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서른다섯, 다시 화장품 사러 갑니다

수많은 분야의 지식에 취약하지만, 그 가운데 화장품 등 코스메틱 분야는 정말 ‘알못’이다. 세수하고 그저 찍어 바르는 것 정도로 화장품을 여기지는 않은데 그보다 나은 수준이라고 하기에도 머쓱하다.

면도 후 스킨을 발라야 한다는 상식 정도는 알고, 선크림은 필수라는 인식은 가지고 있다. 선호하는 브랜드는 없으며 화장품의 비싼 값어치가 내 피부와 미용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알지 못한다. 다이소에서 저렴한 제품을 골라 때가 된 것 같으면 바르는 정도. 비비 크림은 언감생심.

요즘은 눈 화장을 비롯해 여성 못지않게 색조 화장을 즐기는 남자도 많다는 얘기는 들었다. 색조와 기초 두 종으로 제품을 구분한다는 사실도 얼마 전에 알았다. 그루밍족이나 메트로 섹슈얼은 남의 나라 이야기로만 여겼다.

서른다섯, 다시 화장품 사러 갑니다(최지현 지음 / 다른 출판)
서른다섯, 다시 화장품 사러 갑니다(최지현 지음 / 다른 출판)

<서른다섯, 다시 화장품 사러 갑니다>라는 책은 그런 가운데 만난 책이다. 화장품 비평가라는 저자의 직업은 생경했다. 요즘 유행하는 뷰티 블로거나 유튜버 같은 건가. 책을 읽어보니 두 직업(?)보다는 더 전문적이고 건조한 느낌이었다. 책은 알록달록 매끈한 표지 디자인과 달리 시종 엄격, 근엄, 진지로 일관한 톤이었다. 상냥한 제목과 다르게 분석적이었다. 어느 대목은 흡사 화학 관련 서적을 읽는 기분이었다.

저자는 별 기준이 없거나 유명한 인물의 품평에 기대어 화장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에 진한 안타까움을 느꼈다. 단순한 느낌이나 기분에 기댄 소비보다는 좀 더 과학적이고 객관적 기준을 두어 화장품을 구매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화장품이 눈부신 변모를 가져다주지도, 기함할 만한 안티에이징을 전해주지도 않을 거라며 덧붙이기도 했다.

그저 “피부의 외관을 개선하고 노화의 속도를 지연시킬 수 있는 성분들에 관하여 공부하고 현명하게 사용하면 된다”라고 한다. 온갖 정보와 노하우가 홍수처럼 쏟아지는 시대에 그런 자세가 어디 쉬울까. 책을 들여다보자.

서두는 총론이다. 화장품이라는 ‘제품’을 이해하고 대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입소문, 리뷰, SNS 홍보 등 많고 넘칠수록 도움이 될 것 같은 이른바 정보는 오히려 선택과 구매에 방해가 되는 것이 사실이다. 화장품을 얼마간 공부하고 나서야 얻을 수 있는 뚜렷한 주관과 기준이 필요한 이유이다.

저자는 꽤 도발적인 명제 하나를 제시한다. ‘화장품은 어떻게 고르건 비슷하다’라고. 이미 관리·감독 당국에서 판매를 허가한 제품 모두 안정성이 검토됐고 유해성 기준을 충족한 안전한 제품이다. 각자의 취향과 향, 질감, 점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했다. 백화점을 두루 다니며 더 비싸고 고급스러운 제품을 찾는 소비자에겐 어이없을 만한 내용이고, 다이소에서 1~2초 사이에 쓸 제품을 고르는 필자 같은 소비자에겐 흡족한 한편 생소하게 느껴질 이야기였다.

화장품 성분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많은 소비자가 제품을 고를 때 함유된 성분을 주목한다고 하는데, 이 또한 의미가 없고 틀린 방식이라고 했다. 제품을 홍보할 때 대대적으로 알리는 성분의 함유량을 정확히 알 수 없고 심지어 극히 미미한 수준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성분표는 그저 화장품에 들어 있는 모든 성분의 이름을 열거해놓은 재료 목록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이른바 화장품 전문가라고 활동하는 사람들도 성분표에 담긴 진실을 이야기하면 세상의 비밀이라도 발견한 양 놀라기 일쑤라고 했다.

독성과 유해성, 위해성이라는 개념도 설명하는데 여기에도 주의를 기울이는 일이 ‘완전히 잘못된 방식’이라고 역설한다. 물질에는 절대적인 위험도, 절대적인 안전도 없기 때문이라며 효과도 비슷한 식으로 해석하면 된다고 말했다.

언젠가 한 의료관계자에게 들은 말이 떠올랐다. 관계자는 “약이라는 게 달리 말하면 독약이라고 할 수도 있어요. 어느 약이든 부작용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죠. 그걸 줄이면 약, 그걸 줄이지 못하면 독약이 되는 거죠”라고 말했다. 약과 마찬가지로 화장품에 들어가는 물질(성분) 역시 절대적 안정성을 보장하지도, 절대적 위해성을 내재하지도 않은 셈이었다.

제품 광고에서 대대적으로 선전하는 기가 막힌 성능과 효과 역시 믿을 바가 못 된다고 저자는 알려준다. 화장품은 피부를 획기적으로 바꿔줄 수 없다며, 4가지 효과로 화장품의 할 수 있는 일을 정의 내린다.

1. 청결 유지
2. 유수분 보충으로 편안한 피부 상태 보조
3. 환경으로부터의 피부 보호
4. 용모 개선에 약간, 일시적인 도움

이 책을 읽으며 막연히 가졌던 화장품의 환상은 깨지게 됐다. 잘 알지 못하거나 알려고 하지 않아서 그렇지, 막상 깊이 공부하고 이해하면 이상적이지 않은 실상을 깨닫게 된다. 그의 결론은 ‘화장품 구매의 기준은 결국 감각과 취향’이다.

환상이 깨진 자리에 현실이 남았고, 이제는 제품을 어떻게 구매해야 할지 알아볼 차례이다. 앞서 화장품에 대한 지식을 알아봤다면, 이제는 (구매할 때 필요한) 정보다. 자외선 차단제, 안티에이징 제품, 각질제거제, 클렌저까지 제품을 고를 때 알아야 하고, 고려해야 할 정보를 전달한다. 진정 ‘화알못’들을 위한 꿀팁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가 생각하는 적정 가격과 가격에 걸맞은 제품군까지 ‘진열’되어 쇼핑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두껍지 않은 분량에 실팍한 지식과 정보가 담긴 책이다. 화장품을 조금은 안다는 독자에게도, 전혀 문외한인 독자에게도 유용한 책이 될 테다. 마침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선정하는 2020 세종도서에 꼽히기도 했다니 더욱 신뢰할 만한 저작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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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
이환희 기자

일생을 지망생으로 살았다. 가수지망생, PD지망생을 거쳐 취업지망생까지. 지망은 늘 지망으로 그쳤고 이루거나 되지 못했다. 현재는 이야기를 짓는 일을 지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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