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서지윤 간호사 산재 인정, 의료현장 태움 여전해

지난해 1월 목숨을 끊은 서울의료원 서지윤 간호사의 사망을 두고 산업재해가 인정됐다.

근로복지공단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지난달 29일 서 간호사가 “업무 및 직장 내 상황과 관련되어 정신적 고통을 겪었음이 인정되고, 업무상 과로와 스트레스가 누적됨에 따라 정상적인 인식 능력이 저하된 상태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며 고인의 사망과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서 간호사는 사망 전 직장 내 괴롭힘과 고객의 폭언 등으로 업무상 스트레스가 극심하다고 호소했다.

앞서 서울의료원 간호사 사망사건 진상대책위는 서 간호사의 사망 이후 벌인 자체조사에서 열악하고 혹독한 업무 환경과 사내 괴롭힘을 밝혀낸 바 있다.

조사위에 따르면 서 간호사는 서울의료원에 입사한 지난 2013년 3월부터 2018년 12월 17일까지 내과계 입원병동이면서 간호간병통합병동인 49병상 102동 병동에서 간호사로 근무했다.

당시 병동 간호사 총인원 30여명 가운데 10명이 전담해 야간업무를 수행했으며 서 간호사를 포함한 이들은 다른 간호사에 비해 2배에 이르는 야간근무를 했다.

고 서지윤 간호사 사망사건 시민대책위원회가 지난해 10월 28일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 별관에서 권수정 서울시의원(정의당·사진 왼쪽) 공동주최로 ‘고 서지윤 간호사 사망관련 서울시 진상대책위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본 서울의료원 제자리 찾기’ 토론회를 개최했다

지난 2018년 잦은 업무 시간 변동과 신규 간호사 사직 문제 등으로 파트장과 갈등을 겪으며 부서 이동이나 사직 희망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해 12월 서 간호사는 원치 않는 간호행정부서로 옮겼고, 적응하지 못했다. 컴퓨터 등 행정집기를 지급받지 못했고, 간호 간부들과 계속 면담이 잡혔다. 조사위에 의하면 서 간호사는 업무와 면담 과정에서 모욕과 괴롭힘을 겪었다.

또한 간호행정부서 근무 중 당일병동으로 파견을 나갔는데 직전 7년간 서울의료원에서 행정부서 근무자가 당일병동으로 파견 근무를 나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8병상의 작은 규모였지만 당일병동은 응급시술, 응급수술을 신속하게 준비해야 하고 진료과마다 업무 요청이 달라 숙련도가 높아 주임 간호사급을 배치해 왔다.

서 간호사는 사망하기 이틀 전인 지난 1월 2일에도 당일병동에서 근무했으며 9일에도 파견이 예정돼 있었다. 서 간호사는 4일 퇴근 후 그날 밤과 5일 새벽 사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같이 무리한 업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직장 내 괴롭힘을 근로복지공단이 산재로 인정한 것이다.

지난해 11월 6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앞에서 보건의료위원회 해체를 주장하는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고 서지윤 간호사 유족(사진 가운데)
고 박선욱 간호사 사망사건 진상규명과 산재인정 및 재발방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와 서울의료원 직장 내 괴롭힘에 의한 고 서지윤 간호사 사망사건 시민대책위원회는 지난해 11월 6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앞에서 보건의료위원회 해체를 주장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의료연대 새서울의료원 분회는 지난 9일 발표한 성명서에서 근로복지공단의 결정을 환영했다.

분회는 9일 발표한 성명에서 “서울의료원은 간호사의 업무를 제대로 파악하여 불필요한 것을 없앤 교육을 하고 인권 침해 없이도 숙련된 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조치, 일을 할 수 있는 근무 환경 조성, 불합리한 명령에 있어 반대의견을 낼 수 있는 자리 마련 등을 해야 했는데 하지 않아서 간호사가 그 스트레스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라면서 “이것은 일하다가 다친 것과 마찬가지로 일을 하면서 정신적으로 피해를 본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산업재해로 인정받아 마땅하다”고 말했다.

병원 내 간호사 사이에서 만연한 이른바 ‘태움’문화는 병원의 근무환경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을 파괴하는 수준에 이른 것으로 파악된다.

서 간호사에 앞서 2018년 서울아산병원의 박선욱 간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한림병원의 집단 따돌림도 세상에 공개된 적이 있다. 의료계에선 간호사면허 소지자의 50%가 현업에 종사하지 않는 이유가 ‘태업’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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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움은 개인의 인성이나 개성 문제가 아니라 조직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젊은 간호사회는 <헬스타파>와 인터뷰에서 “태움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이유’ 역시 고민해보아야”한다며 병원 차원의 노력과 제도적 뒷받침을 호소하기도 했다.

병원 홍보팀 출신의 한 관계자는 “신규 간호사의 30%가량이 채 2주도 못 버티고 사직했다. ID 카드를 만드는 업무를 맡았는데, ID 카드 사진을 촬영 후 발급되는 동안 사직해 전해주지 못했던 경우가 허다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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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의 잦은 이직과 태움이라는 문화는 고질적이다. 병원의 또 다른 축이라 할 간호 인력이 부족하거나 불안정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 즉 국민에게 돌아간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의료 관계자와 정책 담당자들의 고민과 움직임이 시급한 이유다.

고 박선욱 간호사 사망사건 진상규명과 산재인정 및 재발 방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와 서울의료원 직장 내 괴롭힘에 의한 고 서지윤 간호사 사망사건 시민대책위원회가 지난해 2월 16일 서울 청계광장 남측 도로에서 ‘사람을 연료로 태우는 병원, 더 이상 간호사를 죽이지 말라. 간호사도 인간답게 살고싶다’는 구호를 외치며 고인이 된 두 간호사의 추모집회를 열었다

한편, 서울의료원은 여전히 서 간호사 사망 사건에서 한 발 빼는 모양새를 취한다. 의료연대 새서울의료원 분회에 따르면 의료원은 아직도 서 간호사의 유족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서 간호사를 지시하고 관리하는 선상에 있던 부문의 인사는 이 사건으로 경징계를 받는 선에서 그치고 말았다.

의료원에선 근로복지공단 산재 판정 이후에 즈음해 지난 2일 병원장, 각 부, 실, 팀장, 간호파트장이 참석한 30분짜리의 ‘건강한 일터 선포식’이 진행됐다. 이 행사에서 서지윤 간호사의 이름은 불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