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벤이 유방암을 일으킨다?

[팩트체크] 한양대 계명찬 교수의 케모포비아 발언

좀 오래된 방송이지만 꼭 팩트체크를 해야겠다. 올해 4월 24일 JTBC ‘차이나는 클라스’에 한양대 계명찬 교수가 출연해 환경호르몬의 위험에 대해 강의했다. 이날 방송에서 계 교수는 데오도란트에 함유된 파라벤이 유방암과 관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파라벤이 여성호르몬과 분자구조가 비슷하며, 정상 유방조직보다 유방암조직에서 더 많이 발견되기 때문에 유방암을 일으키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논리를 폈다. 과연 이 말이 사실일까.

사진= JTBC ‘차이나는 클라스’
사진= JTBC ‘차이나는 클라스’

계 교수는 환경호르몬이 정자에 미치는 영향을 깊이 연구한 학자다. 박근혜 정부 때 만들어진 ‘환경호르몬 대체물질 개발사업단’ 단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권위를 갖춘 인물이 대중 앞에서 발언을 하면 대중은 그것을 아무 의심 없이 믿어버린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파라벤에 대한 괴소문을 바로 잡기 위해 아무리 위해평가를 반복하고 홍보자료를 내놓아도 이런 대가의 발언 앞에서는 말짱 헛수고가 된다. 안전하다는 주장과 위험하다는 주장이 공존할 때 사람들은 당연히 위험하다는 주장으로 몰려간다.

또한 안전하다는 국가기관의 말보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과학자의 말을 사람들은 더 믿는다. 국가기관은 늘 국민을 속이고 거짓말을 하고 국민보다는 기업에 유리한 쪽으로 움직이지만 한 명의 과학자는 오직 신념에 따라 더 정의로운 말을 할 것이라는 편견이 우리의 의식구조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파라벤에 대해서 한 말을 글로 옮겨보자.

파라벤은 에스트로겐과 갑상선 호르몬과 유사한 화학적 구조를 가지고 있어요. 그러니까 에스트로겐과 갑상선 호르몬만큼은 아니지만 비슷한 흉내를 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요. 파라벤이 함유된 체취제거제가 유방암을 유발한다? 뭐 이런 기사가 나온 적이 있었어요. 160개 유방암조직을 떼어서 파라벤을 분석했어요. 어느 부위의 유방조직에서 떼어냈느냐에 따라 농도차이는 있었지만 많이 나왔다는 거죠.

그럼 거꾸로 반문해볼 수 있습니다. 정상인에서는 안 나와요? 이렇게 물어볼 수 있죠. 정상인도 분명히 파라벤이 함유된 화장품이나 생활용품을 썼을 것 아니에요. 당연히 나오지요. 그래서 이런 기사들에서 우리는 파라벤이 우리 몸에 분명히 존재하는데, 유방암 여성의 경우에는 훨씬 더 많은 경우에서 파라벤이 검출되었다. 이 얘기는 뭐를 추론하게 하느냐면, 어쩌면, 파라벤에 많이 노출되면 유방암에 걸린다가 아니라 유방암의 위험성을 높일 수 있다. 이건 다른 얘기에요.

유방암이 훨씬 더 걸리기 쉬운 컨디션을 조성하는 데에 기여했을 것이다, 라고 얘기하는 것은 우리가 틀린 결론이라고 얘기하기는 어렵다는 거죠. 파라벤이 발암물질이다, 이렇게 얘기하기는 조금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어요. 그러나 암의 위험성을 상승시키는 데에 작용했을 가능성은 농후하다. 이것이 현재까지의 결론입니다.

매우 조리 있고 과학적인 의견으로 들린다. 그러나 그의 발언 중 몇몇은 과장됐으며 심지어 필자가 과학 문헌을 통해 알고 있는 사실과도 다르다. 파라벤이 암을 일으키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에 기여할 가능성이 높다는 그의 결론 또한, 필자가 과학 문헌을 통해 읽은 것과 다르다.

파라벤의 에스트로겐 유사효과에 대해서 그는 “비슷한 흉내를 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능력의 수준이라는 게 체내에서 실제로 분비되는 에스트로겐 호르몬의 적게는 몇백 분의 1에서 많게는 수백만 분의 1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이 여러 연구에서 밝혀졌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이 사실을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그는 무의식적으로(혹은 의도적으로?) 파라벤이 호르몬을 교란할 가능성이 꽤 높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파라벤의 에스트로겐 호르몬 수용체와의 결합효율에 대한 연구결과들
-모두 수차례 동료검토된 논문이며 식약처, FDA, 미국 화장품성분검토회, 유럽 소비자안전과학위원회가 인용하는 연구결과다

영국 브루넬대학 생물학&생화학과팀 연구 “파라벤의 에스트로겐 유사효과는 인체 분비에스트로겐의 1만분의 1에서 10만분의 1 수준”(1998년)
일본 도쿄특별시보건연구소 독물학부서팀 연구 “체내에스트로겐과 에스트로겐 수용체와의 결합효율이 100일 때, 파라벤은 0.009~0.34의 결합효율을 보임”(2000년)

#유럽 소비자안전과학위원회(SCCS)의 요청으로 스웨덴 스칸디나비언화장품화학자협회가 실시한 연구조사 “파라벤은 체내에서 호르몬으로 작용하지 않는다”(2009년)

사진= JTBC ‘차이나는 클라스’
사진= JTBC ‘차이나는 클라스’
사진= JTBC ‘차이나는 클라스’

160개 유방암 조직 중 99%에서 파라벤이 검출됐다는 연구를 인용한 그의 방식도 문제가 많다. 그는 마치 이것이 데오도란트와 관련이 있다는 의혹을 충분히 가질만한 증거고, 또 유방암 조직에서 파라벤이 더 많이 검출된다는 증거처럼 인용했다.

하지만 정상 유방조직에서보다 유방암 조직에서 파라벤이 더 높은 확률로 검출된다는 연구결과는 어디에도 없다. 이런 연구결과가 전혀 없는데 어떻게 “유방암 여성의 경우에는 훨씬 더 많은 경우에서 파라벤이 검출됐다”는 주장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암의 위험성을 상승시키는 데에 작용했을 가능성은 농후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또한 그가 인용한 이 연구는 유방암 조직에서 파라벤이 높은 확률로 검출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연구가 아니었다. 이 연구의 목적은 유방을 겨드랑이부터 흉골까지 4등분을 해서 어느 부위에서 어느 종류의 파라벤이 가장 많이 검출되는지를 알아보려는 연구였다.

이 연구를 통해 알게 된 것은 유방암 조직을 제공해준 총 40명의 환자 중에서 평생 데오도란트를 써본 적이 없는 7명의 조직에서도 비슷한 양의 파라벤이 검출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연구의 결론 중 하나는 유방암은 데오도란트와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영국의 의학전문 매체에서도 보도한 내용이다.

이 연구가 발표됐을 당시(2012년) 언론에서 자극적으로 보도하자 영국 국민보건의료서비스(NHS)가 홈페이지에 상세한 해설을 올렸다. 그 내용도 위의 기사와 다르지 않다.

파라벤이 40명 환자의 모든 조직에서 발견되었다고 해서 이것을 유방암의 대표적 특징이라고 말할 수 없다. 어쩌면 파라벤은 유방암 여성의 조직뿐만 아니라 모든 여성의 유방 조직, 심지어 남성의 유방조직에도 존재할 수 있다. 이 연구의 저자들도 이번 논문에서 아동과 임산부의 소변에서 100% 파라벤이 검출된 다른 논문을 인용했다.

#유방암 조직 99%에서 파라벤이 검출된 논문에 대한 영국 NHS의 상세한 해설문

​골치 아프게 어려운 연구결과를 찾아볼 필요도 없다. 미국 암학회 홈페이지에만 들어가도 파라벤과 유방암은 관련이 없다는 내용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파라벤이 약한 에스트로겐 효과를 가지기는 하지만 인체에서 스스로 만들어지는에스트로겐의 효과가 수천 배 더 강력하다. 따라서 파라벤보다는 천연호르몬(혹은 호르몬대체요법으로 복용하는 호르몬)이 유방암 발병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 (중략) 체내 에스트로겐 분비를 높이는 요인들(예를 들어 출산하지 않는 것, 늦은 폐경, 비만 등)이 유방암 위험을 높이는 것과 관련이 있다.

데오도란트와 유방암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미국 암학회는 매우 희박하다고 말한다.

유방암과 발한억제제의 상관관계에 관한 역학조사는 확실한 것이 없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과학적 증거는 매우 희박하다. 사실 2002년 매우 잘 설계된 역학조사에서 813명의 유방암 여성과 793명의 정상 여성을 비교했지만, 발한억제제나 데오도란트, 겨드랑이 면도와 유방암 사이에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유방암 환자들에게 올바른 의학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의사들이 만든 #비영리단체 브래스트캔서도 이렇게 말한다.

파라벤은 정상 유방조직과 유방암 조직에서 발견되는데 이 사실은 별 의미가 없다. 파라벤은 광범위하게 사용되기 때문에 유방 외에도 여러 조직에서 발견된다.

케모포비아는 화학을 어설프게 알면서 대중 앞에서 아는 척을 하는 미디어 전용 전문가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게 대부분이다. 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깊이 연구한 학자들도 케모포비아 확산에 기여한다. 깊이 연구할수록 더 객관적으로 신중하게 발언해야 하는데 오히려 자신이 알고 있는 위험이 대단한 것처럼 과장해 얘기하는 것이다. 도대체 왜 이런 행동을 할까. 한 분야에 너무 깊이 빠지면 그 분야가 전부인 것처럼 느끼는 것일까.

물론 환경호르몬의 유해성을 연구하는 학자에겐 그것이 인류의 미래를 위한 대단히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대중에게 그 위험을 알리는 것을 대단한 사명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우선순위를 헛갈려서는 안 된다. 환경호르몬이나 파라벤이 우리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과로, 과음, 흡연, 과식, 비만, 노화, 스트레스 등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환경호르몬을 죄다 없앤다고 해서, 파라벤을 화장품에서 완전히 몰아낸다고 해서 유방암 발병률이 얼마나 줄어들까. 파라벤을 금지하는 것보다 여자들에게 운동을 하게 하고 소식으로 비만에 걸리지 않게 하는 것이 유방암 발병률을 현격히 줄이는 방법이다.

그럼에도 유방암 환자는 계속 나온다. 근본적인 이유는 임신과 출산이 줄어 생리하는 기간(에스트로겐에 노출되는 기간)이 너무 길어졌고 훨씬 오래 살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누적된 기형세포가 종양으로 발전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러므로 어느 분야에 대해 깊이 연구한 학자가 TV에 나와서 어떤 화학물질이 굉장히 위험하다고 말하더라도 무작정 믿어서는 안 된다. 무슨 말인지 들어보되, 넓은 시각에서 한 번 더 생각해보고 사실이 맞는지 알아보아야 한다.

환경호르몬도 파라벤도 법으로 사용량, 검출량 등을 강력하게 규제하는 물질이다. 과거에 규제가 없었던 시절의 피해사례를 가져와서 위험의 증거로 내미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또한 과거보다 우리는 훨씬 잘 먹고 건강하게 오래 산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 팩트를 하나 더 바로 잡자. 만약 파라벤이 장기적으로 체내에 계속 축적되는 물질이라면 젊은 유방암 환자의 조직보다 나이가 많은 유방암 환자의 조직에서 더 높은 농도의 파라벤이 검출돼야 한다.

그러나 계 교수가 인용한 160개 조직 샘플 연구에서 파라벤 농도와 나이와의 상관관계는 전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직샘플을 제공한 환자의 나이는 37세부터 91세까지 다양했지만 모든 조직에서 비슷한 농도의 파라벤이 검출됐다.

또한 검출된 평균 농도는 조직 1g당 85.5ng(0.0000085%)으로 평생 축적됐다고 말하기에는 너무나 미미한 양이다. “피부로 흡수된 파라벤은 피하지방과 결합해서 축적이 더 잘 될 수 있다”는 그의 발언은 그저 의혹 제기에 불과할 뿐이다.

화장품비평가. 작가 겸 번역가. ‘뉴스위크’ 한국어판 번역위원을 지냈다. 2004년과 2008년에 두 차례 폴라 비가운의 ‘나 없이 화장품 사러 가지 마라’를 번역하면서 화장품과 미용 산업에 눈을 떴다. 이후 화장품비평가로 활동하면서 ‘헬스경향’, ‘한겨레’ 등에 과학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화장품의 기능과 쓰임을 정확히 알리고 있다. 지은 책으로 ‘화장품이 궁금한 너에게’(2019), ‘나나의 네버엔딩 스토리’(공저), ‘명품 피부를 망치는 42가지 진실’(공저) 등이, 옮긴 책으로 ‘하루 30분 혼자 읽기의 힘’, ‘아무것도 못 버리는 사람’ 등이 있다. the_critic@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