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현장 ‘태움’ 근본 해결책은 ‘인력충원’

[인터뷰]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 현지현 조직국장

지난해 12월 법원은 서울아산병원의 책임을 물었다. 2년 전 직장 내 괴롭힘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고 박선욱 간호사의 사망에 직장이 직·간접적 책임을 진다고 판단했다. 입사 6개월 차의 박 간호사는 자신에게 주어진 버거운 과업에 힘겨워했다. 선배 간호사의 고함과 따돌림뿐만 아니라 의료소송까지 언급하며 일터의 구석으로 몰고 간 의사의 엄포까지 홀로 감당해내야 했다.

박 간호사의 사망과 이듬해 세상을 떠난 서지윤 간호사의 사건으로, 간호사들과 의료진 내부에서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병원 내 괴롭힘 ‘태움’이 세상이 알려진다. 법원과 노동당국은 이 사건을 단순한 사망사건이 아닌 산재사건으로 판단했다. 세상은 두 간호사의 죽음에 분노했고, 간호 현장의 개선을 촉구했다. 이로써 간호사들이 일하기 좋은 세상이 찾아왔을까.

지난 26일 서울시청 앞에선 기자회견이 열렸다. 서울시에서 세우고 위탁 운영 중인 보라매병원과 관련한 내용이었다. 보라매병원은 간호사들의 근무 여건이 열악하기로 소문난 곳이다. 많을 때는 간호사 1명당 10~11명에 이르는 환자를 담당한다고 알려졌다. 언뜻 아무 연관이 없어 보이는 두 사례는 인과 혹은 선후 문제다. 간호사 인력 부족이 열악한 근무환경을 만들어내고, 열악하고 고된 노동여건이 함께 일하는 동료를 괴롭히고 따돌리는 모습으로 화(化)한다. 코로나19 시국에서 정부의 극찬을 들었던 간호사들의 일터는 여전히 고되고 박하다.

현지현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조직국장

박선욱 간호사 사망사건 공동대책위원회에서 일하고 지난 26일 기자회견에 참여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 현지현 조직국장(사진)을 인터뷰했다. 현 국장은 인력충원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만 간호 현장의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28일 유선으로 이뤄졌다.

– 법원이 고인의 죽음에 병원의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박선욱 간호사 태움의 주동자라고 알려진 엄 아무개 간호사와 프리셉터(교육담당) 간호사에 대한 법적 대응도 준비하는지.

우리는 이 문제를 개인의 잘못이라고 보지 않는다. 구조적인 인력수급 문제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개인에 대한 대응을 준비하거나 계획하고 있지는 않다.

– 유사 사건이 이어진다. 함에도 이 문제는 구조적으로 변할 수 없는 걸까.

(간호 인력의 수급 차질이 빚어지는 문제는)인력 기준(간호사 1인당 환자 수 몇 명을 맡는지)을 법제화하는 식의 구조적 과제가 해결된다면 풀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현재 인력 기준과 관련해서 이렇다 할 진척이 있거나 뚜렷한 정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 코로나19 병동 관련해서도 인력 기준이 엉망이거나 이런 문제들이 계속 드러나는데, 변화가 전혀 없는 것 같다.

(신입 간호사 괴롭힘 등)교육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는 보건복지부가 진행했던 교육 전담간호사제(2019년 7월~2020년 하반기)가 대안이 될 수도 있다.

기존 프리셉터와는 어떤 차이가 있나?

기존에는 환자를 담당하면서 신입 간호사 교육을 겸하는 식이었다면 교육 전담 간호사제는 (신입 간호사)교육과 관리만을 전담해서 할 수 있게끔, 환자 케어 임무에서 제외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운영했다. 이 제도는 시범 사업으로 진행됐는데, 이 사업을 계속 확대하면 신규 간호사 교육 과정에서 (지도 간호사의 근무 강도가 높아짐으로써)신규 간호사를 괴롭히는 악습은 줄어들 듯하다.

보건복지부는 사업성과평가연구 등의 지표로 민간병원까지 사업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본래 이 사업과 관련해서 의료연대본부는 복지부와 면담을 진행하려고 계획했지만 지난해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면담 일정이 전부 취소돼 진척이 되지는 못했다. 자체적으로 조사하기론 교육전담간호사제를 도입한 병원들 사이에선 평가가 상당히 좋게 나왔다.

– 현재 ‘태움’에 관한 제보를 받고 있나. 그렇다면 사례를 들려줄 수 있을까.

기본적으로 ‘태움’이라는 용어를 지양한다. ‘직장 내 괴롭힘’이란 용어를 쓰고 있다. 개별 의료 사업장 노동조합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해 (사업장과)단체협약을 체결하고 조합원의 신고를 받고 있다. 개별 사업장에선 사례를 모으지만 의료연대 차원에서는 사례를 수집하지는 않는다. 지난해 직장 내 괴롭힘 1주년을 맞아 실태조사를 한 적이 있다. 괴롭힘 이를테면 욕설, 고함 같은 피해는 여전히 존재했다.

(노동조합이 없는 곳도)온라인으로 실태조사를 했는데, 노동조합이 있는 곳은 사례가 줄어들고 있다거나 간호사들이 ‘해결 가능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신뢰가 간다’고 답변을 했다.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 같은 곳은 이에 비해 상당히 부정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 제보 받는 ‘직장 내 괴롭힘’ 사례에 대한 어떤 대응책을 준비하는지.

개별 사업장의 태움 하나하나에 대응하는 식으로 접근하지는 않는다. 개별 사업장과 이 사안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단협 기간이나 교섭 등의 시기가 오면, 기존에 벌어졌던 직장 내 괴롭힘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이 문제를 조사할 조사위원을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지, 절차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항목별로 정리해 병원과 원활하고 효과적으로 교섭할 수 있게 조언하고 연대하는 역할을 한다.

고 박선욱 간호사 사망사건 진상규명과 산재인정 및 재발 방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와 서울의료원 직장 내 괴롭힘에 의한 고 서지윤 간호사 사망사건 시민대책위원회가 지난 2019년 2월 16일 서울 청계광장 남측 도로에서 ‘사람을 연료로 태우는 병원, 더 이상 간호사를 죽이지 말라. 간호사도 인간답게 살고싶다’는 구호를 외치며 고인이 된 두 간호사의 추모집회를 열었다

– 서울아산병원은 박선욱 간호사의 사망 이후 어떠한 재발방지책을 마련했는지 들려준다면.

현재 병원이 사건 이후 어떻게 변했는지 외부에 있는 입장이라 파악하기 어렵다. 병원은 사건이 벌어진 당시에 해야 할 조치를 다 취했다고 주장한다. 또한 유가족에게 사과한 적이 없다. 병원을 상대로 한 민사소송에서 일부 승소한 뒤 박선욱 공대위 차원에서 병원에 면담 요청을 한 적이 있다.

그때 사과도 함께 받으려고 했지만 병원은 아무 응답도 없었다. 면담을 거부한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병원 내부적으로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모르고 유가족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하지도 않았으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서울아산병원에는 의료연대 조합원이 없나?

아산병원에는 다른 노총 소속의 지부가 있다.

그들을 통해 전해들은 바도 없고?

그렇다.

– 박 간호사의 사례에선 같은 직군인 간호사들 사이에서의 괴롭힘인 이른바 태움 말고도 협업 관계인 주치의로부터 느낀 두려움이 발견됐다. 태움 방지책에 의사 직군과의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대비해야 할 필요성도 있을 듯하다.

의사들이 간호사들에게 폭언 등의 괴롭힘을 가하는 경우도 굉장히 많다. 이와 관련해 (두 직군은) 위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 관계이기 때문에 병원 내에서 의사들과 전 직원 대상으로 한 직장 내 괴롭힘 교육이 필요하다.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개념이 성립하기 위한 법적 요건은 위계관계이다. 의사와 간호사 사이가 현재 위계관계 아닌가. 전에 의사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는 간호사의 사례를 받은 적이 있다. 해당 병원에선 이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두 당사자가 동등한 관계에서 일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병원의 판단으론 의사도 병원에서 채용한 노동자이고, 간호사 역시 노동자였다. 의사는 관리자가 아니라는 말이었다. 이상적인 관계 모델이긴 하지만 현실을 반영하지 않는다.

무면허 의료 행위 같은 경우 이것이 불법인줄 알면서도 간호사들이 시행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당장 환자들이 통증을 호소하기 때문이고 의사가 지시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위계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다. 이런 과정에서 벌어지는 직장 내 괴롭힘 문제에 대비하기 위해선 병원 차원의 교육이나 의사들이 인식개선에 스스로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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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 사태 이후의 간호사의 노동환경이나 근무 여건 등에 변화가 있었나. 대통령은 의료진 특히 간호 인력에 사의를 표명했다.

보라매병원 사태(보라매병원은 고질적인 간호 인력 수급 문제가 빚어지는 곳으로 간호사 한 명당 평균 9명에 달하는 환자를 맡고 있다)에 대응 중인데, 이를 통해 봐도 간호사의 근무 환경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인력 기준 관련해 정확한 가이드라인이 마련돼 있지도 않다.

인력 충원 역시 파견간호사에 의한 일시적인 증대가 아니라 병원에서 안정적이고 상시적으로 근무하는 인력이 중요하다. 기존 간호사들의 노동 강도가 낮아지고 환경이 개선되려면 인력 충원이 가장 중요하다. 이런 현장의 요구를 무시하고 한시적 노무만을 제공하는 파견간호사만 늘려가는 실정인데 파견간호사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은 한정돼있다.

파견간호사는 코로나 병동 근무 간호사들이 부족해 정부에서 지속적으로 모집하는 일시적 계약 조건의 간호사. 고용주체는 정부.

보라매병원의 간호 근무 여건은 엄청 심각하다. 최근엔 환자 수가 많이 떨어졌지만 몇 주 전까지 간호사 1명이 보는 환자 수는 9~10명에 이르렀다. 병동 간호사에겐 숙소도 제대로 제공되지 않아서 병원 건물 내부에 임시로 마련한 숙직실 같은 곳에서 지내는 실태다. 이런 문제가 계속돼왔다. 전혀 나아지는 게 없다.

서울시립보라매병원 파업노동자들이 지난해 7월 29일 오전 서울시청 앞에서 서울시의 역할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보라매병원 운영주인 서울시에 상시 간호 인력 공급을 요청했지만 서울시는 대답과 면담에 응하지 않고 있다. 국무총리가 간호사들에게 고맙다는 편지만 쓰는 식으로 실질적 도움과 방안 없이 정치적 이미지 제고의 재료로 소모되는데 간호사들은 박탈감을 느낀다.

– 직능단체인 대한간호협회에선 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 등을 이어가는지.

직장 내 괴롭힘 문제와 관련해 간협에서 고충 상담하는 창구를 마련했다. 전화로 어려움을 털어놓고 상담해주는 방식이었다. 근데 이 상담을 받으려면 간호사 면허번호를 입력해야 했다.

신원이 드러나지 않나?

피해자가 이런 식으로 상담을 받을 용기와 혹시라도 고통을 무릅쓸 수 있다는 위험을 감내해야 하는데 실제 상담이 어떻게 되겠나. 안전이 보장될 수 없다고 생각되면 상담은 가능하지 않다. 그마저 이것 말고는 사실 뭘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 끝으로 한 마디 전한다면.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해 근본적인 문제들이 해결되어야 한다. 인력 충원과 인식개선을 위한 교육들이 진행돼야 한다. 현재 법 개정이 어떻게 진행돼 가는지 살펴봐야겠지만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개정 근로기준법)의 (가해자)처벌조항이 없다는 점도 이 문제가 아무 변화를 보이지 않는데 영향을 준다고 본다. (이 부분이 잘 손질돼)직장 내 괴롭힘 법의 한계점이 개선되었으면 좋겠다.

우선적으로는 피해자가 보호받을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는 게 제일 중요하다. 자체적인 실태조사 당시 여전히 피해자는 이 문제를 제기해도 나아지지 않을 것 같고, 보호받지 못할 것 같다는 인식에 싸여있다고 답했다. 피해자를 보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