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국시 거부로 내년 인턴 2700명 부족, 누가 피해보나

지난 10일 열린 의사 국가고시 실기시험 응시율 14%

올해 의사 국가고시 실기시험은 지난 10일 마무리됐다. 응시대상의 86%, 2700여명이 시험을 치르지 않았고 다음해 의료 현장에서 올해 미응시인원 만큼의 공백은 불가피하게 됐다.

당장 공중보건의와 군의료관 인력을 충원할 수 없고 노동 강도가 더해 갈 대학병원, 수련병원의 피해도 적지 않을 예정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내원한 환자를 대응할 현장인력이 없어 의료사고로 이어질 것이란 예측이다.

이번 사태는 지난여름으로 거슬러 간다. 지난 7월 23일 정부와 여당이 당정협의를 통해 오는 2022년부터 의대 신입생 정원을 매년 400명씩 총 4000명을 추가로 모집한다고 발표했다.

폐교된 서남의대 정원을 이어받을 공공의대도 신설한다고 덧붙였다. 당시 정부는 향후 코로나19 같은 팬데믹을 대비하고 고질적인 의료 수급 현실, 특히 필수 의료 인력을 확충한다는 명분을 이야기했다.

의료현장은 즉각 들끓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전문가 직역 단체인 대한의사협회 등 의사들을 대표하는 단체와 일말의 사전 협의도 없이 발표했다는 반발이었다. 초유의 의료거부 투쟁이 시작됐다.

정부를 향한 집단행동은 전문의, 수련의, 개원의뿐만 아니라 의과대학까지 이어졌고, 올해 국가고시를 응시하는 의대 본과 4학년 학생들이 국시를 거부했다.

8월 14일 서울 여의대로에서 열린된 ‘4대악 의료정책 저지를 위한 전국의사총파업 궐기대회’

정부와 의료계 간 분쟁은 한 달여간 이어지다 지난 9월 4일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과 한정애 민주당 정책위의장 간 전격적인 합의로 일단락되는 듯 보였다. 코로나19 이후로 증원 논의를 미룬다는 것.

당시 의료 투쟁의 허리라 할 전공의들도 모르게 진행된 합의였으나 정부가 의사들을 향한 고발을 취하한다는 내용이 담겼고 이어진 의협 대의원 회의에선 최 회장을 재신임하기로 결론 내렸다. 그렇게 모든 일이 봉합될 것 같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의대 본과 4학년생들은 초조했다. 여당과의 합의 안에 의대생 국가고시 구제에 관한 내용은 담기지 않았다. 이따금 이 문제를 짚은 언론의 기사 속 댓글 반응은 좋지 못했다. 정부 측 입장 역시 강경했다.

국민적 동의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국시 재응시는 불가.

석 달 내내 이 견해에서 한 치 물러섬이 없는 형국이다. 국민 여론 역시 “의사 국시만 예외적으로 재응시를 시행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현장 의료인들 사이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대 의료관리학과의 한 관계자는 “의사가 2700명 가까이 안 나오면 현장에서 인력이 많이 부족할 것”이라고 말했다. 피부과, 성형외과 등 인원이 충분한 인기학과는 몰라도 외과, 내과, 산부인과 등 이른바 필수학과에는 기존의 인력난에 어려움이 더 보태질 것이라는 예측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더군다나 산간, 벽촌에 파견되는 공중보건의와 미비한 군 의료현장에 곧 시설이자 술기라 할 군의료관까지 생각한다면 의대생들의 국시 구제 요구가 단순한 생떼로만 치부할 수 없는 이유이다.

일각에선 미국 등지에서 운영 중인 PA(Physician assistant)를 도입해 부족한 의료인력 문제를 해결하자는 의견이 나온다. 의사양성에 필요한 오랜 기간과 많은 자원을 완충할 방안이라는 것인데, 의사 수급의 불합리성과 구조적 문제를 방치한 채 대증적 요법으로 의료 인력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는 반론이 나온다. 찬반양론이 치열하게 다투는 현실에서 의견조율이 오래 걸리고 본질을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장관 박능후·사진 오른쪽)와 대한의사협회(회장 최대집·왼쪽)가 지난 9월 4일 코로나19라는 공중보건위기 상황에서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서로 힘을 합해 총력을 경주해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하고 보건의료 발전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바탕으로 지역의료, 필수의료, 의학교육 및 전공의 수련체계의 발전과,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합의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지난 4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국가적 차원에서 (보건) 의료인을 양성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책임”이라며 “복지부에 날짜를 특정하지는 않았지만 이른 시일 안에 이 문제에 대해 국민, 의대생들과 소통하면서 바람직한 결론을 내리라고 주문해 놓은 상태”라고 밝혔다.

이를 두고 보건복지부의 관계자는 국민 공감대 없는 국시 구제는 없다고 못 박으면서도 응급실이나 필수 의료 인력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는 데에는 동의했다.

결국 국민의 공감과 동의라는 문제로 귀결된다. 정부와 의료계 이해당사자가 나서 과거 섣부르고 서툴렀던 정책 추진과 대응에 대한 국민의 노여움과 오해를 푸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는 의미다.

누구의 자존심이나 감정이 아니라 국민의 건강권과 필수 의료 인력 확보 등 보다 높은 차원의 가치에 초점을 맞추는 자세가 사태의 실마리를 풀 수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복지부와 의료계는 ‘수도동귀’, 즉 길은 달라도 이르는 곳은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