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베이트 쌍벌제, 어떻게 나왔나?

제약협회, 시장형 실거래가상환제 막기 위해 리베이트 쌍벌제 건의
정작 시장형 실거래가상환제 2014년 8월 폐지

제약협회, ‘리베이트 쌍벌제’ 건의

지난 2009년 2월 29일 제64회 한국제약협회(현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총회에서 제18대 한국제약협회장으로 취임한 어준선 안국약품 회장의 취임 첫 일성은 ‘리베이트 근절’이었다. 취임 한 달 후인 3월 31일 서울 팔레스 호텔에서 열린 ‘한국제약산업 발전을 위한 대국민 결의대회’에서 제약협회는 공식적으로 정부에 리베이트 쌍벌제 도입을 건의했다.

처음은 아니었다. 2월 16일 제약협회가 정부에 전달한 ‘시장형 실거래가상환제도에 대한 제약업계의 입장’이라는 자료에서 “리베이트를 근절하려면 의료수가 현실화를 전제로, 주는 자와 받는 자를 공동처벌하는 법규의 마련과 시행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제약협회의 ‘리베이트 쌍벌제 건의’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11월 23일 제약협회는 정부에 ‘약가제도 개선에 관한 탄원서’를 내면서 리베이트 쌍벌제 도입을 재차 건의했다.

리베이트가 사라지고 국내 제약산업의 투명성이 높아지면 R&D 투자 비율도 현재 7%에서 10% 이상 투자할 여력이 생기는 효과가 기대됩니다. 또한 리베이트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리베이트 공여자와 수수자에 대한 쌍벌 제도의 시행이 절실하다는 점입니다.

당시 제약협회 탄원서의 일부 내용이다.

2010년 3월 12일 국내 5개 제약사(한미약품·중외제약·일성신약·동아제약·LG생명과학) 대표와 전재희 보건복지부 장관이 만난 오찬에서 또다시 리베이트 쌍벌제 건의가 나왔다. 이들 제약사 대표들은 “리베이트를 없애려면 주는 자와 받는 자를 함께 처벌하는 쌍벌제가 저가구매 인센티브 제도보다 먼저 시행돼야 한다”고 했다.

결국 2010년 4월 28일 리베이트 쌍벌제는 찬성 191, 반대 0, 기권 3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됐고 그해 11월 28일 발효됐다.

사진=셔터스톡

제약협회가 리베이트 쌍벌제 건의한 이유는 시장형 실거래가상환제 저지하기 위해

이명박 정부는 리베이트가 국내 제약회의 경쟁력을 약화하고 R&D 투자를 방해하는 주범으로 인식하고 리베이트 쌍벌제를 추진했다. 이명박 정부의 이러한 인식 뒤에는 제약협회의 입장 표명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런데 국내 제약사들로 구성된 제약협회가 리베이트 쌍벌제를 건의했다는 사실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국내 제약사들이 사실상 리베이트 영업에 의존해서 성장하기 때문이다. 다국적 제약사들은 제품 경쟁력을 가진 오리지널 의약품 판매에 주력하는 반면 국내 제약사들은 제품 차별성이 없는 복제약 판매에 주력하기 때문에 의약품 리베이트는 국내 제약사들의 기업 경쟁력을 약화하는 요소가 아니라 오히려 다국적 제약사들과 경쟁할 수 있는 무기였던 셈이다.

국내 제약사들의 영업이 얼마나 리베이트에 의존하는지 알 수 있는 사건이 있었다. 제약협회장에 취임한 어준선 안국약품 회장의 일성이 ‘리베이트 근절과 리베이트 쌍벌제의 필요성’이었고 이에 따라 제약협회 내에 리베이트 신고센터를 만들었는데 첫 신고가 바로 안국약품의 리베이트 사건이었다. 어준선 회장은 체면을 구겼고, 제약협회는 600만원 벌금형을 내려 솜방망이 처벌 논란이 일었다.

그렇다면 제약협회는 왜 “의사들도 처벌해주세요”라며 리베이트 쌍벌제를 건의한 것일까. 그 해답은 2009년 11월 제약협회가 정부에 낸 탄원서에서 찾을 수 있다. 제약협회는 ‘약가제도개선에 대한 탄원서’를 내면서 줄곧 ‘저가구매 인센티브 제도의 반대’와 ‘리베이트 쌍벌제 시행’ 두 가지를 강조했다. 즉, 제약협회는 당시 정부가 추진하던 저가구매 인센티브 제도를 막기 위해 의사들도 처벌해달라는 리베이트 쌍벌제를 들고나온 것이었다.

저가구매 인센티브제도란 무엇이며 리베이트 쌍벌제와 무슨 관계일까. 이를 이해하려면 당시 약가제도를 살펴봐야 한다. 당시 약가제도는 1999년부터 시행된 ‘실거래가상환제’로 병원이 실제 매입한 약제 비용만큼만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보전해주는 제도다.

즉, 병원을 운영하면서 입원환자에게 처방하기 위해 월 3억원의 약제비용을 구매했다면 실제 3억원어치만 건보공단에 청구할 수 있고 건보공단은 실제 사용한 이 비용만 지급하는 제도를 말한다(1977년 의료보험이 처음 시작될 시점에는 실제 구매한 가격과 무관하게 고시가격으로 지불했다. 따라서 고시가와 실제 구매가 사이의 차액은 의료기관의 수입이 됐는데 이를 없애기 위해 실제 거래가격으로 지불하는 제도로 1999년 바뀐 것이다).

실거래가로 지불을 하니 병원은 약 구매에 따른 어떠한 이윤도 남지 않았다. 그런데 이 제도도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실제 매입 금액만을 보전해 주다 보니 병원 입장에서는 매입 금액을 낮출 필요가 없었고 가장 높은 보험 상한가로 구매한 후 이 금액을 청구하게 됐다. 청구액을 지불해야 하는 건보공단의 약제비 지출부담이 커진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2007년부터 저가구매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하려 했다. 병원이나 약국이 자신들의 노력으로 제약사나 도매상으로부터 할인을 받아 약의 매입 금액을 낮춰 싸게 구매하면 정부가 절감한 비용의 일부(70%)를 인센티브로 제공하는 제도를 말한다. 즉, 저가구매 인센티브 제도는 ‘정부가 약가 인하를 촉진하기 위해 병원이나 약국 등이 약품을 싸게 사면 보험 상한가와 구입 금액 간 차이의 70%를 인센티브로 돌려주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약가 인하를 유도하기 위해 병원이 싸게 구매할 때에 이익을 보는 제도를 정부가 추진한 셈이다. 이 ‘저가구매 인센티브 제도’는 기존의 실거래가상환제와 대비해 ‘시장형 실거래가상환제’라고 불렸다. 저가구매 인센티브 제도 또는 시장형 실거래가상환제는 제약사 입장에서는 약가 인하의 무한경쟁에 돌입한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에 강력하게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저가구매 인센티브 제도를 2007년부터 강력하게 추진했다. 2008년 힘겹게 저가구매 인센티브 제도를 막아낸 제약협회는 2009년 전략을 바꿨다. 제약사들은 정부에게 이렇게 항변했다.

제약사는 이미 의사들에게 리베이트를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 저가구매 인센티브 제도가 시행되면 기존의 리베이트에 약가 할인까지 이중고를 감내해야 한다. 그러니 의사들이 받는 리베이트를 먼저 없애 달라. 저가구매 인센티브 제도는 그 이후에나 가능한 제도다.

제약협회의 리베이트 쌍벌제 건의는 이렇게 시작됐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전경

“리베이트 쌍벌제···의사들이 막아줄 것으로 생각했다”

어준선 제약협회장은 리베이트 쌍벌제가 통과되기 두달 전인 2010년 2월 임기 중 돌연 사퇴했다. 이후 리베이트 쌍벌제가 국회를 통과하자 윤석근 당시 제약협회장 직무대행은 당시 전국의사총연합 대표인 필자에게 이렇게 고백했다.

리베이트 쌍벌제를 건의한 것은 저가구매 인센티브 제도를 막아보려는 생각에서였어요. 그런데 리베이트 쌍벌제가 정말 국회를 통과하게 될 줄은 저희들도 몰랐습니다. 의사 선생님들이 막아줄 것으로 생각했었습니다.

한미약품 불매운동이 거세지자 2010년 10월 12일 전국의사총연합 사무실을 찾았던 한미약품 임선민 사장도 전의총 운영위원들과의 면담 자리에서 “시장형 실거래가상환제가 제약산업을 크게 압박해 제약협회가 정부에 리베이트 쌍벌제를 건의하게 된 것”이라며 쌍벌제 도입 배경을 설명했다.

2010년 4월 28일 리베이트 쌍벌제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2010년 6월 저가구매 인센티브제도(시장형 실거래가상환제)도 규제개혁위원회를 통과해 2010년 10월부터 시행됐다. 시장형 실거래가상환제는 2012년 1월까지 약 1년 3개월간 시행되다가 4월 1일 일괄 약가인하 조치를 전후해 제약업계가 어려움을 호소하자 2012년 2월부터 1년 유예했는데 2013년 다시 재차 1년 유예를 연장했다가 실익이 없다는 여론이 거세지자 2014년 8월 정부가 전격 폐지했다.

결과적으로 시장형 실거래가상환제를 저지하기 위해 제약협회가 리베이트 쌍벌제를 주장했는데, 리베이트 쌍벌제만 졸속으로 만들어진 채 정작 시장형 실거래가상환제는 폐지된 셈이다.

한편 2010년 6월 제약협회장에는 복지부 차관·보건의료산업진흥원장·인제대 총장을 역임한 이경호 회장이 취임했고 2011년 전국의사총연합 대표였던 필자는 과거 제약협회가 정부에 리베이트 쌍벌제를 건의했던 사실에 대해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그는 “제약협회는 리베이트 쌍벌제를 정부에 건의한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이에 필자는 이를 반박했고, 사과를 요구하며 1인 시위를 벌였다.

2012년 필자는 대한의사협회장에 취임했고, 2013년 3월 제약협회는 뒤늦게 의협과 함께 리베이트 쌍벌제 개선을 위한 의산정 협의체를 정부에 제안했다. 이후 협의체가 구성돼 3차 회의까지 진행됐지만, 정부가 리베이트 쌍벌제 이전 수수자들에 대한 처벌을 진행함에 따라 의정 관계가 악화돼 의산정 협의체 논의는 중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