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죽음, 태움을 들여다보다

[내러티브] 고 서지윤 서울의료원 간호사

근로복지공단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지난달 29일 서울의료원 고 서지윤 간호사의 사망을 두고 직장 내 괴롭힘에 따른 업무상 산업재해를 인정했다. 2018년 1월 역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서울아산병원 고 박선욱 간호사 산재 판정에 이은 두 번째. 판정위원회는 “업무 및 직장 내 상황과 관련돼 정신적 고통을 겪었음이 인정되고, 업무상 과로와 스트레스가 누적됨에 따라 정상적인 인식 능력이 저하된 상태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며 고인의 사망과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했다.

두 간호사가 희생되었지만, 간호사들 사이에서 괴롭히는 이른바 ‘태움’은 여전하다. 신규 간호사의 약 30%가 직장 내 괴롭힘과 갈등 등의 이유로 퇴사를 한다는 보고가 있다. 이 문제는 비단 특정 의료기관만의 문제는 아니며 간호 인력 수급, 병원 내 인사권 전황 등 구조적 문제를 수반한다. <헬스타파>는 고 서지윤 간호사가 겪은 괴롭힘과 불이익을 바탕으로 간호사 태움의 단면을 내러티브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현실은 여전하지만, 끊임없이 조명함으로써 이 문제가 발견되고 개선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편집자 주

고 서지윤 서울의료원 간호사

머리가 무거웠다. 몸은 선뜻 움직이지 않았다. 어제 하루를 쉬었는데. 쉬었다기보다는 오늘 아침 출근을 내내 대비했다. 닷새간의 나이트 근무 후 받은 귀한 휴가, 잠은 오지 않고 머리만 아팠다.

곤두선 신경이 가라앉고 잠이 들었을 즈음에 다시 출근 날 아침이 찾아왔다. 밤낮이 뒤섞이는 일상을, 이 일을 지망할 때는 알지 못했다.

업무 시간에는 환자에게만 집중하고 싶었다.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새로 배치된 간호사를 교육하면서 일을 본다는 게 한두 번은 아니었으나 적응되지 않았다.

나는 멀티형 인간이 아닌 건가. 파트장이 늘 강조하는 멀티형 인간. 환자 처치에 팀 리더로서 역할과 후배들 통솔까지. 다음 주에는 간호대학 실습생들이 온다고 한다. 모든 일이 거대한 파도 같다.

자기야, 자기만 믿고 가는 거 알지. 늘 분발해줘라. 자기야 애쓰고 잘하는 거 알지, 근데 우리 팀 이번 분기 장비 사용량이 타팀에 비해 훨씬 많네. 이거 어떻게 된 거야?

환자를 더 세밀하게 살피고 살리기 위한 선택이 비용 부담으로 가중된다. 신입 때 늘상 듣던 말이 떠오른다. “OO씨, 지금 환자 죽이려고 작정했어?” 물론 그런 간호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저혈압에 빠진 환자에게 승압제를 처치했는데 다른 환자를 살피고, 선배 간호사의 지도를 듣다가 몇 cc가 더 주입됐던 모양이다. 연차가 쌓일수록 그런 부담에서 멀어질 줄 알았다.

가중되는 근무일수를 동기에게 토로했다. 다른 병동팀에 비해 근무 부담이 월등한 우리 팀의 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파트장은 유독 나에게 그 많은 책임을 안기려고 했다. 간호간병통합병동으로 발령받았을 때, 일의 부담과 어려움을 몰랐던 건 아니었다.

중증 환자, 거동이 어려운 환자, 하루에도 수십 번 돌아보며 처치해야 할 환자를 마주했다. 해낼 수 있다고 믿었다. 우리는 함께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라는 자리에 주어를 바꿔야 했다. ‘나’는 해낼 수 있을까. 보호자의 성화와 환자의 짜증은 견딜 만 했다. 예상했고 이젠 적지 않은 연차라 능란하게 넘어갈 수 있었다.

지난 7월 2일 서울의료원 황은영 간호사가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지난해에 도입된 ‘야간전담간호사’는 병동마다 1~2명의 간호사가 야간병동을 맡아서 근무하는 제도였다. 파트장은 “우리 병동 에이스!”라며 나를 붙박아두었다. 다른 전담 인력은 순환이 되는 거 같은데. 후배들은 내 눈치를 보며 미안해했다. 그들도 위에서 주는 배치표를 따를 수밖에 없는 처지니까.

간호사들은 이따금 아니, 자주 사직했다. 그들은 이런저런 사정을 둘러대고 병원을 떠났다. 남은 부담은 남겨진 간호사들이 떠안았다. 몸은 힘들었지만, 함께 애써주는 동료들이 있기에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파트장의 과장된 격려에도 초반엔 힘을 냈었다.

업무 분담과 근무 일자 조정이 매끄럽지 않고 불균형하다는 생각은 생각으로 그쳤어야 할까. 견디다 못해 파트장에게 재조정을 요구했다. 그는 대번에 표정이 일그러졌다.

자기 안 그렇게 봤는데 생각보다 이기적이다. 내가 힘들면 남들도 힘들지, 자기만 힘들다고 생각하는 거야? 누구는 데이나 이브닝 안 맡고 싶어? 업무 조정표를 최대한 공평하게 짠 건데. 이게 지금 뭐 하자는 거야?

그 뒤로 파트장의 지청구와 비아냥이 날아들었다. 후배들이 다 보고 있는데도 아랑곳없었다. 심지어는 환자를 처치하는 순간에도 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정맥주사를 놓는데 “OO님, 조금 아프실 거예요. 우리 병동에서 이 선생님 손이 좀 굼뜨거든요”라고 말해 머리가 핑 돌았다. 주치의 회진 때는 대놓고 빈정거리기도 했다. 지난 스케줄표 사건에서 시작된 마찰은 한 달여가 지난 여태껏 이어지는 중이다.

참다못해 부서 이동을 요청했다. 내가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후배들은 요청을 거두어들이라며, 선배님 없이 어떻게 병동을 운영하느냐고 자신 없다고 앓는 소리를 했는데 비합리적이고 불균형한 스케줄표에 관해선 일언반구 한 적 없었다.

파트장과 다과를 먹으며 내 흉을 앞장서 보던 후배 하나가 가장 적극적으로 나섰다. ‘저만 잘난 줄 아느냐’던 그의 말투가 내 귓가에 남았다.

파트장과 면담이 잡혔다. 타 병동으로 가면 속이 좀 편하겠느냐며, 다른 병동 상황도 비슷하다고 일러왔다. 타 병동에선 야간 전담을 순번 돌아가며 맡는다는데, 그는 내가 귀가 없는 걸로 생각하는 걸까.

뜻을 굽히지 않았다. 입사 때부터 막역했던 선배가 있는 병동에 전원을 신청했다. 파트장은 여러 차례 이야기하고 뜻을 거두라고 했다.

업무 인수인계 시간에는 전 간호사들 앞에서 나의 부서 이동 때문에 병동 일이 꼬이고 어려워질 거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차트를 들고 있던 내 눈에 바늘과 각종 약이 보이는 순간이었다.

급기야 병동팀장의 호출이 있었다. 현 파트장이 부서 이동을 강력히 반대하는데도 이동을 원하느냐, 거듭 생각해볼 수는 없겠느냐는 말이었다. 통상 간호사의 부서 이동, 병동 이동의 경우 신청만 하면 무리 없이 이루어진다.

그런데 내 경우에는 면담은 이어졌고, 간호부의 최고 책임자인 간호부장과 차를 앞에 두고까지 계속됐다. 숨 막히는 시간이었다.

출근해보니 사령이 나왔다. 간호부 △△△, 면 ### 병동, 임 간호행정부. 몇 번이나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전화기가 울어 열어보니 친한 동료들은 어떡하느냐고 문자가 와 있고, 병동 파트장에게선 ‘윗분들 모시고 어디 한번 잘 해보라’는 문자가 와 있다. 그동안 고생했다는 인사를 기대한 건 아니었는데.

병동팀장은 간호부 내부 사정으로 병동 간 인원 조정이 어렵다고 했다. 일단은 행정부서에서 일하며 다음에 기회가 있을 때 배치해준다는 것이었다. 막막했다. 환자를 직접 보는 간호일 말고는 경험해본 적도 배워본 적도 없다.

더군다나 간호행정부에서는 병동팀장을 비롯해 여러 간부와 함께 일을 해야 했다. 다리에 힘이 빠졌다. 병동에서 마련해 준 단출한 송별회를 마치고 집에 오는 길, 지하철을 타는데 진입하는 열차를 보며 스크린 도어를 여는 망상을 했다.

고 서지윤 간호사 사망사건 시민대책위원회가 지난해 10월 28일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 별관에서 권수정 서울시의원(정의당·사진 왼쪽) 공동주최로 개최한 ‘고 서지윤 간호사 사망관련 서울시 진상대책위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본 서울의료원 제자리 찾기’ 토론회에 서울의료원 간호사, 정병욱 변호사(민주화사회를 변호사 모임 노동위원회), 시민대책위 집행위원장 김진경(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지역지부 지부장),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현정희 본부장, 한림대 간호학과 강경화 교수, 진상대책위원회 전 위원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사진 왼쪽부터)가 참여했다

부서 이동을 하고 처음 출근하는 날. 행정부에는 서너 번 가본 적이 전부였다. 입사 때 인사를 드린다고 한 번, 그리고 무언가를 전달하라는 지시에 한 번이었나.

공간은 작았고, 책상은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내 전임자라는 후배의 옆자리에 앉았다. 컴퓨터와 사물함 등 기본적인 집기가 없어 물어보니 시험관 시술을 위해 곧 출산휴가를 쓴다는 전임자가 쓰던 걸 물려받아야 한다고 팀장이 이야기했다.

행정부서가 처음이라 본래 이런 식으로 운영되는지. 전임자가 파일을 열고 하나하나 일러주는데, 생경한 업무라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다. 맞닥뜨리면 알게 되겠지, 곧 익히겠지 하며 메모를 한다.

몇달 전 병원을 떠난 A를 생각한다. 자궁경부암 2기 진단을 받았다. 병원에선 그 사실을 알았고, A는 처음 겪는 일에 경황이 없어 사직할까 휴직을 할까 고민을 하던 중 호스피스완화의학센터 병동을 배치를 받았다.

죽음을 대비하라는 의미였을까. 우리들은 충격을 휩싸였다. 결국 A는 병원을 떠난다. A를 생각해보면 나의 새 부서 배치는 인간적이고 합리적인 걸까.

팀장 하나가 티타임을 갖자며 커피를 타오라고 한다. 그러자 다른 팀장이 그런 걸 행정간호사에게 시키면 어떡하느냐고 언성을 높인다.

행정부 내부는 얼마 전부터 인사상 불이익을 받은 문제로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상급자들의 날 선 목소리는 가시처럼 내 몸에 박히는 느낌이었다.

하루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짐을 챙기고 일어나려는데 병동 팀장이 무심히 한 마디 던진다.

자기 내일부터 당일병동에 파견될 거야. 부장님이 자기 능력치 뛰어난 거 알고 맡긴 거니까 열심히 해봐. 거기 알지? 20년 차 정도 되는 베테랑만 가는 거.

이건 또 무슨 소리인지.

“팀장님, 그럼 행정부에서 부서 이동을 하는 건가요. 배치된 지 이제 막 하루 지났는데요”
“무슨 소리야, 행정부 소속인데 병동으로 파견만 되는 거지”
“네, 그게 무슨···”
“아무튼 내일부터 파견이니까 그렇게 알아. 마음 단단히 먹고. 이번에 잘 버티면 동기 중에 제일 먼저 파트장 달 거야 아마”

당일병동이라니. 8병상밖에 없지만, 당일 수술과 시술을 받을 환자들이 모이는 곳이라 여러 병동, 수술실, 중환자실 경험을 거친 노련한 간호사가 배치되는 곳이다. 나는 병동 한 곳밖에 경험이 없는데.

일은 거짓말처럼 밀려왔다. 행정부에 짐만 부리고 병동으로 투입되는 나날이 이어졌다. 선임자가 있긴 했지만 워낙에 정신이 없는 곳이라 무언가를 배울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저 눈치껏, 주치의 오더에 맞춰 이것저것 준비하는 수밖에.

하루가 지나면 몸이 녹아내리는 느낌이었다. 퇴근할 때 짐을 챙기면 간부들은 눈을 마주치지도 않고 ‘고생했어’라고 인사를 했다. 가끔 병원에서 마주치는 동료들에게선 내가 웃음을 잃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얼마나 더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병동에서 약병 몇 개를 가방 속에 넣는다. 매일 아침이 오는 것이, 커튼 너머로 빛이 들어오는 기척이 진저리나게 싫었다. 오늘 밤은 편안하겠지. 그래, 편안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