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이에게 의사는 무엇이었나

지난 주말 밤은 참혹했다. 문명사회를 살아간다는 모두의 의식과 이성이 송두리째 무너졌다. 사회 전체가 한 부부의 만행에 경악했기 때문이다.

‘미안하다’는 메아리가 물결 지어졌고 정작 그 메아리를 들을 주인공은 없었다. 입양한 딸을 과시욕의 도구로, 분풀이의 대상으로, 청약 당첨의 수단으로 삼았던 하나하나의 행적들이 밝혀지자 모든 엽기는 그저 기행으로, 갖은 잔악은 그저 악취미로 그쳐버리고 말았다.

올해 한 살 생을 놓은 정인이는 새해의 기대와 바람 안에서 숨 쉬지 못했다. 일이 이렇게 되기까지는 그악한 아동학대를 소소한 가정사로 치부해버린 경찰이 있었고, 입안의 검붉은 열상을 구내염으로 축소 진단한 의사가 있었으며 통화 몇 번이면 고통 받는 아동을 구할 수 있다는 안일했던 아동보호기관이 있었다. 이 셋을 두고 쓸 말은 차고 넘치지만, 이 지면에선 의사(들) 이야기를 해보자.

정인이를 죽인 사람들 넷을 꼽은 기사 댓글

지난 4일 대한의사협회는 보도자료를 내놓았다. 이번 사태를 주시하는 협회의 심경과 섣부른 대응으로 상황을 돌이킬 수 없게 만든 경찰 수사 당국을 향한 비판을 담았다.

협회는 보도자료에서 “영혼 없는 경찰 당국, 쇄신해야”한다며 “(이번 사건을 두고)반복된 신고에도 불구하고 (피의자 양부모가)무혐의 처분된 것에 대해 책임자 문책 및 경찰청장 사퇴가 있어야 한다”고 촉구했다고 서두에 친절히 일러주었다.

이어 “짐승만도 못한 양부모를 비난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이를 앙다문다. 연이어 아동학대 정황을 의심한 소아과 의사를 거론하며 경찰 당국의 늑장 대처를 신랄하게 공격한다.

대한의사협회 4일자 <‘정인이 사건’에 의료계도 공분 “영혼 없는 경찰당국 쇄신해야”> 보도자료

5일자 <한국경제>는 같은 사건을 다룬 기사를 내놓는다. 구강 내 열상을 입은 정인이에게 단순히 구내염 허위 진단을 내린 또 다른 소아과 의사 이야기다. 기사에 따르면 양부모의 단골 병원이었던 이 곳에서 정인이는 마땅한 치료와 처치를 받지 못했다.

이때 담당 의사가 학대 정황을 발견했다면 정인이는 살 수도 있었으리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글의 문구가 잇따랐다. ‘만약’이란 부사어가 이렇게 속절없이 느껴졌던 적이 언제인가.

관련 기사
“입안 찢어진 정인이 ‘구내염 진단’…의사면허 박탈해야” 청원

기자가 5일 통화한 대한의사협회 홍보이사는 보도자료의 문구를 와전하거나 곡해하는 모습을 바라지 않았다. 문건은 단순히 전문가 단체 차원의 지탄 성명 정도로 특정 직군을 비난하고 성토하는 해석을 삼가기를 원했다.

사태의 한순간을 담당했던 구내염 허위 진단 의사에 관해 묻자, 알려고 하면 알 수 있지만, 현재 신상을 파악하고 있지는 않다고 밝히며 협회 차원의 진상 조사 계획이 아직은 없고 4일자 보도자료 안에 협회의 입장이 고스란히 담겼다고 전했다.

언론과 세간이 아는 수준 이상의 진상을 알지는 못하고 이 사회적 참사에 전문가 단체로서 사회 여론을 환기하는 정도로 보도자료를 읽어주면 한다고 전했다.

이 모든 말의 어조는 평이했다. 그의 말을 반박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의협의 보도자료 속 날 선 말들과 구강 열상을 구내염으로 가장한 소아과 의사의 태연한 교언, 협회와 자신의 입장을 차분히 해설하는 홍보이사의 사무적 말소리는 모두 한때 흰 가운을 입으며 히포크라테스 선언을 뇌었을 것이다.

출처: SBS <그것이 알고싶다>

정인이는 이제 세상에 없다. 그의 양부모는 법적 처벌을 받을 것이다. 세상은 그렇게 가지런해가는 걸까. 바람은 찬데 바수어진 어린 넋은 평안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