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더 많은 환자를 살릴 방법은 감시가 아니라 보호다

몇 차례 언론에도 보도된 바 있었고 필자가 쓴 책에도 언급했지만, 필자도 의료사고(의료과오)의 피해자였습니다.

1차 오진

아내가 아들을 출산할 때, 생후 34주에 진통이 왔습니다. 응급실로 가지 않고 산전 진찰을 받던 세브란스 산부인과 외래를 접수하고 진찰을 받았습니다. 필자는 마침 지방병원에 파견을 나가 있었는데, 당시는 핸드폰도 없던 때라 연락이 닿지 않았었습니다.

아내는 두 시간 가까이 기다려 외래진료를 받았는데 산부인과 교수님은 “진통(산통)이 아니다”며 아내를 돌려보냈습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온 아내가 집에 도착한 지 10분 만에 Cord Prolapse(탯줄이 빠져나와 태아의 목이 졸리는 것과 같은 응급상황)가 발생했고, 다행히 집에 잠깐 들어오셨던 아버님이 담요로 몸을 둘둘 말은 아내를 차에 실어 세브란스병원 응급실로 데려가셨습니다.

2차 오진

세브란스 도착 직후 산부인과 의사들은 아직 태아의 심장이 뛰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응급수술을 준비하던 중, 다시 태아의 상태를 점검했던 산부인과 의사는 “아이가 사망했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아내에게 “배를 열고 위로 꺼낼 것인지, 아니면 질을 통해 아래로 꺼낼 것인지를 결정하라”고 말하면서 “위로 꺼내면 태아가 다치지 않지만, 몸에 상처가 나고, 아래로 꺼내면 몸에 상처가 남지 않지만, 태아가 다치게 된다”고 장단점을 설명하며 선택을 요구했습니다. 아내는 “아이가 다치지 않도록 해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수술이 시작됐는데, 태아가 이미 사망한 것으로 판단한 의료진이 아내의 배를 열고 태아를 꺼낸 후 한쪽에 치워놓고 배를 봉합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간호사가 태아가 아직 완전히 사망하지 않았음을 발견했고 이후 CPR을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아들의 1분 APGAR score는 1점이었습니다.

Newborn baby inside incubator in hospital post delivery room

3차 오진

중환자실로 이송된 아들에게 희망을 가진 의사는 없었습니다. 응급실과 수술실에서 두 번이나 사망 판정을 내렸던 아이의 뇌 상태가 정상일 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뇌는 심각한 허혈성 손상을 받았고 폐와 간에 미숙아이자 저체중아로 출생해 여러 합병증이 동반됐습니다. (IUP 34주 1.74kg)

그리고 얼마 후 허혈성 뇌 손상에 더해 뇌출혈도 발생했습니다. 의료진은 더 이상의 치료는 무의미하다며, 치료를 중단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필자는 의료진의 권고에 따라 인큐베이터 안에 있던 아들의 입에 꽂혀 있던 인공호흡기를 제거했고, 호흡과 심장이 멎지 않자 산소공급까지 중단시켰습니다.

4차 오진

그럼에도 아들은 생명을 이어나갔습니다. 며칠 기다리던 의료진은 가망 없는 퇴원을 제게 권유했고, 필자는 또 따랐습니다. 장사치를 준비를 모두 준비해 놓고 아들과 며느리 없는 집에서 필자의 부모님이 의료진으로부터 아들을 건네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수액공급을 중단하면 곧 사망할 것이라던 의료진의 예상과 달리 아들은 차 숟갈로 떠먹이는 보리차를 받아먹으며 꿋꿋이 생명을 지켜나갔습니다. 그리고 아들은 아무런 후유증 없이 건강하게 성장했습니다. 의학의 예상을 벗어난 기적의 증거가 필자의 아들입니다.

아들의 치료과정 중에서 여러 번의 오진이 있었습니다. 필자도 의료진들이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의료진을 고소하지 않았습니다. 필자와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선후배 동료들이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위에서 ‘오진’이라고 표현했지만, 사실은 ‘의사의 예상에서 벗어난 일’입니다. 의사는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이 가진 지식과 감각을 동원해 판단을 내리지만, 그 판단이 틀리는 일이 허다하게 일어납니다. 의사의 예상 판단이 틀렸다고 그 의사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래서 필자가 진짜 원망했던 것은 의료진이 아니라 의료진이 오판하도록 처한 상황이었습니다.

대한의사협회(회장 최대집)가 10월 25일 ‘횡경막 탈장 및 혈흉’에 따른 저혈량성 쇼크로 환자가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담당 의료진에게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한 판결에 대해 “생명을 다루는 의료행위의 특수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불가피한 악결과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의사에게 전가시킨 것은 매우 부당한 결정”이라며, 1심에서 법정구속을 선고한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앞에서 삭발시위를 했다.

상황에 대한 원망을 의료진들에게 투사해서는 안 됩니다. 이번 횡격막 탈장 오진 사건은 비전형적인 경과를 보임으로써 인해 발생한 ‘불행한 일’이었습니다. 물론 생명을 건져낼 (4번째 응급실 내원 시) 기회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의료진이 (물론 그것도 불확실하지만) 기회를 놓쳤다고 해서 의료진을 인신구속으로 처벌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그것은 환자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삶과 죽음이 갈리는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는 의료진들을 위축시키고 방어 진료로 몰아가는 일이며, 그로 인해 살 수 있는 더 많은 생명이 살아날 기회를 놓치도록 만드는 일이 될 것입니다.

의사는 감시를 받을 때가 아니라, 보호를 받을 때 더 큰 용기를 낼 수 있고 더 많은 환자를 살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