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진료(원격의료)에 대한 찬반 여론이 분분한 가운데, 대한병원협회가 최근 의료계의 총의를 모으는 절차 없이 ‘원칙적 찬성’ 입장을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대한병원협회(회장 정영호)가 비대면 진료 제도 도입에 ‘원칙적으로 찬성한다’는 기본입장을 밝혔다.

병협은 지난 4일 오전 서울 강남구 코엑스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제3차 상임이사회를 열고 비대면 진료에 대한 기본 입장을 채택했다.

병협은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원격화상기술 등 ICT를 활용한 정책발굴과 도입이 본격화되는 상황에서 국민보호와 편의증진을 위한 세계적 추세 및 사회적 이익증대 차원에서 비대면 진료의 필요성을 긍정적으로 인식한다는데 공감하고 이같이 결정했다.

다만 비대면 방식의 의료정책 마련에서는 과거 원격의료 도입 주장에 대해 언급해 온 바와 같이 △초진환자 대면진료 원칙 △적절한 대상질환 선정 △급격한 환자쏠림 현상 방지 및 의료기관 종별 역할에 있어 차별금지와 환자의 의료기관 선택권 보장을 전제 조건으로 제시했다.

아울러 비대면 진료는 안전성과 효과성이 인정될 수 있는 영역부터 단계적으로 시행·조정해야 한다며 △국민과 환자의 건강보장과 적정한 의료제공 △의료기관간의 과당경쟁이나 과도한 환자집중 방지 △분쟁 예방과 최소화 △기술과 장비의 표준화와 안전성 획득 △의료제공의 복잡성과 난이도를 고려한 수가 마련 등을 제안했다.

대한병원협회 정영호 회장


정영호 회장은 “비대면 의료체계의 도입과 논의를 위해서는 세 가지의 기본 전제조건과 다섯 가지 제시된 사항이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것”이라며 “사안에 따라 개방적이고 전향적 논의와 비판적 검토를 병행하여 바람직하고 균형 잡힌 제도로 정립해 나가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병협의 비대면 진료 ‘원칙적 찬성’ 입장에 대한의사협회(회장 최대집)가 즉각 유감을 나타내며 강도 높게 비판하고 나섰다.

대한의사협회 중소병원살리기 특별위원회(위원장 이필수)와 대한지역병원협의회(의장 이상운)는 5일 병협이 기존 입장을 즉각 철회하고 의협과 비대면 진료 대응방향 재논의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비대면 진료에 대해 전제를 달았지만, 누가 봐도 원격의료를 병협이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드러냈다고 의협은 비판했다.

의협은 “정부도 국민의 편의성을 위한 원격의료 도입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시행을 위해서는 더 많은 준비가 요구된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며 “의료계 대표단체인 의협의 동의가 필수라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이어 “그런데도 병협은 의협과 아무런 상의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병협의 3300여 회원 병원에 대해 의견수렴을 진행한 적도 없이 ‘비대면 진료 도입에 찬성한다’고 발표했다”며 “이처럼 전체 의료현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사안에 대해 회원 기관들의 의견 수렴 절차를 생략하고 절차적 정당성을 상실한 것은, 병협 집행부의 독단이고 권한의 남용이자 법적 책임 등 사회적 논란을 일으킬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비대면 진료 도입으로 인해 수혜를 보는 쪽은 일부 대기업과 대형병원뿐이다. 환자의 건강상태는 밤새 어떤 상황이 생길지 아무도 모른다”며 “그런데 초진으로 한 번 환자를 본 후에 원격으로 화면만 보고 진료를 하다가 오진을 해, 살 수 있는 환자가 죽게 된다면 누가 책임질 것”이냐고 되물었다.

의협은 “만일 병협이 일부 대형병원과 대기업의 이익만을 위해 국민 건강권을 해치는 비대면 진료 추진에 계속 앞장선다면 의료계와 국민의 이름으로 강력한 저항운동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이후 발생하는 모든 사태의 책임은 병협 집행부를 비롯한 원격의료 추진 세력들에게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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