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에겐 왜 남성용 화장품이 필요할까

남성용 화장품을 따로 만들어야 하는 결정적 이유

폴라 비가운은 세계 최초의 제품 리뷰 책 <나 없이 화장품 사러 가지 마라>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화장품 전문가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 ‘폴라스초이스’를 시작하기 훨씬 이전부터 화장품에는 남녀의 구별이 필요 없다고 주장해왔다. 여성과 남성의 피부는 차이가 없으며 들어가는 성분에도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폴라스초이스의 창립자 폴라 비가운과 그녀가 쓴 책 <나 없이 화장품 사러 가지 마라>(최지현 옮김/중앙북스 출판)

이 조언에 맞게 그녀의 브랜드 폴라스초이스는 처음부터 남녀 공용으로 출발했다. 남성용으로 따로 만든 쉐이빙 크림을 제외하면 그녀의 제품에 남녀 구별은 없었다.

그런데 2014년, 그녀가 느닷없이 폴라스초이스에 남성용 라인인 ‘피씨포맨(PC4MEN)’을 추가했다. 남성용 화장품은 불필요하다던 입장에서 180도 선회한 것이다.

게다가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든 남성용 제품이 기존의 폴라스초이스 제품을 그대로 복제한 것이다. 포장만 바꿨을 뿐 같은 제품이다.

폴라스초이스의 남성용 라인 ‘피씨포맨’은 기존 제품을 복제해 탄생했다. (사진 왼쪽부터)‘페이스워시’는 ‘퍼펙틀리 내츄럴 클렌징 젤’과 똑같고, ‘바디워시’는 ‘올오버 헤어&바디 샴푸’와 똑같다
(사진 왼쪽부터)‘수드&스무스’는 리지스트의 ‘데일리 포어 리파이닝 트리트먼트 위드 2% BHA’와 똑같고, ‘데이타임 프로텍트’는 스킨밸런싱 라인의 ‘울트라 시어 데일리 디펜스 브로드 스펙트럼 SPF 30’과 똑같다. 포장만 다를 뿐 같은 제품이다

당시에 폴라의 이런 결정에 대해 비판적인 여론이 많았다. 화장품회사들의 과장 마케팅과 상술을 비판해왔던 그녀가 결국엔 똑같은 길을 걷고 있다고 비난받았다.

그러나 폴라가 왜 이런 결정을 했는지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폴라는 근 20년 동안 남성 라인 없이 사업을 꾸려왔다. 하지만 그녀가 아무리 화장품에는 성별 구분이 필요 없다고 말해도 남자 고객은 늘지 않았다. 남자들에게 폴라스초이스를 바르게 하려면 남성용 화장품이 불필요하다고 말할 게 아니라 별도의 남성용 라인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왜 남자에게 별도의 남성용 라인이 필요할까?

우선, 남자들은 여성용 화장품을 어려워한다. 이해할 수 없는 분류와 용어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여성용 화장품은 분류가 너무 복잡하다. 데이크림, 나이트크림, 여기까지는 좋다. 링클 크림, 화이트닝 크림, 뭐 여기까지도 괜찮다. 그런데 에센스? 세럼? 부스터? 앰플? 도대체 어디에 쓰는 물건일까.

남자들에게 에센스와 세럼과 부스터와 앰플의 차이에 대해 설명해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에센스는 영양성분을 농축해 놓은 제품을 뜻하고, 세럼은 에센스와 비슷하지만, 질감이 좀 더 묽은 것을 뜻하고, 부스터는 영양성분을 고농도로 농축해서 다른 제품에 섞어 쓸 수 있도록 만든 제품을 뜻하고, 앰플은 영양성분을 고농도로 농축해서 1회분씩 포장해놓은 제품을 뜻한다, 라고 설명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마도 “어? 뭐라고? 그래서 그게 뭐가 다른데?”라고 말하지 않을까.

제품명은 더욱 어렵다. 스킨 리뉴얼 크림, 링클 디펜스 턴어라운드, 퓨어 내추럴 리프레싱 토너, 인텐시브 코렉션 세럼, 모이스처 리차지 세럼, 도대체 무슨 뜻일까.

영어라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영어를 사용하는 영미권 남자들조차도 이런 식의 제품명을 어려워한다. 왜냐하면 남자들은 화려한 미사여구와 추상적·감성적 표현을 해석하기 어려워하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물건을 고를 때 목적과 기능 중심의 사고를 한다. 이들은 물건을 기능에 따라 명확하게 분류하고 혼동이 없는 단순한 이름을 붙인다.

예를 들어 남자들이 좋아하는 카메라를 보면 모든 제품이 겹침 없이 명확하게 분류된 것을 볼 수 있다. 크게는 미러가 있냐 없냐에 따라 ‘DSLR’과 ‘미러리스’로 분류하고, 그다음은 센서의 크기에 따라 ‘풀프레임’, ‘크롭’, ‘마이크로포서즈’, 1인치 등으로 분류한다. 제품명도 철저히 이 분류에 따라 등급을 매긴다.

사진=픽사베이

캐논 카메라를 보면 DSLR 풀프레임급 안에 1D, 5D, 6D 등 일단위 시리즈가 있고 각 시리즈마다 마크1, 마크2, 마크3로 진화한다. DSLR 크롬급으로 오면 10D, 20D, 30D 등 십단위 시리즈와 300D, 350D, 400D 등 백단위 시리즈가 있다.

이는 체계적이고 질서 있는 분류라서 이 분류법을 터득하기만 하면 누구나 모델명을 듣는 순간 어떤 카메라인지, 언제 나왔는지, 대략의 사양을 짐작할 수 있다. 즉 누군가가 캐논 800D를 쓴다고 하면 그것이 300D에서 진화한 DSLR 크롬급이고, 한 단계 위의 성능을 지닌 80D와 비슷한 2016~2017년경에 나왔을 거라고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카메라뿐만 아니라 자동차, 총, 컴퓨터 프로세서 등 남자들이 환장하는 모든 것들은 이런 분류법을 따른다. 그 이유는 이것이 가장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사물을 분류할 때 어떤 모호함이나 오해가 없는 명확함을 중시한다. 규칙, 질서, 정확, 신속, 효율이야말로 남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들이다.

이런 남자들에게 여자들이 구축해놓은 화장품 문화는 혼란 그 자체다. 여자들이 화장품을 분류하는 방식은 명확한 규칙보다도 그때그때의 필요성, 느낌과 감성에 의존하는 면이 크기 때문이다. 여자들에겐 같은 데이용 모이스처라이저라도 젤이냐 로션이냐가 매우 중요하다. 질감의 차이가 발랐을 때의 느낌을 다르게 만들기 때문이다.

똑같은 레티놀 제품이라도 그것이 주름개선 에센스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것과 항노화 앰플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것은 여자들에게 매우 다르게 다가온다. 여자들이 한 제품에 정착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제품을 시도하고 한꺼번에 여러 제품을 사용하는 것도 우리에겐 이 모든 것이 다르게 분류되기 때문이다.

화장품회사들은 여자들의 이런 감성적인 면을 잘 알기 때문에 제품명을 지을 때 이런 면을 적극 공략한다. ‘링클 이레이저’, ‘스킨 퍼펙트 링클 리무버’, ‘하이포텐시 레티놀 트리트먼트’ 등 화려하고 과감한 표현을 동원한다.

그런데 남자들에겐 이것은 쓸데없는 말잔치일 뿐이다. 남자들이 화장품에 대해 알고 싶은 건 단 몇 가지뿐이다. 그래서 무슨 용도의 물건인가? 언제, 왜 써야 하는가? 그게 전부다.

따라서 남자들이 화장품을 제대로 쓰게 하려면 남자의 방식에 맞춰서 설명해주어야 한다. 현란한 미사여구나 추상적인 단어를 지우고 목적과 기능 위주의 명확한 표현이 필요하다. 폴라가 남성용 라인을 만들면서 기존 제품의 이름을 어떻게 바꿨는지 보면 알 수 있다. 복잡한 것은 다 생략하고 오로지 언제, 왜 쓰는지만 강조했다.

폴라스초이스는 기존의 제품을 남성용으로 재포장할 때 남자들의 사고에 맞춰 기능과 목적을 부각시킨 단순한 이름으로 바꾸었다

디자인도 중요하다. 화장품은 기능을 가진 제품이지만 한편으로는 감수성이 매우 예민한 상품이다. 여성의 취향에 맞춰 포장된 제품을 남자에게 사용하라고 하면 당황할 수밖에 없다.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모티브를 살린 디자인보다는 단순하면서 세련된 디자인을 남자들은 선호한다. 특히 포장에 ‘포맨’(For Men), 즉 ‘남성용’이라고 적혀있어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

화장품 숍에도 남성용 브랜드만 따로 모아놓은 코너가 필요하다. 시대가 많이 바뀌긴 했지만, 아직도 남자들은 화장품 가게에서 느긋하게 화장품을 고르는 것을 어색해한다. 특히 여성용 코너에 서 있는 것은 마치 여성복 상점에서 여자들 틈에서 홀로 서 있는 것처럼 진땀이 나는 일이다. 제품도 너무 많고 분류가 복잡해서 뭐가 뭔지 모르겠다. 이들에게 효율적이고 편리한 쇼핑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서라도 남성용 제품만 따로 모아놓은 별도의 공간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남성용 화장품이 필요한 또 한 가지 이유는, 향기에 대한 선택권을 주기 위해서다.

향은 화장품에 매력을 더하는 장치이다. 어떤 향이 나느냐에 따라 제품에 대한 만족감이 달라질 정도다. 무향이 피부에 가장 좋다고 하지만, 고급 브랜드일수록 무향 제품이 없다. 럭셔리 브랜드들은 가장 고급스럽고 호사스러운 향을 만드는 데에 비용을 아끼지 않는다.

여자들은 화장품의 향을 통해 심리적 만족감을 느끼고 성적 매력을 더하려는 노력을 꽤 오래전부터 해왔다. 당연히 남자 화장품도 이런 기능을 충족해야 한다. 보통 여자들은 꽃, 과일, 허브 등 사랑스럽고 은은한 향을 선호하고, 남자들은 나무, 풀, 스파이스 등 강하고 묵직한 향을 선호한다.

<향기 지도> 대체로 왼쪽에 있는 향을 여성이 선호하고, 오른쪽에 있는 향을 남성이 선호한다

화장품은 오랜 세월 여성 중심의 산업으로 성장해왔다. 그만큼 남자들이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복잡하고 어려운 면이 많다. 화장품 업계가 남성용을 따로 만드는 이유는 상술이 아니다. 성별에 따른 취향의 차이와 심리의 차이를 반영한 지극히 당연한 제품 개발이자 마케팅이다.

화장품비평가. 작가 겸 번역가. ‘뉴스위크’ 한국어판 번역위원을 지냈다. 2004년과 2008년에 두 차례 폴라 비가운의 ‘나 없이 화장품 사러 가지 마라’를 번역하면서 화장품과 미용 산업에 눈을 떴다. 이후 화장품비평가로 활동하면서 ‘헬스경향’, ‘한겨레’ 등에 과학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화장품의 기능과 쓰임을 정확히 알리고 있다. 지은 책으로 '서른다섯, 다시 화장품 사러 갑니다'(2020·세종도서 선정), ‘화장품이 궁금한 너에게’(2019), ‘나나의 네버엔딩 스토리’(공저), ‘명품 피부를 망치는 42가지 진실’(공저) 등이, 옮긴 책으로 ‘하루 30분 혼자 읽기의 힘’, ‘아무것도 못 버리는 사람’ 등이 있다. the_critic@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