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신생아, 건강해져서 퇴원합니다”

[인터뷰] 국경없는의사회 구호활동가 이효민

이름: 이효민
포지션: 마취과 전문의
파견 국가: 중앙아프리카공화국
활동 지역: 밤바리
파견 기간: 2019년 4월~2019년 6월

–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을 지속하게 만드는 원동력은 무엇입니까?

이번이 이미 열 번째 구호 활동이기에 이제는 현장에 갈 때 특별히 원하는 게 있다기보다는 제 생활의 일부가 된 느낌입니다. ‘갈 때가 되었으니 나간다’라는 느낌이죠. 보통 일 년에 두 번의 구호 활동을 하려고 목표하는데 지난해 가을에는 런던에서 위생 열대 의학 학위(Diploma in Tropical Medicine&Hygiene) 과정을 위해 3개월간 머무느라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을 하지 못했습니다. 올해에는 어떻게든 나가야겠다는 생각에 지난해 12월 귀국하자마자 다음 활동을 위해 사무실에 연락했습니다.

– 구호 활동을 떠나기 전 어떻게 지냈나요? 어떤 준비를 했는지 알려주세요.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는 네 번째 가는 것이니만큼 그곳의 상황이나 필요한 기술 등에 대해서는 비교적 잘 알고 있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언어였습니다. 중아공은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국가이기 때문에 이전에 가서 일할 때에도 언어 문제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가 활동하는 국가 중에는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국가가 많기 때문에 2015년 말부터 프랑스어를 배우기 시작해 지금도 평소에 꾸준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2017년과 올해 현장에 가기 전 암스테르담 사무실에서 지원받아 구호 활동 직전에 브뤼셀에서 며칠간 프랑스어 수업을 받고 갈 수 있어서 도움이 됐습니다.

병원에서 일하는 마지막 날 오전 회진을 마치고 전체 외과 팀원들과 찍은 사진 ⓒ이효민/국경없는의사회

– 이전에 다녀왔던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이 이번에 도움이 됐나요? 어떤 경험이 가장 유용했나요?

물론 과거 현장 경험이 도움이 됐습니다. 중아공은 한국과 외교가 거의 없는 국가라 알려진 정보가 거의 없었지만 이번이 네 번째라서 두려움이나 긴장감이 훨씬 적었습니다. 예를 들면 국경없는의사회가 활동하는 여러 아프리카 국가의 공항이 상당히 혼잡하고 절차도 정신이 없는데, 이런 상황을 이미 알고 있어서 훨씬 여유 있게 도착할 수 있었고, 프랑스어가 아닌 중아공 현지에서 널리 쓰이는 고유 언어 ‘상고어(Sango)’도 간단한 단어들은 다행히 아직 머리에 남아있어서 현지인들과 소통할 때 도움이 됐습니다. 좀 더 일반적으로는 이미 국경없는의사회에서 활동에 근거를 두는 각종 프로토콜이나 가이드라인, 보유 약품, 기기 등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현장에서 일할 때 시행착오도 적고 빠른 판단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 이번에 활동하고 돌아온 프로젝트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제가 일했던 곳은 밤바리(Bambari)라는 곳이었는데, 중아공 중남부 쪽에 위치한 곳이고 국경없는의사회는 2014년 4월부터 이곳에서 의료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밤바리에서는 현지 보건부 병원에서 응급 외과적 질환 수술과 관리, 소아과, 영양실조 관리 등을 담당하고 있고, 주변 몇 군데의 진료소와 말라리아 진료소를 운영·지원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치안 상황이 악화돼 이동 진료는 위축됐지만, 올해 1월 이후 큰 사건 없이 상대적으로 조용한 상황이 지속됐습니다. 다시 이전만큼 활동으로 되돌아가고 있고 더 나은 환경에서 더 많은 수술을 할 수 있도록 새로운 수술실을 만들고 있습니다. 팀은 20여명의 국제 활동가와 90여명의 현지 직원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중 3분의 1 정도가 의료인과 준의료인입니다.

폭력이나 사고로 인한 외상 또는 화상 환자가 가장 많았고, 장티푸스나 다른 이유로 인한 장천공과 복막염 등 수술이 필요한 외과적 상황이 많았습니다. 특히 장티푸스 같은 경우 소아 환자가 많았는데, 대부분 영양실조나 말라리아가 겹쳐 수술 후에도 예후는 썩 좋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증상이 생기고 나서도 계속 방치되거나 아니면 지역의 전통 치료법에 의존하다 보니 더 악화돼 병원에 찾아왔을 때는 이미 너무 늦은 경우도 상당히 많았습니다.

산부인과는 국경없는의사회에서 운영하지는 않았지만, 수술이 필요한 경우 국경없는의사회가 담당해서 제왕절개 수술이나 자궁외임신 수술 등을 시행했습니다. 말라리아 유행이 막 시작되는 시기였기 때문에 소아과와 말라리아 진료소에는 심각한 말라리아 환자들이 많아서 심할 때는 입원 병상이 부족해 침대 하나에 아이들 두세 명이 한 번에 누워있기도 했습니다.

– 현장의 일과는 어떻게 되나요? 휴일에는 어떻게 시간을 보냈나요?

아침에 병원에 출근하면 현지 보건부 직원들과 함께 간밤에 있었던 일을 인계받는 회의를 짧게 한 뒤 외과 병동 입원 환자 회진을 돌며 약 처방이나 향후 치료 계획 등을 상의합니다. 이후에 새로 입원이 필요한 환자들이 있는 경우 진료를 보고 그날 예정된 수술을 합니다. 밤바리에서 국경없는의사회 외과적 진료는 응급 수술을 대상으로 하지만, 외상 환자나 괴사성 근막염, 화상 등의 경우에는 상처 치료를 반복적으로 꾸준히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서 대부분 하루에 예정된 수술이 4~5건은 있었습니다.

이후 예정된 수술을 마치면 외래에서 하는 시술(간단한 창상 치료나 부목, 견인 등)을 하고 그사이 새로 찾아온 환자들을 보고 응급 수술이 필요한 경우 수술을 합니다. 더 이상 수술이 없으면 숙소로 돌아가 대기합니다. 운 좋게 오후에 일찍 귀가하는 때도 있지만, 첫 식사를 오후 5시에 하거나 밤과 새벽 내내 수술을 하는 때도 있었습니다.

치안상 숙소 밖을 돌아다니는 것이 자유롭지 않고 반드시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등 제약이 많기 때문에 일과를 마치면 주로 숙소에서 동료들과 담소를 나누거나 운동을 하거나 방에서 미리 다운받아 온 전자책이나 동영상 등을 봤습니다. 일요일에는 수술을 잡지 않고 가능하면 쉬는 날로 정해놓았기 때문에 주말에는 맥주도 한잔하고 일요일 아침에는 근처 운동장에 가서 조깅하기도 했습니다.

병원에서 일하는 마지막 날 찍은 수술장 팀 사진. 사진 왼쪽부터 현지인 수술장 간호사, 이효민 구호활동가, 아이티인 수술장 간호사, 필리핀인 외과의 ⓒ이효민/국경없는의사회

– 주거 환경에 관해 설명해주세요.

보통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처럼 각자 한방을 썼습니다. 다른 프로젝트에 비해 공간이 좀 부족해서 작은 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편이었고 화장실과 샤워실도 인원수보다 부족한 편이어서 아침에는 줄을 서야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덕분에 서로 상당히 가깝게 지냈고, 뭔가 집중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소파가 있는 거실은 주로 회의 장소로도 쓰였고 식사를 하는 긴 식탁은 파티 장소로 종종 쓰였습니다. 전체적으로 깨끗하게 잘 관리되는 편이었고 특히나 음식을 해주시는 분의 솜씨가 아주 좋아서 식사는 즐겁게 잘했습니다. 다만 대부분 음식을 수도인 방기에서 공급받았기 때문에 날씨나 치안 상황이 나빠지는 경우에는 치즈나 우유, 음료수, 요구르트 등은 일주일 넘게 하나도 없는 상황도 종종 생겼습니다

밤바리를 떠나는 마지막 날 동료들이 준 선물. 즉석 사진을 찍어서 상자로 만든 액자에 넣고 뒷면에는 한 마디씩 인사를 적어주었다. 액자 주변에 있는 것들은 맥주병 뚜껑들 ⓒ이효민/국경없는의사회

– 활동 중 인상에 남았던 경험이 있었나요?

어느 날 산과 병동 연락을 받고 산모를 보러 갔더니 태아가 횡위(태아가 자궁 안에서 옆으로 있는 위치로 산모와 90도 또는 그에 가까운 각으로 있는 상태)로 있는 데다 팔이 먼저 밖으로 빠져나와 위험한 상태였습니다. 더 이상 분만 진행이 불가능해 응급으로 제왕절개 수술을 했는데 태아가 숨을 쉬지 않아 제가 20분 동안 심폐소생술을 했습니다. 다행히 다시 숨이 돌아왔고, 아이가 건강한 것을 확인해 소아과의사에게 인계했습니다. 처음 있는 일도 아니고 워낙 이 병원에는 생사를 오가는 환자도 많아서 잊고 있었는데 어느날 소아과 병동에 갔더니 의사가 저를 불렀습니다. 아이를 가리키며 “그때 선생님이 살린 아기입니다. 이제 건강해져서 오늘 퇴원합니다”고 말하는 데 정말 기쁘더군요. 아이 엄마와 아이와 함께 행복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이효민 활동가가 치료한 환자와 아기와 함께 ⓒ이효민/국경없는의사회

이곳에서 일하다 보면 다른 대부분 국경없는의사회 프로젝트와 마찬가지로 약품이나 물자가 없거나 공급이 늦어져 더 좋은 치료를 못 하는 경우가 가장 안타까웠습니다. 좋은 장비와 중환자실을 갖춘 나라에서 태어나 살았다면 죽지 않았을 수도 있는 환자가 많으니 종종 무력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래도 주어진 한계 안에서 내가 배우고 할 수 있는 일들을 최대한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묻혀 있던 잠재력이 되살아나는 느낌도 듭니다. 현지 보건부 직원들과 일할 때 매끄럽지 않게 진행되는 경우도 많아서 ‘우리 활동이 이곳 현지인들에게는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걸까’하는 회의가 들 때도 있었습니다.

– 앞으로 어떤 계획을 하고 있나요?

일단 한국에서 하던 일을 하며 가을에 다른 구호 활동에 참여할 예정입니다.

– 미래 구호 활동가들에게 한마디.

마취과의와 같이 전문적인 직종의 경우 어디에 가도 하는 일의 내용이 완전히 달라지진 않습니다. 수술하고 마취를 하고 치료를 하는 원칙은 기본적으로 같으니까요. 그러니 자기 분야에서 충분히 경험을 쌓았다면 업무 자체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일하는 환경 자체는 대부분의 경우 완전히 달라지니 스트레스 대처 능력과 적응력, 회복력이 한국에서 보다 훨씬 더 중요해집니다. 다른 사람들과 일과 생활을 다 함께해야 하니 그 안에서 잘 지내는 방법을 찾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