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자외선차단제’가 말이 되나

단순 항산화성분이 ‘자외선차단제’로 둔갑
식약처, 더 확산되기 전에 지금 당장 규제해야

먹기만 하면 자외선이 차단되는 알약이 있다면?

또는

매일 한 알씩 복용만하면 UVB뿐만 아니라 UVA까지도 차단되는 브로드스팩트럼 효과가 있다면?

또는

이미 수많은 사람이 이 알약을 복용하고 자외선차단 효과를 경험했을 뿐만 아니라 피부가 더 탱탱해지고 심지어 피로가 사라지고 눈이 밝아졌다고 증언한다면?

믿을 수 있을까

‘Sun Protection in a Daily Gummy'(매일 먹는 젤리로 자외선 보호)라는 카피를 달고 판매 중인 선닷츠(Sundots) 제품의 홍보사진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된다. 피부는 얇은 보호막을 가진 세포로 이뤄졌다. 이 보호막은 체내 수분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주고 외부 물질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보호해주는 역할을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빛을 막아주지는 못한다.

피부는 자외선을 막을 수 없다. 파장이 상대적으로 짧은 UVB는 표피층에만 작용하지만, 파장이 긴 UVA는 진피층까지 침투한다. 자외선의 피부 침투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외선차단제를 바르는 것뿐이다

강력한 자외선은 불꽃 없는 불과 같다. 이것은 피부에 화상을 입힐 수 있고 콜라겐 섬유와 비타민A 등과 같은 피부 속 물질을 파괴한다. 주름을 만들고 탄력을 떨어뜨리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DNA에 손상을 일으켜 흑색종과 같은 피부암을 일으킬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자외선에 약하다. 그래서 동물은 길고 빽빽한 털이나 자외선에 화학적으로 반응하는 피부색소를 진화시켰다. 식물도 마찬가지다. 식물이 가진 엽록소, 카로티노이드, 플라보노이드, 안토시아닌은 모두 자외선(과 산소)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색소다. 이러한 색소가 없으면 식물은 자외선의 파괴력을 견디지 못하고 말라비틀어져서 죽는다.

우리에게도 이런 색소가 있다. 바로 멜라닌이다. 멜라닌은 우리 피부가 가진 천연 자외선차단제다. 멜라닌은 햇볕이 내리쬐는 부위에 골고루 생성돼 피부를 갈색으로 만든다. 이 갈색 색소는 자외선의 빛에너지를 흡수해 열에너지로 전환해 방출하는 기능을 한다.

멜라닌 생성 원리. 기저층에 있는 멜라닌세포에서 멜라닌 색소를 만들어내면 그것이 표피층 전체로 전달되면서 태닝 효과와 함께 자외선보호 효과를 낸다

멜라닌은 우리 몸이 가진 유일한 자외선보호 메커니즘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아니, 다행히도!) 그 생산량이 한정돼 있어서 피부를 지속해서 보호해주지 못한다. 그래서 먹는 자외선차단제가 나왔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필자는 멜라닌 분비를 촉진해주는 알약이라도 나왔다는 건가 생각했다.

만약 멜라닌을 피부에서 무한정 생산해내게 하는 알약이 개발된다면 피부는 계속 천연 자외선차단제를 공급받기 때문에 화상도 DNA 손상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게 된다.

그야말로 노벨상급 발견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치명적 단점이 있다. 바로 피부색이 점점 짙어진다는 것이다. 간편하고 대단한 발견이긴 하지만 절대로 시장에서 성공할 리가 없다. 지금 시장에서는 성공하는 제품은 오히려 멜라닌 억제제(미백 성분)다.

그러니 먹는 자외선차단제란 존재할 수 없다.

도대체 알약 하나가 피부에 어떤 작용을 해서 자외선을 차단한단 말인가? 알약을 먹으면 온몸의 세포에서 자외선을 차단하는 물질이 분비돼 생화학 쉴드를 만들어주기라도 한단 말인가? 그런 물질은 대부분 색소인데 피부색을 변하지 않게 하면서 그게 가능한가?

이처럼 상식과 과학에 근거해 생각할 때 먹는 자외선차단제라는 개념은 너무 황당해서 들어볼 가치조차 없다. SF에서도 써먹을 수 없는 삼류 설정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런 설정이 소비자에게는 통한다는 게 문제다. 미국에서 ‘선스크린 필’ 혹은 ‘오랄 선스크린’, ‘이너 선스크린’이라 불리는 먹는 자외선차단제가 수년 전부터 건강보조식품으로 불티나게 팔리기 때문이다.

먹는 자외선차단제로 팔리고 있는 여러 제품. 다양한 성분들이 쓰이지만 가장 주목을 받는 것은 아스타잔틴이다

국내에서도 아이허브 등을 통해 수많은 사람이 이 제품들을 구매하고 있다. 최근에는 ‘먹는 자외선차단제’라고 암암리에 홍보하는 ‘이너셋 허니부쉬’라는 제품도 국내에서 출시됐다.

도대체 어떤 근거로 먹는 자외선차단제가 가능하다는 건지 내용을 들여다보자.

핵심성분은 아스타잔틴(Astaxanthin), 루테인(lutein), 베타카로틴(beta-craotene), 라이코펜(lycopen) 등이다. 모두 카로티노이드 계열 색소로 강력한 항산화제다. 특히 뇌, 각막, 피부 세포의 손상을 복구하고 튼튼하게 만들어 시력보호, 피부미용, 기억력증진 등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러 동물실험에서 이 성분들이 자외선으로 인한 손상을 줄여주고 자외선 저항력을 길러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소규모 임상시험에서도 복용 몇 주 만에 자외선 노출로 홍반이 나타나기까지의 시간이 좀 더 길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비타민C, E, A, D로 시험을 해도 마찬가지다. 플라보노이드나 오메가산, 코코아가루, 노니가루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수치상으로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든 항산화제는 피부를 튼튼하게 만들고 산화손상을 복구해준다.

형편없는 음식을 먹인 쥐보다는 항산화 성분이 많은 음식을 먹인 쥐가 피부세포가 더 튼튼할 것은 당연하다. 이들 쥐에게 자외선을 쏘이면 당연히 항산화 성분을 많이 먹은 쥐가 좀 더 오래 자외선을 견딜 것이고 그 손상을 빨리 회복할 것은 굳이 실험을 해보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만약 피부를 좀 튼튼하게 만들어준다고 해서 이런 제품들을 ‘먹는 자외선차단제’로 부른다면 이들 성분이 함유된 토마토, 당근, 케일, 시금치, 새우, 연어 등도 먹는 자외선차단제가 될 수 있다. 더 나아가 모든 항산화성분과 항산화성분이 많이 들어있는 모든 식품도 먹는 자외선차단제로 볼 수 있다.

지금까지 피부 건강개선 제품으로 판매되던 모든 건강기능식품이 자료를 조금 보강해 너나 할 것 없이 ‘먹는 자외선차단제’로 탈바꿈해도 할 말이 없게 된다.

실제로 이너셋 허니부쉬의 원료인 허니부쉬추출발효분말은 주성분이 폴리페놀이다. 폴리페놀도 강력한 항산화성분 중 하나로 이미 피로회복, 피부미용, 체지방개선 등의 효능을 내걸고 수많은 건강기능식품이 판매 중이다.

이너셋 허니부쉬는 똑같은 폴리페놀을 ‘먹는 자외선차단제’로 컨셉을 바꿔 출시했일 뿐이다. 피부건강에 도움이 됐다는 별로 시답지 않은 인체적용 시험결과만 있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식약처는 이 원료가 “자외선에 의한 피부손상으로부터 피부건강유지에 도움을 줄 수 있음”이라는 이유로 개별 건강기능성원료로 인정해줬다. 항산화성분이니 당연히 피부는 좋아진다. 자외선 손상도 좀 더 빨리 회복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것을 ‘먹는 자외선차단제’로 불러도 되나?

이너셋 허니부쉬 홈페이지 광고의 한 장면. 4계절 자외선차단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제품의 효능을 은근히 연결하고 있다. 이너셋 허니부쉬는 직접적으로 ‘먹는 자외선차단제’라는 표현을 쓰지는 않지만, 언론, 연예인, 블로거, 유튜버 등을 통해 이런 표현을 간접적으로 확산시키고 있다(출처 휴온스)

따라서 여기서 가장 잘못된 점은 네이밍이다.

업체들은 ‘먹는 자외선차단제’라는 표현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생각해보지도 않고 너무 쉽게 이름을 붙였다. 이것은 피부를 조금 튼튼하게 해준다고 해서 쉽게 쓸 수 있는 재밌는 애칭이 아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다이어트 필’을 먹기만 하면 살이 빠지는 약으로 생각하듯이 ‘선스크린 필’도 바르기만 하면 자외선이 차단되는 약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이 표현이 한국에서 더 이상 확산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너셋허니부쉬’가 시작했으니 곧 엄청나게 많은 제품이 몰려올 것이다. FDA는 수년 동안 팔짱만 끼고 이 사태를 지켜보다가 문제가 커지자 이제야 수습에 나섰다. 지난 5월 ‘먹는 자외선차단제’로 광고한 4개 업체에 경고문을 보냈다.

이들 4개 업체가 사용한 광고 표현이다.

  1. 자외선으로 인한 산화 스트레스를 감소시켜준다
  2. 광보호능력을 향상시켜준다
  3. UVA와 UVB로부터 브로드스펙트럼 보호효과를 준다
  4. 하루 한 알로 얻는 자외선 보호효과

FDA는 이러한 표현들이 소비자에게 오해를 유도할 뿐만 아니라 마치 약의 효과로 착각하게 만드는 과장광고라고 말한다. 특히 미국은 자외선차단제 사용률이 남성 14%, 여성 30%에 불과하고(한국은 남성 40%, 여성 76%) 바르는 자외선차단제를 꺼리는 사람이 많은 만큼 이런 광고에 쉽게 현혹될 위험이 높다.

FDA는 유일하게 합법적이며 효과가 증명된 자외선차단제로션, 크림, 스틱, 스프레이 형태로 생산되는 바르는 자외선차단제뿐이며 이것을 대체할 수 있는 알약이나 캡슐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문제가 커지기 전에 식약처의 빠른 조치가 필요하다. ‘먹는 자외선차단제’, ‘선스크린 필’, ‘오랄 선스크린’ 등의 표현이 한국 땅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지금 당장 규제를 시작해야 한다. 광고를 통한 직접적인 표현뿐만 아니라 언론, 연예인, 블로거, 유튜버를 통해 교묘하게 퍼뜨리는 방식에도 제재를 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