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중금속 ‘안티몬’ 허용기준을 위반한 컨실러 13개 제품을 공개하고 판매중단과 함께 회수조치에 들어가겠다고 발표했다. 곧바로 언론 보도가 쏟아졌다. 거의 모든 매체가 안티몬이 발암물질이라는 둥, 생식 건강에 위험한 물질이라는 둥 소비자 불안을 부추기는 보도를 했다.

특히 몇몇 매체는 안티몬이 한 드라마에서 살인 도구로 등장했었다는 점을 들춰내는가 하면, 안티몬 때문에 한 마을의 주민 12명이 암에 걸리고 그중 8명이 사망했다는 오래전 환경단체의 주장을 부각하며 불안을 증폭시켰다.

안티몬이 드라마에서 살인 도구로 등장했었다고 보도(출처 국제신문)

이것이 정말 사실이라 해도 고농도의 안티몬에 노출되는 것과 화장품에서 미량의 안티몬이 검출된 것은 전혀 별개의 일인데 이 둘을 구분할 줄 아는 매체는 극히 드물었다.

특히 아모레퍼시픽은 이번에 공개된 13개 제품 중 6개나 포함됐다는 이유로 언론과 대중의 몰매를 맞았다. 위탁제조가 비도덕적이라는 지적에서부터 서경배 회장의 리더십을 지적하는 기사까지 다양한 비난이 쏟아졌다. 안티몬과 관련한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에 아모레퍼시픽이 해명하는 보도자료를 내자 그것까지 비난했다. 한 기자는 “진심 어린 사과를 하지 않고 고객을 가르치려 든다”며 힐난했다.

아모레퍼시픽은 발표가 나자마자 사과했고 일부 제품 자진회수에 나섰고 교환·환불 방법을 모두 안내하고 있다. 다만 안티몬이 발암물질이다, 독성이 강하다 하는 식의 보도에 대해 사실관계를 바로잡으려 했을 뿐이다. 소비자에게 바른 정보를 주기 위한 행동을 ‘고객을 가르치려 든다’고 비난하면 어쩌란 말인가? 화장품회사들은 어떤 괴담이 나돌아도 입 다물고 고개 숙이고 있어야 한다는 뜻인가?

식약처도 어김없이 비난의 대상이 됐다. 안티몬이 검출된 컨실러 13종의 제조사가 화성코스메틱인데 1년 전에 식약처가 이 회사에 화장품 우수제조공정(CGMP) 인증을 주었다는 것이다.

아모레퍼시픽 컨실러(출처 식약처)

CGMP는 국제표준화기구(ISO)의 화장품 제조기준에 맞춰 만들어진 인증제도다. 여러 가지 까다로운 심사항목이 있고 그 기준을 모두 통과하면 인증을 한다. 이 인증을 받으면 국제적으로 표준화된 매우 위생적인 첨단시설에서 깨끗하고 안전하게 화장품이 제조된다는 걸 보장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실수는 일어난다. 특히 원료는 시기마다 품목마다 바뀌기 때문에 검증 과정에서 실수가 있을 수 있다. 늘 이용해왔던 거래처의 원료라서 방심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식약처 인증이 이런 것까지 걸러내는 건 불가능하다. 다른 분야의 공장들도 ISO 인증을 아무리 많이 받아도 가끔 불량품을 만들어 납품하지 않는가? 불량품을 만들어냈다는 이유로 그 공장에 ISO 인증을 준 국제표준화기구를 비난하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이번 일로 식약처를 비난하는 건 뭐든 화장품 관련 사고가 터지면 식약처부터 때리려 하는 언론과 대중의 케케묵은 관성이다. 소비자단체의 반응은 어떨까. 역시 선동적이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가 한 말을 들어보자.

아모레퍼시픽을 비롯한 8개 화장품 업체의 부도덕성과 비윤리성에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커버 기능이 높은 컨실러의 경우 착색의 강도를 높이기 위해 안티몬의 함량을 의도적으로 높였다는 의심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중략) 컨실러의 커버력을 올리기 위한 화성코스메틱 등 제조사의 의도적 기준초과, 아모레퍼시픽을 비롯한 판매 화장품 기업의 묵인과 방조 혐의에 대한 전면적 조사를 통해 화장품 소비자의 불안감을 해소하기를 재차 요구한다.

화장품에서 중금속이 허용기준을 조금 초과해 검출된 것이 범죄인가? 화성코스메틱이 커버력을 올리려고 일부러 허용 한도를 초과했다면 왜 자진 신고를 했겠는가? 이번 일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화성코스메틱이 자사 생산제품의 자가품질검사 결과를 식약처에 보고했기 때문이다.

법에서 규정한 의무에 따라 자가품질검사를 했고 그 결과가 허용 한도 초과로 나오자 곧바로 식약처에 보고한 것이다. 행정처분과 함께 쏟아질 사회적 비난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책임이라 생각했기에 그렇게 한 것이다.

화장품 리콜 사건이 보고될 때마다 똑같은 패턴이 지겹도록 반복된다. 언론은 호들갑을 떨고, 시민단체는 선동하고, 소비자는 들끓고, 화장품회사와 식약처는 죄인 취급을 받는 것이다. 이러한 패턴에서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 이유는 대중에게 위험에 대해 제대로 설명해주는 우리 사회의 리스크 커뮤니케이션(Risk Communication) 기능이 전혀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식약처는 커뮤니케이션에 무능하고, 열심히 커뮤니케이션하려는 과학자들은 인기가 없고, 화학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언론과 소비자단체, 사이비 전문가들이 여론을 주도하고 있으니 당연한 결과다.

대중도 검출됐다는 사실에 화만 낼 줄 알지,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보려 하지도 않고 이런 위험요인을 걸러내기 위해 어떤 사회적 시스템이 돌아가고 있는지 전체를 파악하려는 마음이 전혀 없다. 그저 화학물질은 악이고, 어디에서도 전혀 검출되어서는 안 된다는 단세포적 사고에 갇혀있을 뿐이다.

언론과 소비자단체, 사이비 전문가들에게 사고의 전환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그들에게 화학물질 관련 사건은 잘 팔리는 하나의 시장이기 때문이다.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니니 일단 기회가 오면 더 자극적으로, 더 선동적으로 이 문제를 다룬다.

결국, 변화는 대중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대중 스스로가 지식을 갖추고 깨치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결국 괴담이 지배하는 거대한 케모포비아 광신도 집단이 되고 말 것이다.

화장품에서 안티몬이 검출된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합리적 자세는 무엇일까. 필자의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1. 화장품에서 유해물질이 검출될 가능성은 언제나 있다. 이런 물질은 물, 공기, 토양 등 모든 자연계에 존재하고 화장품 성분의 거의 대부분이 자연에서 오고 제조과정 역시 자연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식약처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엄격한 허용치를 정하였고 원료 회사들과 화장품 제조사들은 이를 지키기 위해 엄격한 품질관리를 한다. 하지만 그래도 가끔 사고는 일어날 수밖에 없다. 자연은 끊임없이 변하고 화장품 제조는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2. 중요한 것은 허용치 이상이 포함되었을 때 그것이 시장에 유통되지 않도록 솎아낼 수 있는 시스템이 제도적으로 잘 마련돼 있느냐이다. 이번 사건은 그 시스템이 잘 마련돼 있고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안티몬의 허용치는 10㎍/g인데 이번에 검출된 양은 10.1~14.3㎍/g였다. 겨우 0.1~4.3㎍이 초과한 양이었지만 업체는 자진해서 보고했고 식약처는 곧바로 휘슬을 불고 리콜 조치를 발표했다. 이 정도 허용치 초과에 이렇게 민감하고 신속하게 대응하는 관리체계를 갖춘 나라가 많은 줄 아는가? 식약처는 앞으로 해당 업체가 제조하는 모든 제품의 자가품질검사 결과를 조사할 계획이다. 결코, 호락호락한 기관이 아니다.

3. 사람들은 화장품에서 나쁜 물질이 검출되었다는 뉴스가 나오면 무조건 식약처부터 욕한다. 식약처가 무능하고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식약처가 하는 일이 바로 이런 걸 검출하고 적발하는 것이다. 적발하는 역할을 열심히 해서 적발해낸 것인데 적발했다고 뭐라고 하면 어쩌란 말인가?

만약 식약처가 손 놓고 가만히 있으면 허용치 이상이 함유된 제품들이 시장에 돌아다녀도 아무 뉴스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아무 뉴스도 안 나오는 것이 좋을까, 가끔 검출 뉴스를 듣는 것이 좋을까. 어느 쪽이 우리의 생명과 안전에 더 좋은 일인가?

참고로 FDA가 최근 홈페이지에 공지한 화장품 리콜은 9건이다. 캐나다 보건부도 최근 문신용 잉크와 박테리아가 검출된 샴푸, 뿌리는 헤어에센스 등을 리콜했다. 제대로 일하는 감독기관이 있는 나라에서는 이런 리콜이 일상이다. 리콜 사건이 보고되면 나쁜 화장품이 걸러진 것에 대해 안심해야 할 일이지 식약처를 욕하고 화낼 일이 아니다.

아모레퍼시픽

4. 우리나라는 화장품 안전을 지키기 위한 이중삼중의 장치를 갖추고 있다. 먼저 화장품법의 ‘화장품 안전기준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제조·판매·수입업자들은 모든 제품에 대해 자가, 혹은 위탁하여 품질검사를 해야 한다. 화장품회사들 스스로 기준에 미달하는 제품을 걸러내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다. 직접 하는 품질검사가 제대로 이루어질까에 대해 의심스럽겠지만 실질적으로 화장품회사들 스스로 엄격하게 검사한다. 얼렁뚱땅했다가 사후에 적발되면 리콜은 물론 이미지 손상 등 더 큰 손해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식약처는 수시로 시중에 유통되는 제품들을 무작위로 수거하여 안전기준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 검사한다. 그래서 가끔 신문에 중금속 검출, 미생물 검출, 스테로이드 검출 등의 뉴스가 보도되는 것이다. 2009년 베이비파우더에서 석면이 검출된 사건이 있었는데 이 역시 식약처의 검사 활동을 통해 밝혀진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도 식약처는 욕만 먹었지 밝혀줘서 고맙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각 지자체 보건환경연구원의 조사 활동이 있다. 보건환경연구원은 보건, 의료, 환경에 걸쳐 다양한 조사 활동을 벌이는데 그중 하나가 화장품의 잔류 중금속, 발암물질, 환경호르몬, 미생물을 조사하는 것이다. 지난해 대구 보건환경연구원이 립스틱과 일반화장품 40개 품목을 수거하여 중금속 실태를 조사한 결과 모두 기준치에 적합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언론은 이런 뉴스는 잘 보도하지 않고 뭔가가 검출되었을 때에만 큰일 났다며 난리를 피운다. 안티몬 뉴스가 터지기 불과 3일 전에도 식약처는 분장용 화장품과 바디·페이스 페인팅 제품 95개 품목을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지만 보도해준 언론은 많지 않았다. 모든 제품이 안전하다고 나왔기 때문이다.

5. 이처럼 우리는 안전 뉴스에는 둔하고 위험 뉴스에는 지나치게 예민하다. 안전 뉴스에는 관심도 없고 고마워하지도 않으면서 위험 뉴스에는 지나치게 분노하며 노이로제 반응을 일으킨다. 언론이 편파적, 선동적으로 보도하는 데에는 대중의 탓도 크다. 우리 스스로 그런 뉴스로 우르르 몰려가고 그들이 선동하는 대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언론 탓만 할 게 아니다. 지금 언론의 수준이 바로 우리의 수준이다.

6. 자연은 늘 변한다. 원료도 늘 변한다. 심지어 제조환경도 계속 바뀐다. 그래서 기업은 절대로 방심하지 말고 품질관리에 완벽을 기해야 한다. 인간이 하는 일이라 한두 번 실수할 수는 있다. 그러나 계속 반복된다면 그것은 품질관리 시스템에 구멍이 뚫린 것이다. 이번 일로 아모레퍼시픽과 화성코스메틱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화장품회사가 뜨끔했을 것이다. 품질관리에 더 철저해지는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최지현

화장품비평가. 작가 겸 번역가. ‘뉴스위크’ 한국어판 번역위원을 지냈다. 2004년과 2008년에 두 차례 폴라 비가운의 ‘나 없이 화장품 사러 가지 마라’를 번역하면서 화장품과 미용 산업에 눈을 떴다. 이후 화장품비평가로 활동하면서 ‘헬스경향’, ‘한겨레’ 등에 과학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화장품의 기능과 쓰임을 정확히 알리고 있다. 지은 책으로 '서른다섯, 다시 화장품 사러 갑니다'(2020·세종도서 선정), ‘화장품이 궁금한 너에게’(2019), ‘나나의 네버엔딩 스토리’(공저), ‘명품 피부를 망치는 42가지 진실’(공저) 등이, 옮긴 책으로 ‘하루 30분 혼자 읽기의 힘’, ‘아무것도 못 버리는 사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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