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구호를 떠나는 활동가들에게 조언하자면 언어가 아주 중요합니다”

[인터뷰] 국경없는의사회 구호활동가 임희정

이름: 임희정
포지션: 이동 약품 관리자(Flying Pharmacy Manager)
파견 국가: 말라위
활동 지역: 치라줄루(Chiradzulu)
파견 기간: 2019년 2월~2019년 8월

–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을 지속하게 만드는 원동력은 무엇입니까?

이 구호 활동을 하러 가기 위해 1년을 기다렸습니다. 개인적 상황과 맞추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프랑스 파리에서 파견 전 트레이닝(PPDP: Preparation Primary Departure Pharmacist)을 받은 후 바로 프로젝트에 가게 돼 상당히 기뻤습니다.

– 구호 활동을 떠나기 전 어떻게 지냈나요? 어떤 준비를 했는지 알려주세요.

이전 활동 이후 1년의 시간이 있었는데 이 기간 영어공부를 했습니다. 유럽에서 짧은 어학연수를 했고 돌아오는 길에는 여행도 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 임희정 구호활동가 ⓒ국경없는의사회

– 이전에 다녀왔던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이 이번에 도움이 됐나요? 어떤 경험이 가장 유용했나요?

현장에 가면 난생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을 접하게 됩니다. 이번에는 약국 관리 프로그램이 전면적으로 바뀌어 현지에서 새롭게 적응해야 하는 경우가 생겼습니다. 물론 약국에서 일한 경험들은 구호 활동이 반복될수록 축적돼 많이 당황하지는 않았습니다.

출신국에 따른 문화적 차이도 경험이 늘수록 좀 더 편해지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영어는 다 같은 영어라도 방글라데시 영어, 영국 영어, 오스트리아 영어, 프랑스 억양 영어가 모두 다르게 들려서 첫 달은 거의 매일이 영어 듣기 시험장 같았습니다. 다음 미션에는 조금 더 빨리 적응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부분입니다. 첫 구호 활동을 떠나시는 분들에게 조언하자면 언어가 아주 중요합니다. 다다익선이죠.

– 이번에 활동하고 돌아온 프로젝트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말라위 프로젝트는 시작된 지 20년도 넘었으며 안정적으로 지속되고 있습니다. 저는 HIV 및 결핵 프로젝트와 자궁경부암 프로젝트를 함께 맡아 총 34개의 진료소에 의약품을 공급하는 일을 했습니다.

특히 좋은 효과를 보이는 HIV 3차 치료약(3rd line HIV)과 혈액검사에 필요한 카트리지 등 진단검사실 물품이 부족하지 않도록 재고파악, 의약품 주문, 국제배송을 체크하는 일을 했습니다. 특히 의약품을 프랑스에 주문할 때에는 주문 전 약국에 보유 중인 전체 약품 재고의 정확한 수량과 각각의 유효기간, 배치 번호 등을 꼭 파악해야기 때문에 6개월 동안 총 두 번의 재고 목록을 작성한 기억이 납니다. 이 기간에는 한달 정도 약국을 닫고 4~5명의 약국 직원들이 인벤토리 작성에만 매진하게 됩니다.

이번 활동 중에는 약품 창고의 확장 공사와 함께 재고 목록 작성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매일 이사하는 수준으로 의약품을 옮기는 일이 특히 체력적으로 힘들었습니다. 의약품의 유효기간 관리도 중요한 일이어서 소중한 의약품들이 유효기간이 지나 못 쓰는 일이 없도록 적절한 시기에 보건부에 기부하거나 각 보건 시설에 약을 재분배하는 하는 것도 약사의 일 중 하나입니다.

– 현장의 일과는 어떻게 되나요? 휴일에는 어떻게 시간을 보냈나요?

여기서는 월요일은 쉬고 화요일~토요일 아침 7시 반부터 오후 4시 반까지 근무했습니다. 토요일에 모두가 함께하는 틴클럽데이가 있었기 때문이죠. 화요일 아침에는 미팅을 하는데 이때 새로 온 사람이나 방문객을 소개하기도 하고 안전 관련 전달사항 등 각종 업데이트가 공유됩니다.

평일 아침에는 모든 의료진이 그날 필요한 물품이나 갑자기 떨어진 의약품을 긴급 주문하기도 하고 백신이나 혈액 샘플 이송에 필요한 아이스박스를 준비하러 오기도 해서 분주합니다. 의료진이 모두 병원으로 떠나고 나면 그날 들어온 주문을 컴퓨터 프로그램에 정리하고 허가에 필요한 서명을 받는 등 서류들과 씨름을 하게 됩니다.

숙소에서 동료들과 함께한 생일 축하 자리 ⓒ국경없는의사회

오후에는 각 진료소에서 매달 필요한 정기주문을 준비하고 재고 카드를 업데이트하거나 의료 팀장 및 약품 코디네이터와 소통하며 일을 합니다. 각종 미팅도 오후 시간에 주로 이루어집니다. 프로젝트마다 의료진 미팅이 2주에 한 번씩 있었는데 이번엔 두 가지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어서 거의 매주 의료진 미팅이 있었습니다. 미팅은 사안에 따라 참가하는 사람이 달라지는데 전체 의료팀과 할 때도 있고 국제 활동가 의료팀, 프로젝트 코디네이터와 프로젝트 레벨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나는 미팅 등 여러 가지가 존재합니다.

매달 25일경에는 두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각 진료소가 주문할 스케줄을 전하고, 월말에는 유효기간이 다가오는 약들의 기부를 진행하며 지역 병원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합니다. 매달 그 전 달, 분기의 약 사용 현황을 나타내는 월간 보고와 분기 보고를 작성합니다. 4개월마다 한번씩 정기 국제주문이 있어 그 전에 재고 관리를 끝내며, 가끔 급한 약들은 긴급 국제주문을 넣기도 합니다. 매주 토요일에는 국제 주문한 약품이 도착해 밤늦게까지 일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 주거 환경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집은 너무 좋았고 식사와 집 관리도 너무 잘 되고 있었습니다. 말라위에서는 정말 불평할 일이 없었습니다. 굳이 불평하자면 집이 산꼭대기에 있어서 가끔 인터넷이 잘 안 터졌습니다. 한번은 집 앞에 독사(로 추정되는 뱀)가 죽어있던 적도 있어요. 이런 일은 한국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일인데, 오히려 이런 의외의 사건이 현장의 매력이기도 합니다.

휴일에는 충분히 쉬고 피로를 풀려고 최대한 노력했습니다. 등산을 좋아해서 동료들과 산에도 가끔 갔습니다. 브랜타이어라고 하는 근처 도시에 나가서 점심을 하면서 여유를 즐기기도 했습니다. 말라위 호수에 놀러 가기도 하고 수도 릴롱궤에도 갔고요. 말라위 릴롱궤에는 한국 태권도장과 한국 음식점도 있어 가끔 너무너무 그리운 한식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숙소에서 키우던 고양이. 타지 생활을 하는 활동가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국경없는의사회

– 활동 중 인상에 남았던 경험이 있었나요?

제가 있었던 말라위 치라줄루는 HIV 양성 비율이 50%에 이르는 곳입니다. HIV는 효과적인 진단 도구와 약품을 시기적절하게 사용하면 대부분 사망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이곳에서는 전체 감염자의 50%를 차지하는 어린이, 청소년들과 매주 토요일 ‘틴클럽데이(Teens Club Day)’를 운영하며 청소년 HIV 환자들의 교육과 정기 혈액검사, 상담을 진행했습니다.

매주 물류전문가, 자원봉사자, 정신 건강 간호사, 약국, 청소년 멘토, 의사, 간호사 등 전 스텝들이 협동하는 모습은 큰 자극과 감동을 주었습니다. 저도 가서 점심때가 되면 배식을 돕기도 했는데, 환자와 직접 대면할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이곳은 높은 HIV 유병률로 인해 자궁경부암 또한 높은 비율로 발생하는 곳입니다. 말라위 여성이 걸리는 모든 암 중 40%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치라줄루에서 여타 프로젝트와는 다르게 암의 선별, 진단, 예방접종, 치료 등 포괄적인 자궁경부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약사의 역량도 중요한데요, 저는 자궁경부암 백신 물량을 확보하고 보급하는 일에 주로 참여했습니다.

하나 재미있는 경험으로는, 우리나라에서는 환자들이 보통 ‘감기에 걸린 것 같아요’라고 하면서 약국에 오는데, 여기 사람들은 ‘제가 말라리아에 걸린 것 같아요’라며 병원을 찾는답니다. 그만큼 말라리아가 흔한 병이죠.

국경없는의사회 HIV 프로젝트. ‘틴스 클럽 데이’에서 국경없는의사회 직원들과 환자들이 함께 시간을 보낸다 ⓒ국경없는의사회/Luca Sola

– 앞으로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있나요?

다시 구호 현장으로 가야죠. 이번에는 좀 더 단단히 준비해서 나갈 계획입니다. 영어로 회의에 참여하고 트레이닝을 진행할 수 있을 만큼 영어공부를 꾸준히 할 계획입니다. 구호 현장에서도 임상약학 부분이 점점 더 중시되는 추세인 만큼 저도 서울대 약대에서 진행하는 임상약학 교육을 받을 계획입니다. 국경없는의사회 약사 트레이닝(Intersection pharmacist training)이 10월 초에 있다고 해서 신청해놓았습니다. 전에 일하던 약국에서 다시 근무하면서 다음 활동에 대한 준비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 미래 구호 활동가들에게 한마디

외국에서는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곧잘 일어납니다. 그래서 쉽게 오해가 생기기도 하고 그게 쌓이면 풀기 어려워지기도 하죠. 일이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우선 하나하나 물어보고 확인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어떤 문제에 대한 해결방법은 하나가 아니라는 것, 한 가지 길이 막힌다고 해서 쉽게 포기할 게 아니라 다른 방법을 꾸준히 시도해보아야 한다는 것도요.

그리고 도움을 받는 것을 창피해하지 말되 당연시하지도 말아야 한다는 것도요. ‘잘 몰라서 그러는데 엉뚱한 질문 하나 해도 될까?’라고 물어보면 대부분 친절하게 가르쳐줍니다. 이곳에서는 한국인의 배려심이나 지나친 겸손은 잘 통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당당하게 물어보는 것을 더 반가워하는 것 같았어요. 열린 마음, 긍정적인 태도에 더해 약사에게는 특히 꼼꼼한 업무능력이 중요하겠지요. 컴퓨터를 다룰 수 있는 능력과 체력도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