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바이러스 쇼크

#1. 2010년께 신종플루에 걸린 적이 있었다. 열이 쩔쩔 끓고 방 안에서 헛게 보이는 지경이었다. 이렇게 죽는구나 싶었다. 어느새 머릿속으로 유서를 쓰고 있었다. 치료제 타미플루를 먹고 링거를 맞으며 회복했다. 바이러스에 속수무책이었다. 그때를 돌이키면 끔찍하다. 우한 폐렴 첫 사망자가 나온 날 청와대 영빈관에서 파안대소하던 자들이 떠오른다. 그들의 만찬이 살풍경하게 비쳤다.

#2. 지난해에는 난생처음 입원을 했다. 열이 39℃에 이르고 사대 기운이 없어 병원에 가보니 A형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됐다고 했다. 주위에선 모두 과음 때문이라고 했지만 어리석은 소리였다. 원인은 중국산 조개젓. 제조과정에서 오염된 물질(주로 분변)이 들어가고, 위생적이지 못한 공정을 거친 탓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0일 아카데미 작품상·감독상 등을 수상한 영화 ‘기생충’ 제작진과 출연진을 청와대로 초청, 오찬을 함께하고 격려했다(출처 청와대)

현재 우한발 폐렴만큼은 아니지만 20~30대를 중심으로 지난해 한때 A형 간염이 유행이었다. 연령이 특정된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 경제 수준이 낮고 위생 관념이 떨어졌던 1960~70년대는 예방접종을 해 연세 있는 분들은 이 유행에서 비켜서 있었다.

더럽고 낙후된 환경에서 창궐하는 A형 간염 특성상, 위생 수준이 올라간 1980~90년대에는 발생 보고가 드물고 접종도 사라지는 추세였다. 그러니 감염에 취약하고 아예 잊고 사는 와중이었는데 오염된 중국산 식품에서 과거로 회귀 된 셈이었다.

특별한 치료제도 없다는 A형 간염 덕분에 병실에서 푹 쉬고 지냈다. 감염 후에는 치유 과정에서 항체가 생기니 이제 다시는 A형 간염에 걸리지 않는 게 선물이라면 선물일까. 바이러스가 인생에 직접적으로 끼어든 두 번의 기억이다.

나라 안이 아수라장이다. 2015년 봄에 일었던 메르스 사태 수준을 넘어섰다. 어제, 오늘은 공적 마스크 5부제 이야기가 들렸다. 확진자는 6000명을 넘어섰고 사망자는 42명에 이른다(3월 6일 0시 현재 기준). 출근, 개학, 등원, 영업, 생산, 소비, 유통이 마비되고 얼어붙었다. UN 회원국 반수 이상이 우리 국민을 두고 입국 금지 조치를 내렸다.

중국 우한발 폐렴에 나라가 휘청거린다. 미비한 초기 대응과 섣부른 종식 예언, 대책 없는 방역 방침에 을씨년스럽다. 다음달 15일 총선이 미뤄진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일상은 망가졌다.

성마른 필자는 칩거해 세상 기색을 살피다 뭐라도 알아야겠다 싶어 책 하나를 집어 들었다. 농림축산검역본부에서 연구원으로 재직 중인 수의바이러스 학자 최강석이 쓴 <바이러스 쇼크>다.

<바이러스 쇼크>(최강석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출판)

책은 2016년 메르스 종식 이후 출간됐고 얼마 전 개정판이 나왔다. 생경한 바이러스 이야기를 친절한 중학교 생물 선생님처럼 들려준다. 문과라고 겁먹을 필요 없다. 저자의 방대한 지식과 정보를 장악한 전문성이 시작이겠지만 짐작에는 빼어난 편집자의 첨삭과 윤문이 뒷받침됐을 테다.

우리는 바이러스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세균과 바이러스는 무엇이 다를까. 최초로 발견된 바이러스 종의 숙주는 인간이나 동물이 아니라 식물인 담뱃잎이었다.

남미에서 들여와 놀랍게도 치료용, 기호용 등 다양하게 쓰이던 담뱃잎이 어느 날 (그때 기준으로) 아무 이유 없이 시들고 말라빠졌다. 검은 반점이 묻었다. 국가에서 전매해 막대한 세수를 창출하던 작물이 피해를 보자 여러 연구자가 투입됐고 그 과정에서 최초의 바이러스가 발견됐다. 서막이 열렸다.

이번 우한 폐렴의 전파자라 추정되는 박쥐와 그들의 생태가 왜 위험한지도 책은 설명한다. 5000종에 달하는 포유류 종 가운데 1240여종(약 25%)이 박쥐 종류로 우선 생물학적 다양성이 어마어마하다.

약 5000만년 전부터 지구에 서식했을 박쥐는 진화에 번식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바이러스를 가지고 지낸다. 이후 바이러스와의 성공적인 공생 과정을 거치고 “거대한 바이러스 자연 숙주 역할”을 했으리라고 저자는 분석한다.

이어진 산업발전과 개발로 서식지가 파괴되는 지경에 이르고 먹이를 구하거나 이동하는 경로에 인간들의 터전이 들어서면서 가축이나 인간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하게 됐다. 박쥐는 길게는 2000km를 비행할 수 있다. 군집 생활을 하며 많고 다양하게 수백만 마리가 한 동굴에서 살기도 하는 등 바이러스 전파 조건에 가장 알맞은 동물이라고 저자는 소개한다.

박쥐 종 사이 바이러스가 뒤섞이면서 더 강하고 알 수 없는 신·변종 바이러스를 길러내기도 한다. 중국 사스, 호주 헨드라, 아프리카 에볼라 바이러스 등 전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바이러스 배후에 박쥐가 있었다. 그런 박쥐를 포획하고 요리하고 섭취하는 행위는 섶을 지고 불길에 뛰어드는 격이다.

책에는 박쥐로부터 전파되는 바이러스 진행 과정이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영화 <컨테이젼>의 마지막 장면을 상술해 놓은 듯 읽힌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0일 아카데미 작품상·감독상 등을 수상한 영화 ‘기생충’ 제작진과 출연진을 청와대로 초청, 오찬을 함께하고 격려했다(출처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0일 아카데미 작품상·감독상 등을 수상한 영화 ‘기생충’ 제작진과 출연진을 청와대로 초청, 오찬을 함께하고 격려했다(출처 청와대)

책에 소개된 전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팬데믹(Pandemic·세계적 대유행) 바이러스 종류와 특성을 읽으며 앞으로 이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 생각해볼 수도 있다. 하지만 신·변종 바이러스의 특성상 예측 가능성은 희박하다. 변이와 진화가 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따뜻한 계절이 오면 바이러스 전파세가 줄 거라는 일반적인 예측이 이번에는 아닐 수도 있다는 전문가 의견도 있다. 감염원을 전부 차단하고 격리하라는 전문가 집단의 요청을 정파라는 진흙탕에 묻혀 물리쳐버린 정부의 대응에 절망하는 이유다.

통상 6단계로 구분하는 전염병 유행 단계(WHO 기준)에서 현 상황은 5단계(전염병이 동일 권역(대륙) 두 개 이상 국가에서 발생한 상태)로 6단계 세계적 대유행인 팬데믹을 목전에 두었다.

마스크 생산, 유통 단계에 부적절하게 개입해 시장을 교란하고 수급난을 빠지게 만든 정부 당국은 팬더믹에 대응하는 매뉴얼 혹은 복안이 있을지, 적어놓고 절망스럽다.

구청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하던 때 일이다. 한창 신종 조류 인플루엔자가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그날 구내식당 메뉴는 닭백숙이었고 줄 서서 배식을 기다리는 중에 뒤에 선 한 공무원이 이런 말을 했다.

 

조류 독감(명칭부터 틀렸다)이 유행이라고 다들 호들갑 떠는 모양인데 실은 그거 별거 아니야. 내가 촌에서 자랐잖아. 날씨 쌀랑해지면 가금류들도 감기에 걸려요, 걔들도 추우니까. 하루, 이틀 일이 아니란 말이지. 그걸 가지고 살처분이니 방역이니 난장을 떠니까 우습지, 안 그래?


책을 읽고 알면 알수록 무지몽매한 소리다. 모르면 입을 다물어야 한다. 알려면 제대로 알아야 하고. <바이러스 쇼크>는 백지상태인 바이러스 관련 지식을 하나씩 새겨줄 친절한 안내서다.

코로나19 방역 일선 현장에서 애쓰시는 분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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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환희 기자

일생을 지망생으로 살았다. 가수지망생, PD지망생을 거쳐 취업지망생까지. 지망은 늘 지망으로 그쳤고 이루거나 되지 못했다. 현재는 이야기를 짓는 일을 지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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