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근 의원, 기업에 팔아먹는 개인정보 보호법 개정안 철회하라”

시민사회단체들이 4일 국회 앞에서 인재근 의원(더불어민주당)의 ‘개인정보 보호법 개악안’ 철회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박근혜 정부에 이어 문재인 정부가 의료 민영화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발표와 발맞춰, 정부 여당이 ‘개인정보 보호법 전면 개정안’을 국회에 상정했다.

사진 1. 시민사회단체들이 4일 국회 앞에서 인재근 의원(더불어민주당)의 ‘개인정보 보호법 개악안’ 철회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인 의원이 대표발의한 개인정보 보호법 개정안은 국민 개인들의 정보를 기업의 돈벌이로 활용하는 안을 담고 있으면서도, 정보 주체인 개인들의 의견 수렴 과정도, 최소한의 동의 절차도, 공식적인 국회 토론회 한 차례도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 중이다. 정부 청부법안인 인 의원 안은 현재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 계류돼 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인 의원 안이 국회 상정됐을 당시 개인정보 보호 운동단체들과 함께 법안의 심각한 문제점을 지적하며 국회 상정을 반대한 바 있다. 그러나 여러 시민사회단체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법안은 추진 중이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날 “더욱이 지난 5월 ‘촛불 정권’이라고 더는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쏟아진 문재인 정부의 의료 민영화 및 빅데이터 정책들은 모두 인재근 의원 안의 통과를 전제하고 있다”며 “결국 인재근 의원 안이 가장 핵심적으로 노리는 것이 무엇인지를 너무도 명확하게 보여준 것이다”고 비판했다.

사진 2. 시민사회단체들이 4일 국회 앞에서 인재근 의원(더불어민주당)의 ‘개인정보 보호법 개악안’ 철회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어 시민사회단체들은 “지난 수십 년간 의료 민영화 반대 투쟁을 하면서, 현재 법 제도상 의료 민영화의 쓰나미를 막는 방파제 역할을 개인정보 보호법이 해왔다. 이 때문에 민간보험사들과 제약회사, 대형병원, 통신재벌들은 기회만 되면 개인정보 보호법을 규제완화를 시도했다”며 “ 병원에 축적된 환자들의 의료기록과 데이터,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원 등에 축적된 국민의 개인 의료정보와 건강정보를 사고팔 수 있고, 자신들의 상품 개발과 서비스 판매에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이 오랫동안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있는 개인정보를 민간과 공유해야 한다고 일관되게 요구해 온 것은 이런 이유다”고 설명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인재근 의원 안대로 개인정보 보호법이 개악된다면, 국민의 소중한 의료정보와 건강정보의 주권과 소유권은 이제 기업과 병원들에 넘어가게 된다”며 “지금도 대형병원들이 진료 목적으로 제공한 환자들의 개인 의료정보가 병원 소유라고 주장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이러한 개악안의 통과는 국민 개인의 사생활 침해는 물론이거니와 환자와 의사 간 근본적인 신뢰 붕괴, 사회적 배제와 낙인의 증가, 사회 불평등 심화와 민주주의 위기로 이어질 것이다”고 지적했다.

사진 3. 시민사회단체들이 4일 국회 앞에서 인재근 의원(더불어민주당)의 ‘개인정보 보호법 개악안’ 철회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의료가 가져야 할 환자 정보 보호의 가장 기본적이고 우선적인 원칙을 훼손하는 인 의원이 발의한 개인정보 보호법 개정안의 문제점 다섯 가지를 주장했다.

첫째, 인재근 의원 개정안은 국민 건강정보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법안이다. 개정안은 개인정보 보호 중 예외 조항으로 ‘가명정보’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가명정보의 경우 개인의 동의 없이도 이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안이다. 개정안에서 정의하고 있는 ‘가명정보’는 특정 기술적 방법으로 개인을 쉽게 알아볼 수 없게 처리한 정보라고 하지만, 정부도 합의한 가명정보의 개념은 익명정보와 달리, 다른 정보와 결합하면 쉽게 개인이 식별될 수 있는 엄연한 개인정보다.

무엇보다도 국민이 병원을 방문해 진료 목적으로 제공한 건강정보와 처방, 복약 정보 등이 포함된 의료·건강정보는 다른 정보와 결합할 경우 그가 누구인지 찾아내기가 너무 쉬운 민감한 개인정보에 해당한다. 따라서 개인의 의료·건강정보는 가명처리가 된다 해도 개인정보 보호 기준에 따라야 한다. 가명처리가 된 개인 의료·건강정보 역시 진료 목적이 아닌 기업의 사용 시에는 반드시 환자 등 정보 주체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화정그룹 전체회의에서 구승효는 상국대학병원 환자들의 정보를 화정보험 남사장에게 팔려고 한다(출처 JTBC)

둘째, 개정안에서는 기업이 포함된 제삼자가 ‘통계작성, 과학적 연구 등을 위해서라면 정보 주체의 동의 없이 가명정보를 이용할 수 있게 허용한다. 그런데 이 통계와 과학적 연구는 기업의 ‘새로운 기술·제품·서비스의 개발 등 산업적 목적을 포함하는 과학적 연구, 시장 조사 등 상업적 목적의 통계작성’이다.

결국 기업들이 ‘과학적 연구 방법을 도입해 새로운 상품, 서비스, 기술 등을 개발하겠다고 하면 개인 의료기록과 건강정보를 가져다 쓸 수 있게 된다. 진료 목적으로 제공된 병원 내 환자 정보와 건강보험공단과 심평원에 축적된 자료 모두를 진료 외 목적으로 사용하면서 환자들을 비롯한 정보 주체의 동의도 구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는 병원이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는 환자의 의료기록과 건강정보가 대량으로 제약회사, 의료기기회사, 민간보험회사, 통신회사 등에 넘어갈 수 있는 길이 열리는 법이다. 환자들은 치료목적으로 제공한 자신의 내밀한 건강정보가 언제, 어떤 경로, 누구에게, 어느 정도의 가명처리로 전달되고 이용되고 전파되는지 알지도 못하게 된다.

‘과학적 연구와 시장 조사 통계작성’ 등의 모호한 범위는 매우 엄격하게 규제돼야 하며, 연구 통계 목적이라 하더라도 민감정보인 개인의 의료기록과 건강정보는 최소한의 데이터만 제공될 수 있도록 데이터 최소화의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

사진 4. 시민사회단체들이 4일 국회 앞에서 인재근 의원(더불어민주당)의 ‘개인정보 보호법 개악안’ 철회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셋째, 개정안은 정부의 바이오헬스 산업화 전략을 이행하기 위해 기업들의 요구를 담아 추진하는 개인정보 규제 완화법이다. 문재인 정부는 의료 민영화의 총제적 내용을 담은 ‘바이오헬스산업 혁신전략’을 내세우며 이를 위해 국회에 개인정보 보호법 개정안이 올려져 있다고 주장했다.

민간보험사들의 숙원사업이기도 했던 ‘맞춤형 건강증진 상품’ 판매를 통해 ‘건강관리서비스업’을 허용하겠다는 정책, 마이헬스데이터 사업을 통해 CJ나 삼성화재 등이 환자들의 의료정보를 이용해 맞춤형 식자재나 보험상품으로 돈을 벌 수 있도록 하겠다는 정책 등은, 진료 목적으로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수집된 개인 의료정보를 상업화를 목적으로 제공하겠다는 정부 정책을 바탕으로 한다.

데이터 중심 병원이라고 불리는 대형병원들에 집약된 수십 년간의 환자 의료정보를 활용하는 사업들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대형병원들은 병원 하나가 그 자체로 국민의 의료정보와 생체정보를 수집 축적해 둔 개인정보의 비밀 보호 공간이다. 그 때문에 의료인들에게는 의료법에 따라 진료 목적으로 수집한 개인정보에 대해서 엄격하게 환자 비밀유지를 지켜야 할 의무를 부과한다.

이런 개인 의료정보 민영화 추진 정책들은 인재근 의원이 발의한 개인정보 보호법 개정안 통과를 통해 발판을 만들고자 한다. 원격의료 기기를 통해 수집되는 건강정보, 건강관리서비스업체가 판매하게 될 기기를 통해 수집되는 건강정보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재근 안이 통과되면 이러한 개인의 건강정보가 송두리째 기업에 넘기는 게 합법화되는 셈이다.

사진 5. 시민사회단체들이 4일 국회 앞에서 인재근 의원(더불어민주당)의 ‘개인정보 보호법 개악안’ 철회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넷째, 건강정보 영역에서 이런 방식으로 기업이 가져간 개인 건강정보는 그것을 활용해 개발한 재화, 서비스의 혜택이 환자와 국민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특정 기업의 배만 불리게 되지만 정보 유출의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들이 지게 된다.

민간보험회사가 특정 개인의 질병력을 익명 정보가 아닌 상태로 얻게 된다면 특정 개인의 보험 가입을 거부하거나 보험료를 올려 받을 근거로 악용될 수 있다. 기업들이 의료기기와 의약품 연구 개발을 위한 거라며 ‘과학적 연구’나 ‘시장 조사’ 목적으로 개인 건강정보를 가져다 쓸 수 있게 되지만, 누군가의 성매개 감염병 치료에 대한 정보, 정신질환 치료에 대한 정보, 가족력과 유전병에 대한 정보, 여성의 임신, 낙태 경험 등에 대한 가명 처리된 개인정보가 식별돼 유출될 경우 특정 개인의 피해는 막대하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러한 사업 모델은 국민 개인에게 그 결정권이 있고 전체 사회 측면에서 보자면 공공영역에 해당하는 국민의 의료·건강정보를 기업이 사적으로 편취해 추가적 이윤을 획득하는 강탈 행위에 다를 바 없다. 인재근 의원이 대표발의한 정부법안은 명백히 ‘의료 민영화·영리화’ 정책이며 ‘건강 시장화’ 정책 추진 법안이다”며 “민주주의와 인권의 이름으로 국회의원이 됐다 해도 과언이 아닌 인재근 의원이, 오롯이 한국 민주주의와 인권의 역사가 담긴 개인정보 보호법의 근간을 허무는 법안을 대표발의한 것은 대단히 실망스러운 일이다. 한국 민주주의 투쟁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 개인정보 보호법의 원칙을 훼손시키는 개정안을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