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부족해 이름 써놓고 사흘째 쓰는 의료진

고글·덧신 재사용하거나 비닐·헤어캡 대체
“마스크 재고 쌓아둔다” 박능후 장관에 대전협 “의료현장은 마스크 대란” 반박

의료현장에서 일회용으로 써야 하는 마스크에 이름을 써서 보관하거나 소독해 재사용하고 있어요. 레벨D 방호복에 들어 있는 N95 마스크만 버리고 코로나19 의심환자 코호트 구역 들어갈 때 쓰는 N95 마스크는 사흘 씁니다.

경기도 소재 수련병원 A 전공의가 현장의 마스크 대란에 대해 이같이 토로했다. 계속되는 코로나19 사태 속에 의료현장 역시 마스크, 방호복 등 보호구 부족에 허덕이고 있다.

재사용을 위해 마스크에 개인 이름을 표기하고 있다(제공 대한전공의협의회)

A 전공의는 “하루는 CPR을 하면서 들어오는 환자 진료를 위해 급하게 레벨 D를 입고 있는데 고글이 들어있지 않았어요. 환자를 눈앞에 두고 다시 새로운 보호구를 착용할 시간이 없어서 불완전한 레벨 D 상태로 진료했습니다. 동료 전공의는 어느 날 덧신도, 고글도, N95 마스크도 없는 방호복을 마주하기도 했어요”라며 걱정을 했다.

보호구 재사용도 불안한데 불량도 허다하다는 지적이다. 코로나19 의심환자를 진료하는 의료진의 감염 위험이 커지는 셈이다.

이처럼 의료진들은 급박한 상황이 마무리되고 나면 코로나19 검사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려야 한다.

대구에 긴급 파견된 의료진도 다르지 않다.

덧신이 부족해 비닐과 헤어캡을 씌운 모습(제공 대한전공의협의회)

대구지역 대학병원에서 코로나19 감염환자 주치의를 맡은 B씨는 “보호구 중에 덧신이 없어서 비닐로 발을 감고, 헤어캡을씌워서 다니고 있어요. 일회용 고글도 부족해 사용 후 닦아서 재사용하고 있습니다”라고 털어놨다.

이어 그는 “현장에서 항상 환자들을 위한 결정을 하고 싶어요. 방호복 부족으로 도움이 필요한 환자에게 선뜻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 생길까 봐 두렵습니다. 격리하는 환자들에게 공급할 마스크도 부족한 상태라 환자들에게 면목이 없습니다”라고 오히려 미안해했다.

서울 어느 병원에서는 마스크 재사용을 위해 아예 ‘마스크 걸이’를 만들어 두기도 한다.

재사용을 위해 수술실 입구에 마스크 걸이를 만들어 놓은 모습(제공 대한전공의협의회)

A 전공의는 “마스크를 어떻게 소독해야 기능이 떨어지지 않으면서 효과적인지 논문을 찾아보는 일도 있었어요. 처음에는 알코올을 뿌려서 소독했지만, 정전기식 마스크에는 추천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확인한 헤프닝도 벌어졌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심지어는 마스크 지급이 전혀 되지 않는 병원도 존재한다.

서울 한 대학병원 C 전공의는 “덴탈 마스크도 부족해 전공의든 간호사든 밖에서 사와야 한다. 특히 전공의는 병동을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환자들과 가장 많이 접촉하는데, 가장 기본적인 덴탈 마스크조차 이런 대형병원에서도 공급이 불안정하니 참담합니다”고 토로했다.

이런 ‘마스크 대란’ 상황에 보건당국은 의료계에 마스크, 방호복 등이 부족하지 않다고 밝혀 논란이 되고 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마스크, 방어복 등 보호구가 그렇게 부족하지 않다”면서 “하루 소비량이 200벌인데 300벌을 공급하고 있다. 방호복이 부족하다면 의료진들이 움직일 수 있겠는가”라고 발언한 바 있다.

박능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중앙사고수습본부장(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2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회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이에 A 전공의는 “현장에 몇 번 와봤다고 해서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것보다 잘 안다고 할 수 없어요. 공급했다는 것에만 집중할 게 아니라 공급된 것이 충분한지 확인해야 합니다”라며 “감염병으로 인한 위기상황이 아닐 때도 감염의 위험이 있는 환자 또는 감염의 위험이 확인되지 않더라도 체액이나 분비물이 많이 튀는 시술을 하고 난 뒤에는 마스크를 포함한 모든 보호구를 폐기하고 새로운 마스크를 착용하고 다른 환자를 보는 것이 당연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각 부서가 매일 재고를 걱정하고 EMR 첫 화면이 실시간 마스크 재고인 상황입니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병원은 항상 응급상황이 벌어지는 곳이고 응급상황에서 보호구의 오염은 너무나 당연해요. 코로나19만 환자를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모든 환자도 감염의 위험에 노출되지 않고 치료받아야 해요”라며 유감을 드러냈다.

C 전공의 역시 “남은 건 사명감밖에 없는데 보건당국의 안일한 언행으로 인해 사기만 떨어지는 것 같아요”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이에 대한전공의협의회(회장 박지현)는 홈페이지에서 마스크, 방호복 등 부족한 보호구 신청을 받아 대구·경북 지역 수련병원을 중심으로 제공하고 있으며, 현 실태에 대한 설문조사도 진행 중이다.

박지현 회장은 “전공의들은 코로나 사태에서도 언제나처럼 최전선에서 환자 진료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얼마 전부터 마스크 공급에 차질이 생겨, 대전협은 의사협회가 회원을 대상으로 모은 성금을 지원받아 전공의들을 위해 마스크를 제공하고 있었다. 재고 비축을 위해 부족하다는 이야기에 우리 의료진은 힘이 빠진다. 병원 의료진이 안전하지 않으면 환자가 위험해지고, 대한민국이 위험해진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