 지난 2015년에도 전공의 폭행으로 물의를 일으킨 교수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의료계에서는 왜 폭력이 근절되지 않을까.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므로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될 수 없어 폭력과 폭언을 행사하더라도 지도한다는 왜곡된 교육관이 팽배하다.

또 하나는, 수련 과정은 ‘도제 시스템’으로서 ‘갑과 을’이 명확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일종의 관습이다. 관습헌법에 따라 대한민국의 수도가 서울이듯, 똥군기 역시 이 세계에서는 일종의 헌법처럼 작동하는 게 아닐까.

필자는 과거 전투경찰로서 군 복무를 마쳤다. 익히 알고 있듯 과거 전경은 가혹행위로 유명했다. 폭언, 구타는 물론이요 ‘까스’라고 하는 가혹행위도 있었다. 여기서 까스란 후임들에게 거는 일종의 제재다.

예를 들면 가볍게는 ‘좌석 등받이 사용 금지’부터 해서 ‘취수 금지’나 ‘화장실 이용 금지’, ‘취침 금지’와 같이 인간의 생리적 욕구마저 박탈하는 제재에 이르기까지 단계에 따라 가혹행위의 강도는 더욱 올라간다. 이러한 가혹행위를 일삼는 고참들의 이유는 간단했다.

“우리는 시위 진압이 주 업무인 만큼 365일 중 180일은 실전이니까 한 치도 긴장의 끈을 놓아선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실제 필자가 복무할 시기였던 2005년과 2006년에는 농민 FTA 시위, 2006년 평택 대추리 사건 등이 일어났을 때로 시위대와 진압부대 간 물리적 충돌이 빈번했다).

May 31, 2008. Seoul. Republic of Korea. Korean citizens are protesting against peaceful candlelight vigils against US beef imports over 30 months of age, which could be infected with mad cow disease.

그러나 영원히 관습처럼 남을 것 같던 전·의경 구타문화가 한순간에 없어진 사건이 발생했다. 그간 전·의경 복무 문화가 성숙해져서도 아니고 시위대 간 물리적 충돌 빈도가 줄어서도 아니었다. 바로 한 인물에 의해 구타와 가혹행위는 사라졌다. MB정부 시절 댓글 지시 혐의로 구속 수감됐던 조현오 전 경찰청장의 의지 덕분이다.

그가 서울지방경찰청장에서 경찰청장으로 승진한 지 5개월이 지난 2011년 1월 23일. 강원도 원주시에 위치한 307전경대에서 이경 6명이 집단 탈영하는 일이 발생했다. 계속된 선임들의 가혹행위 탓이었다. 이들이 서울지방경찰청 홈페이지에 가혹행위를 신고하면서 사건은 일파만파 커졌고 결국 사건 다음 날 조현오 전 청장 귀에까지 들어가게 됐다.

불같이 노한 그는 ‘MB맨’이라는 칭호에 걸맞게 불도저식으로 그 자리에서 해당 부대의 해체를 지시했다. 이로 인해 307전경대는 창설 28년 만에 전격 해체됐고, 해당 전경대장을 포함한 부대 지휘요원 5명과 가해자 15명 전원이 형사입건됐다.

조 전 경찰청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또 전국 지방청에 실태조사를 벌여 폭력 사건이 한 번이라도 발생하면 해당 부대를 해체하고 지휘책임을 물어 지휘관들을 전출시켰다(이 당시 필자가 복무했던 부대도 날아갔다). 또 가혹행위를 저지른 전경들과 이를 방조한 경찰들까지 처벌했다.

그 결과 전·의경 부대 내 구타와 가혹행위는 일순간 사라졌다. 육군훈련소에서 강제 차출되는 전경과 달리 지원제인 의경은 당시 아무도 지원하려 하지 않았던 군종이었다. 그나마 군대에 빨리 가고 싶거나 복학 타이밍을 맞추고자 하는 미필자들이 주로 지원하던 곳이었다. 그러나 부대 내 구타, 가혹행위가 사라지면서 지금은 경쟁률 10대 1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필자는 수련 의료기관 또한 이에 준하는 ‘극약처방’이 필요하다고 본다. 가해자에 대한 대폭적인 처벌 강화다.

한양대병원과 부산대병원 폭력 가해자들은 각각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오랜 기간 전공의들을 습관적으로 폭행했고, 때릴 때 도구를 사용했기 때문에 그나마 비교적 사법 정의가 잘 실현된 케이스라 볼 수 있겠다.

하지만 구타나 가혹행위가 어디 그뿐이겠는가. 실제 세브란스병원 A교수는 과거 전공의 폭행으로 물의를 빚었을 때도 아무 조치도 받지 않았다. 다른 주임 교수가 전공의들에게 대신 사과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도리어 폭행당한 전공의는 병원을 떠나야만 했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산부인과 의료진

이제는 병원장들이 결단을 내릴 때다. ‘구타, 가혹해위 가해자로 입증되는 즉시 병원 퇴출’과 같은 극약 처방을 내려야 한다. 전공의들은 전공을 심화 학습하기 위해 수련 현장을 선택한 사람들이다. 머슴이나 노예 생활을 하러 병원에 온 게 아니다. 수련기관 내 악습이 뿌리 뽑히기 위해선 가해 당사자는 물론 방조한 책임을 물어 관련자들까지 민형사상 책임을 묻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