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박쥐에서 메르스·사스 유사 바이러스 첫 검출···유사성 최대 89%

국내에 서식하는 박쥐의 분변에서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바이러스와 유사한 바이러스가 검출됐다.

인체 감염성 바이러스가 박쥐에서 검출됐다는 보고는 중국, 대만, 유럽 등에서 나온 적이 있지만, 국내에서는 이번이 처음이다.

전 세계 2000종이 넘는 박쥐는 바이러스의 주요 감염원으로, 자신은 발병하지 않으면서 바이러스를 보유, 확산시키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지난해 한국을 강타한 메르스 바이러스의 경우 본래 박쥐에서 낙타를 거쳐 사람에게 전염된 것으로 알려졌다. 2002∼2003년 중국에서 유행한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도 박쥐가 바이러스의 감염원이라는 보고가 나온 바 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바이러스감염제어연구센터 김혜권·정대균 박사, 고려대 약학대학 송대섭 교수, 한국동굴생물연구소 공동 연구팀은 지난해 7∼12월 사이 국내 11개 박쥐 서식지에서 49개의 박쥐 분변을 채취해 분석한 결과 이같이 나왔다고 20일 밝혔다.

공동 연구팀에 따르면 이번에 채취한 박쥐의 분변에서는 소화기 또는 호흡기질환을 일으키는 코로나바이러스와 로타바이러스 등이 검출됐다.

연구팀이 유전학적으로 분석한 결과 이들 바이러스는 사스(급성호흡기증후군),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코로나바이러스와 각각 89%, 77%의 유사성을 갖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계통분류학적 분석 결과 전 세계적으로 많은 환자가 발생했던 사스, 메르스와 같은 그룹의 바이러스로 분류할 수 있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박쥐 분변을 이용한 바이러스 검출 연구는 해외에서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이를 통해 이미 박쥐 코로나바이러스, 박쥐 파라믹소바이러스 등이 보고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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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박쥐에서 검출된 바이러스가 사람 또는 가축으로 ‘종간 전파가 가능여부’다.

해외 사례를 보면 방글라데시에서 과일을 주로 먹는 과일박쥐의 니파바이러스가 야자 열매 수액에 오염돼 사람으로 전파된 사례가 보고된 적이 있다. 또 미국에서는 박쥐에 손가락을 물려 광견병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례도 있다.

국내에서는 아직 니파바이러스와 광견병 바이러스가 박쥐에서 검출된 사례는 없다.

연구팀은 동물의 모든 바이러스가 사람에 감염되는 게 아니고, 대부분 바이러스는 야외 환경에서 쉽게 불활성화되기 때문에 박쥐의 분변 내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감염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생명공학연구원 김혜권 박사는 “국내 박쥐에서 검출된 사스, 메르스 유사 코로나바이러스는 아미노산 서열 분석 결과 사람에게 감염될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다만, 유전적으로 유사한 만큼 해당 그룹의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번 박쥐 분변 연구에서는 영유아뿐만 아니라 성인에게도 설사병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그룹 H 로타바이러스’와 같은 그룹에 속하는 바이러스도 세계 최초로 검출됐다.

바이러스감염제어연구센터 정대균 센터장은 “국내 서식하는 박쥐는 주로 곤충을 잡아먹는 특징을 가지고 있으므로, 흡혈활동에 대한 우려는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면서도 “신 변종 감염병에 대한 선제 대응을 위해서는 주변 환경에 존재하는 자연 숙주와 매개동물의 바이러스를 지속해서 감시함으로써 예방백신과 진단기법 개발에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연구결과는 수의학 분야 저명 국제 학술지(Transboundary and Emerging Diseases) 온라인판(5월호)에 발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