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케어를 제대로 알려면, 먼저 우리나라 의료의 현주소부터 알아야 한다.

의료서비스의 최종 결과물은 수명 연장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국민은 얼마나 사는지부터 알아보자.

대한민국 사람들, 평균 수명 82.2세로 OECD 34개 국가 중 11번째로 오래 산다. 평균(80.8세)을 넘어선 것은 물론이고 78.8세인 미국과 독일·영국·캐나다·뉴질랜드·핀란드·네덜란드 등 선진국보다 오래 산다. 정말이냐고? 정말이다.

OECD 기구에서는 매년 OECD 보건의료통계자료를 취합하여 발표하는데, 최신 자료인 2016년 OECD 보건의료통계를 들여다보자.

기대수명(2016년 OECD 보건의료통계)

확인해 보니 맞다. 대한민국 사람들, 오래 산다. 사실 대한민국 사람들이 원래 오래 살았던 건 아니다.

대한민국은 지난 50년간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빠르게 수명이 많이 늘어난 나라다.

통계를 살펴보자.

2016년 OECD 보건의료통계

그렇다. 1960년부터 약 50년간 평균수명이 OECD 평균 11.2년 늘어날 때 대한민국 국민의 평균수명은 27.9년 늘어났다.

비결이 뭘까?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빠른 경제성장과 높은 의료접근성(손쉽게 의사를 만나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난히 병원에 많이 간다.

얼마나 많이 가느냐고?

1년에 병원의 외래를 이용해서 진찰을 받는 횟수(14.9)가 OECD에서 1등인데, 그 횟수가 무려 OECD 평균(7.0)의 2배가 넘는다. 스웨덴 사람들이 병원에 1번 갈 때, 우리나라 사람들은 병원에 5번을 간다.

의사의 연간 외래진료건수(국민1인당, 2014년)

그뿐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1년 중 병원에 입원해 있는 기간(16.5일)도 OECD 평균(7.2일)의 2배가 넘는다.

환자 1인당 평균병원재원일수, 2014년

지구상에서 적지 않은 나라들이 의사 얼굴 한 번 보기도 어려운 곳들이 있는데, 대한민국 국민은 의사를 손쉽게 만나서 손쉽게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곳임엔 틀림이 없다.

그건 그렇고, 다른 문제를 생각해보자.

돈 문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OECD 국가 평균보다 병원 진료도 2배 더 많이 받고, 입원 기간도 2배 더 많다면, 즉 의료서비스를 2배 더 많이 이용하고 있다면 당연히 의료비 지출도 2배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그렇지 않다. 놀랍다. 그런데 더 놀라운 소식이 있다. 다른 나라들보다 오히려 의료비를 적게 쓴다는 사실이다. 대한민국 국민 1명이 1년에 평균 2361달러를 쓰는데, 이것은 OECD 평균인 3689달러에 크게 못 미친다.

국민 1인당 경상의료비, 2014년

우리나라는 평균수명 80세 이상을 사는 나라 중에서도 의료비 지출은 제일 적다.

의료비 대비 기대여명, 2010년

의료서비스는 OECD 국가들보다 2배 더 많이 이용하는데, 지불하는 의료비는 오히려 OECD 평균의 64%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그 비밀은 ‘낮은 의료비’에 있다.

의료비가 얼마나 낮냐면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의료서비스의 건강보험수가(환자부담과 건강보험공단의 부담금을 모두 합친 금액)는 원가보다도 낮다. 대한민국 국민이 병원을 더 많이 이용하는데 의료비를 적게 쓰는 것이 가능한 이유는 의료수가, 즉 건강보험수가가 엄청나게 싸기 때문이다.

2015년 연세대학교가 건강보험수가의 원가를 계산한 연구에 의하면, 대형종합병원의 경우 건강보험수가의 원가보전율이 약 84%, 종합병원은 약 65%, 병원은 약 67%, 동네의원은 약 62%에 불과해 전체적인 원가보전율이 70%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요양기관 종별 추정 원가보전율(출처 연세대)

이 말은 곧 병·의원이 환자를 치료할 때 1,000원이 들면 정부가 정해놓은 건강보험수가 즉 환자와 건강보험공단이 지급하는 의료비의 총액이 700원밖에 안 된다는 뜻이다.

위내시경의 건강보험수가는 4만원대에 불과하다. 미용실에서 퍼머 한 번 하는 비용보다도 적은 비용이다. 기본소변검사의 건강보험수가는? 1000원을 밑돈다.

각국의 분만비 비교(출처 대한의사협회)

이렇게 의료비가 ‘싸니까’ 대한민국 환자들이 다른 나라 환자들보다 2배 이상 더 많이 병·의원을 이용해도 의료비는 더 적게 즉 3분의 2만 지출하는 것이다. 단순계산으로 의료수가를 추정하면 다른 나라 의료비의 3분의 1 정도라고 할 수 있다. 2배 이용하는데 비용이 3분의 2만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욱 믿기 어려운 사실이 있다. 이렇게 의료비가 값싼데도 불구하고 의료비 때문에 재정 파탄에 빠지는 국민이 많다는 사실이다.

가족이 버는 실질소득의 40% 이상이 의료비로 쓰이게 되는 경우 의료비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해 ‘재난적 의료비 가구’로 분류한다. 대한민국은 34개 OECD 국가 중에서 재난적 의료비 가구의 발생률이 단연 1등이다(보건사회의료원구원 우리나라 건강수준과 보건의료성과의 OECD국가들과의 비교 2013).

즉 의료비 때문에 재정 파탄에 빠지는 가구가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많이 생긴다는 뜻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 부분에 주목했다. 그는 8.9 연설에서 재난적 의료비 지원을 약속했다.

공공재원과 본인부담 비중 대비 재난적 의료비(WHO 2010, OECD 2012)

이게 대체 말이 되나? 의료비가 그렇게 싸다는데 대체 이런 일이 왜 생기는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의료비를 사회 공동체가 책임지지 않고 개인에게 미루기 때문이다.

의료비 중에서 개인이 직접 부담을 해야 하는 비율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경상의료비 중 가계직접부담 비율, 2014년

엄청나다. 멕시코만 빼면 1등이다.

이 그래프가 무엇을 의미하냐면, 다른 나라는 병이 생겨서 의료서비스를 받게 되는 일이 생길 때 사회 공동체가 함께 돕는 비중이 큰데 우리나라는 아프면 사회 공동이 나누어 부담하지 않고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비중이 크다는 뜻이다. 즉 아프면 공동이 아니라 개인이 책임지도록 하는 제도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의료비 중에서 정부가 지원하는 비중을 볼까?

경상의료비 중 가계직접부담 비율, 2014년
경상의료비 중 가계직접부담 비율, 2014년

예상대로 정부 지원이 적다. 문재인 대통령은 의료비의 국가 부담률이 다른 OECD 국가의 절반이라고 말했으나 절반보다는 많다. 그러나 적은 것이 사실이다.

문재인 케어는 여기에 주목해서 나온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의료비 부담에 대한 국가 책임, 획기적으로 강화하겠습니다.

의료비의 정부 부담을 늘리고 개인의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취지다. 얼마나 좋은 취지인가.

그런데 이렇게 좋은 취지의 정책이 무슨 문제가 많다는 것인지 다음 글부터 본격적으로 파헤쳐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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