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 돌려막기와 유사한 ‘건강·실손보험’ 최대 피해자는 누구인가

확률 게임인 보험이 지속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가입자가 서비스를 남용하지 않는다”는 가장 기초적인 전제가 깔려있어야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건강보험과 실손의료보험은 소비자 행동을 전혀 통제하지 않는다.

즉 환자가 매일 병원을 방문하거나, 한 가지 질병으로 병원 10여곳을 돌아다니며 쇼핑을 해도 꾸역꾸역 보험금을 지급하고 있다는 뜻이다. 국가가 의료보험을 운영하는 전 세계 다른 국가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현상이다(캐나다·호주·뉴질랜드·영국 등에서 살아보신 분들은 보험사가 얼마나 철지히 소비자 통제를 하는지 잘 아실 것이다).

의료쇼핑(출처 KBS)

그런데 위 두 보험이 어떻게 유지되고 있을까. 건강보험은 손실을 의료기관에 떠넘기고 있다. 예를 들어 환자가 한 달 내내 물리치료를 받았다면 그 절반의 비용은 의료기관에 지급하지 않는다. 의사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공짜치료를 하는 셈이다.

실손보험회사들은 신규가입자의 보험료로 기존가입자의 보험금을 지급하고 있다. 카드 돌려막기와 유사한 방법으로 버티는 것이다. 이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다.

그렇다면 정부나 보험사가 소비자 행동 통제에 나서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소비자 통제를 소비자, 즉 국민이 싫어하기 때문이다. 오로지 표만 생각하는 정치인들은 주권자인 국민의 눈치를 살핀다. 그 결과는 선량한 국민의 피해로 돌아간다.

악용하는 자는 이득을 보고 선량한 이들은 불필요하게 높은 보험료를 내야 한다(놀랍게도 실손보험도 부분적으로 정부의 사업이다. 실손보험의 약관을 금융감독원에서 만든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나중에 가입한 소비자가 보험료는 더 내고 보험금은 덜 받는 실손의료보험

그런데 정부가 국민에게 아무런 요구를 하지 않는 것은 국가경영에서도 마찬가지다. 언제부터인가 대한민국 정치인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국민이 가야 할 길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저 책임져야 할 대상 즉 ‘적’을 만들어 “모든 것은 저 나쁜 세력 때문이다”라며 공격의 대상을 만들기에 바쁘다. 손가락질에 동참할 것을 요구할 뿐, 국민에게는 희생을 요구하는 그 어떤 요구도 하지 않는다.

지난 수십 년간 대한민국이 성공의 사다리를 달려온 이면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잘살아 보세”라는 국민 공동의 목표를 향한 운동이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실효성을 떠나 IMF 극복을 위한 전 국민의 ‘금 모으기 운동’도 그런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며 한국인의 위기극복능력을 보여준 감동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끝으로 대한민국에서는 다시는 그런 모습을 보기 어렵다.

새 정부는 들어서자마자 재계와 대립각을 세웠다. 정부와 재계가 날을 세우고 있다. 정부는 ‘재벌’이 기득권이자 적폐라 하고 재계는 ‘귀족노조’가 기득권이며 ‘경직된 노동법’이 적폐라고 한다. 나뉘고 싸우고 또 나뉘고 또 싸우는 것이 특기인 대한민국, 언제까지나 운이 받쳐주지는 않을 것이다.

제37대 노환규 의협집행부도 그런 전략으로 만들어진 집행부였다. 그리고 그로 인해 찾아온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그러나 국가의 운명은 더 크고 중대하다. 실패해서는 안 되다. 불행히도 그럴 것 같은 예감이 떠나지 않는다.

훌륭한 리더, 훌륭한 정부는 국민에게 달콤한 약속뿐만 아니라 그 약속을 이루기 위해 국민이 동참해야 하는 책임과 노력도 함께 말해주어야 한다. ‘듣기 좋은 말’이 아니라 ‘필요한 말’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