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총파업, 집단 이기주의로 몰아도 될까

올해 2월을 기억한다. 새봄을 기다렸다 마주한 낯선 이름의 바이러스.

이웃 나라에서 발병이 시작됐다는 이야기는 좀체 우리와 먼 얘기처럼 들렸다. 이내 한 자릿수 감염자들이 보고됐다. 바이러스 전파력은 굉장했다. 기하급수로 급증하더니 도시 하나를 마비시켰다. 미증유의 사태에 시민들은 허둥지둥했다. 보건 당국의 대응 역시 미흡했다. 백신과 치료약은 물론 존재하지 않았다.

이때, 처음 마주하는 바이러스와 맞서는 이들이 나타났다. 의료진들이었다. 그들은 단순한 대증요법 이상의 처치 말고는 손 쓸 수 없는 바이러스 감염 현장을 뚫고 들어갔다. 2020년 2월의 대구, 청도, 경산을 비롯해 전국 각지의 선별진료소에 그들이 있었다. 정부를 비롯한 시민들은 그들을 일러 ‘바이러스 전사’들이라고 했다.

지난 14일 서울 여의대로에서 열린된 ‘4대악 의료정책 저지를 위한 전국의사총파업 궐기대회’

반년이 흘렀고, 하루 만이라지만 의사들은 일손을 놓았다. ‘진료 거부’라는 이름의 파업이 벌어졌다. 바이러스의 전사들은 어느새 자기 밥그릇만을 챙기는 집단 이기주의 화신들로 변해있었다. 정부와 여당이 일방적으로 발표하고 추진하려는 의대 증원과 공공의대 설립에 맞서 의사들은 싸우는 중이다.

초유의 바이러스와 맞서 싸우던 의사들은 직장인 평균 몇 배에 이르는 소득을 독점적으로 지키기 위한 이기주의자로 몰렸다. 정부의 방안에 문제점을 하나하나 설명하고 호소해도, 잘 들리지 않는 듯했다.

한 지상파 뉴스 앵커는 가난한 노동자들의 ‘전유물’이라 할 파업을 고액 직업인 의사들이 벌이는 중이라며 비아냥댔다. 자신들의 파업과 업무 거부에는 언론 독립이니, 공영 방송 수호이니, 거창한 명분과 이름을 붙이는 데 머뭇거리지 않던 이들이었다. 그 입과 글, 말에서 지난번엔 바이러스 현장을 지키는 의료진의 거룩한 헌신과 소명이 나왔을 것이다.

며칠 사이에 밥그릇만을 위한 집단 이기주의자들로 변한 의사들이 바이러스 전선에서 싸운 기록을 마주했다. 경북대 의대 이재태 교수가 엮은 <그곳에 희망을 심었네>라는 책이다. 책은, 대구 동산병원을 본진 삼아 바이러스와 싸우며 시민들을 지키던 의료진들의 현장 기록이다.

영상으로는 많이 비쳤지만, 그것은 남의 시선이었다. 책은 의료진들이 직접 글을 쓰고 다듬어 모았다. 전문 작가들이 아니기에 거칠고 서툰 구석이 있을지라도, 아니 그래서 더 각별하게 읽혔다. 지역 의사회장부터 병원장, 의과대학 교수, 전문의, 간호사, 환자 이송원에 이르기까지 그곳, 그 시간을 겪고 치러낸 이들의 진득한 기록이다.

레벨5 방호복을 입고, N95 마스크를 부착하듯 쓰고 장화, 덧신까지 완전 무장한 뒤 한 사람이라도 더 바이러스로부터 꺼내오려는 집념과 투지, 직업인으로서의 소명이 느껴졌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인두겁을 쓰고 저 현장에 갖은 막말을 일삼았던 많은 이들이 떠오른다. 그들은 말의 방향과 모습을 바꿔가며 여전히 의료인들을 모욕하는 데 지금도 앞장서고 있을 것이다.

언젠가 지하철을 타려는 데 어떤 이가 쓰러져 긴급한 상황이 벌어졌다. 모두가 어쩔 줄 몰라 하는데, 자신이 의사라며 쓰러진 이에게 CPR을 하며 현장에 있는 사람에게 119 구조 요청을 부탁하고, 제세동기를 가져다 달라고 요청했다. 의료인의 빠른 대처로 큰 위기를 겪지 않으며 쓰러진 사람은 구조대에 실려 나갔다. 그날, 글 쓰는 단순한 자질이 낯부끄러웠다. 사람을 살리는 공부와 술기를 익혔더라면.

의료진이 진료 거부로써 주장을 표명하는 오늘, 의료를 생각한다. 언제, 어디서고 어렵지 않게 의사를 마주할 수 없고 진찰을 받을 수 있으며 합리적인 비용으로 제도를 누릴 수 있는 현재와 정부가 주장하는 필수의료인력 공백, 진료 서비스 증대를 떠올린다.

지난 2월의 혹한과 더불어 창궐했던 역병, 현장에서 오직 환자만을 생각하던 의료진을 기억한다. 고액 연봉과 부화방탕한 사치를 일삼는다고, 밥그릇을 위해 환자를 볼모로 집단 이기주의적 행동을 자행한다는 세간의 지탄을 곱씹는다. 이 모든 말과 제도, 인식이 들씌워진 곳에 의사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