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크림 속 나노 성분이 뇌세포로 침투한다?

[팩트체크] 세계 상위 1% 우수 논문 연구자 나노 독성학 박은정 교수의 자외선차단제에 치매 유발 성분 발언

지난 9일 JTBC ‘차이나는 클라스’에 ‘나노 독성 연구의 권위자’ 박은정 교수가 출연했다. 강연 내용 중 자외선차단제에 대한 그의 주장이 큰 파장을 일으켰다. 자외선차단제 속에 “뇌세포 손상, 치매를 유발하는 나노 성분이 들어있다”는 주장을 펼친 것이다. 우선 해당 발언을 확인해보자.

유기자차, 무기자차 중에서 그래도 우리가 무기자차를 쓰는 것을 선호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이 티타늄 나노입자가 몸 안에 들어가서, 또는 피부 밖에서, 정전기적 인력에 의해서, 세포에 빨려 들어가서 뇌세포까지 들어가는 것이 확인된 거에요.

사진= JTBC ‘차이나는 클라스’
사진 2. JTBC ‘차이나는 클라스’에 ‘나노 독성 연구의 권위자’로 출연한 박은정 교수
사진= JTBC ‘차이나는 클라스’

과학자가, 그것도 3년 연속 ‘세계 상위 1% 연구자’로 선정됐다는 과학자가 방송에서 이런 발언을 한다면 모두 정확한 사실(또는 진실)이라고 믿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필자는 나노입자에 대한 수많은 논문과 리뷰를 읽었지만 어떤 문헌에서도 피부에 바른 자외선차단제 속의 나노입자가 “정전기적 인력에 의해 세포로 빨려 들어가서 뇌세포까지 들어간다”는 내용을 본 적이 없다. 오히려 피부를 통한 흡수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는 내용의 문헌만 잔뜩 보았다.

가장 유명한 유럽연합 소비자안전과학위원회(SCCS)의 리포트는 물론이고 미국 FDA의 의약품평가연구센터(CDER)의 공식발표, 독일연방위해평가원의 발표, 덴마크환경보호국의 피부흡수율 실험 결과 등 모든 문헌이 자외선차단제 속의 나노입자는 피부를 통해 체내로 흡수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심지어 손상된 피부에 발랐을 때도 흡수율은 각질층 아래로 약간 더 내려가는 정도이지 체내로 마구 흡수되는 게 아니다. 도대체 박은정 교수는 무엇을 근거로 이런 주장을 펼친 것인가?

#티타늄디옥사이드 나노입자에 대한 주요문헌 내용

며칠 동안 나노입자 관련 논문을 샅샅이 살펴보았지만, 박은정 교수의 발언에 가까운 논문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대신 나노입자가 혈액-뇌 장벽(blood-brain barrier)을 넘어 뇌세포로 침투할 수 있다는 논문은 몇 건 찾았다.

그러나 그 경로는 모두 피부를 통한 흡수가 아니라 코를 통한 흡입이나 기관주사, 기관주입을 통한 것이다. 즉, 동물의 코를 통해 나노입자를 다량 흡입시키거나 비강에 직접 주사 혹은 주입해 체내에 넣은 후, 그중 일부가 후각세포를 통해 뇌세포에 도달하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피부를 통해 흡수돼 그것이 뇌세포에 도달한 것을 증명한 논문은 단 1건도 없었다.

“피부 밖에서 정전기적 인력에 의해 세포로 빨려 들어간다”는 표현도 필자 능력으로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피부에 흡수되지 않는다는 게 과학계의 결론인데 정전기적 인력에 의해 세포로 빨려 들어간다니, 황당하다. 정전기적 인력이 작용한다 해도 혈액으로 흡수된 이후 인체 내부에서나 일어날 일이지 피부 밖에서부터 끌어당긴다는 주장은 믿기 어렵다.

“뇌세포 손상, 치매를 유발하는 나노성분이 선크림에 들어있다”는 발언은 실망스럽다. 뇌세포 손상, 치매는 어디까지나 티타늄디옥사이드를 기관에 주사 혹은 주입해서 나온 결과다. 어떻게 이것을 자외선차단제와 나란히 한 문장 안에 넣을 수 있나? 그저 흥미를 유도하기 위해 뽑아낸 제목일지라도 과학자, 그것도 독성학의 세계적 권위자라는 사람이 구사하기에는 너무 수준 낮은 공포마케팅식 표현이 아닌가?

박은정 교수는 립스틱 속 티타늄디옥사이드에 대해서도 오류를 쏟아냈다. 마치 먹어서는 안 될 것을 립스틱을 통해 먹고 있는 것처럼 말한 것이다. 티타늄디옥사이드는 대한민국 식품첨가물공전에 등록된 엄연한 식품첨가물이다. 사용할 수 없는 지정된 식품 이외에는 제한 없이 사용이 허락된 원료다(제한이 없지만, 식품첨가물은 최소한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일반적 규정이 있기 때문에 실질적 사용량은 매우 적다).

사진= JTBC ‘차이나는 클라스’
사진= JTBC ‘차이나는 클라스’
사진= JTBC ‘차이나는 클라스’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나라도 티타늄디옥사이드를 식품첨가물로 허락하고 있다. 아무 대책 없이 허락한 게 아니라 유엔 산하 세계보건기구(WHO)와 식량농업기구(FAO)의 엄격한 위해평가와 각 나라의 노출량 조사, 그 밖의 여러 논문을 반영하여 허락한 것이다.

대한민국 식품첨가물공전 이산화티타늄(티타늄디옥사이드) 사용기준

WHO와 FAO의 공동연구에서 10마리의 랫드(실험용 쥐)에게 체중 1kg당 티타늄디옥사이드 100mg을 34일 동안 먹였지만 모두 건강하고 아무런 병리학적 증상을 보이지 않았다. 다른 실험에서도 섭취량을 무려 1000mg까지 늘렸지만 아무 문제가 없었다. 미국과 유럽에서 행해진 식품을 통한 하루 티타늄디옥사이드 노출량 조사에 의하면 성인은 체중 1kg당 1mg 이하이고, 어린이는 2~3mg으로 나타난다. 이처럼 섭취를 통한 독성이 매우 낮으며 현실적 노출량도 매우 적기 때문에 WHO와 FAO는 티타늄디옥사이드의 하루섭취허용량(ADI)을 ‘제한 없음’(not limited)으로 정해놓았다.

또 한 가지 바로 잡을 곳은, 식품첨가물과 립스틱에 쓰이는 티타늄디옥사이드는 나노물질이 아니라는 점이다. 박은정 교수가 직접 말한 것처럼 제조나노는 가로 세로 높이 중 어느 하나라도 100nm 이하여야 한다. 식품첨가물과 립스틱에 쓰이는 티타늄디옥사이드는 100nm이하의 투명한 입자가 아니라 평균 200~300nm의 흰색 입자다. 용도 자체가 흰색 착색료로 쓰이거나 질감을 불투명하게 만드는 게 목적이기 때문에 투명한 나노입자를 쓸 이유가 없다. 일부 나노 사이즈가 비의도적으로 포함될 수 있지만, 극히 소량이다.

무엇보다 립스틱은 섭취의 위험을 지적하기에는 사용량 자체가 너무나 적다. 여성들이 날마다 립스틱을 바르긴 하지만 그래봤자 하루에 10~30mg이 고작이다. 그리고 바르는 양이 다 먹는 양이 되는 것도 아니며 그 양이 다 티타늄디옥사이드인 것도 아니다. 립스틱에 색소와 불투명화제로서 사용되는 티타늄디옥사이드의 함량은 1% 안팎이다. 일부 자외선차단 기능성 인증을 받은 립스틱에는 5~10% 정도가 들어있다.

사진= JTBC ‘차이나는 클라스’

필자가 박은정 교수의 발언 중에 가장 큰 문제라고 보는 지점은 화장품 산업이 마치 아무런 보호장치 없이 기업이 마음대로 만들어내는 제품인 것처럼 말한 것이다. 화장품은 엄연히 법의 규제를 받는 산업이다. 티타늄디옥사이드도 엄격한 위해평가를 거쳐 25%의 사용한도 안에서 안전하게 쓰이고 있다.

유럽연합의 규정은 티타늄디옥사이드가 나노입자로 쓰였을 때의 형태, 입자의 평균 크기, 코팅 여부, 광안정성 여부까지 세세히 규정한다. 립스틱은 먹었을 때의 위험까지 고려해 위해평가를 하며 그 지침을 화장품회사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안전성 여부에 대해) 왈가왈부한다”느니, “결정된 안전성 기준이 없다”는 말은 화장품의 안전을 위해 애쓰고 있는 수많은 과학자의 노력을 무시하는 발언이다. 화장품산업은 그렇게 무책임하게 돌아가지 않는다.

필자는 평소에 더 많은 과학자가 방송에 나와서 대중강연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과학자들이 자신의 지식을 대중에게 나눠줄수록 대중의 과학독해력이 올라가서 불량정보의 위력이 약해지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JTBC가 하는 이런 식이라면 오히려 불량정보에 부채질할 확률이 더 높다고 본다. 지난번 계명찬 교수의 환경호르몬 강연도 그렇고 이번 박은정 교수의 강연도 그렇고, 작은 위험을 마치 큰 위험처럼 과장해 오히려 대중이 더 겁을 먹게 만들기 때문이다.

대중은 늘 화학물질을 두려워할 준비가 돼 있다. 조금이라도 위험하다는 말을 들으면 겁에 질리고 해당 성분은 사회적으로 매장된다. 이날 박은정 교수는 스스로 “나노 산업을 즐기기 위한 것이지 죽이려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런데 강의 결과는 오히려 나노입자 자외선차단제를 죽이고 말았다. 이제 사람들은 나노를 배척하고 논나노만 고집할 것이다.

천연유기농 브랜드들과 불량정보를 활용하는 화장품전문가들은 그의 발언을 마케팅에 신나게 활용하며 나노 죽이기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그 결과 나노 자외선차단제는 자취를 감추고 우리 모두 하얗게 백탁이 심한 제품을 바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노 선크림을 일부러 찾아서 바르는 필자에게는, 이것은 한 편의 블랙 코미디다.

화장품비평가. 작가 겸 번역가. ‘뉴스위크’ 한국어판 번역위원을 지냈다. 2004년과 2008년에 두 차례 폴라 비가운의 ‘나 없이 화장품 사러 가지 마라’를 번역하면서 화장품과 미용 산업에 눈을 떴다. 이후 화장품비평가로 활동하면서 ‘헬스경향’, ‘한겨레’ 등에 과학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화장품의 기능과 쓰임을 정확히 알리고 있다. 지은 책으로 ‘화장품이 궁금한 너에게’(2019), ‘나나의 네버엔딩 스토리’(공저), ‘명품 피부를 망치는 42가지 진실’(공저) 등이, 옮긴 책으로 ‘하루 30분 혼자 읽기의 힘’, ‘아무것도 못 버리는 사람’ 등이 있다. the_critic@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