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미국 화장품 문화를 주도하는 키워드는 ‘클린 뷰티(Clean Beauty)’다. 이것을 단순히 화학성분 거부나 천연성분 예찬주의로 치부하면 클린 뷰티 운동가들은 정색을 한다. 자신들은 성분의 출처만으로 위험과 안전을 판단하는 무식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신들이 벌이는 운동은 생활에서 안전이 증명되지 않은 모든 화학물질을 몰아내어 건강과 아름다움을 찾고 자연과 연결되고 삶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단순한 트렌드가 아니다. 소비자 운동이며, 소비자 혁명이다.

이 운동에 역시 동참하고 있는 EWG의 주장이다.

이 ‘혁명’적인 운동에 누가 발을 담그고 있는지 알아보자. 기네스 펠트로는 2008년 자칭 ‘라이프 스타일 플랫폼’이라 주장하는 웹사이트 ‘구프(Goop)’를 만들면서 이 운동에 동참했다. 제시카 알바도 2012년 ‘어니스트 컴퍼니(Honest Company)’를 만들면서 대표적인 ‘클린 뷰티’ 운동가가 됐다. 엠마 왓슨도 클린 뷰티 메이크업 브랜드인 ‘RMS 뷰티’의 인스타크램 홍보대사가 되면서 자신이 ‘클린 뷰티’ 운동에 동참하고 있음을 세상에 알렸다. 모두 대표적인 클린 뷰티 운동가로 알려져 있다.

타타 하퍼와 그렉 렌프류도 빼놓을 수 없다. 이 둘은 ‘클린 뷰티’ 분야에서 가장 성공한 CEO들이다. 성공한 사업가라면 의례히 갖고 있는 감동적인 창업스토리도 있다. 잠시 감동을 받아보자.

고가의 클린 뷰티 브랜드 타타 하퍼의 창립자인 타타 하퍼

타타 하퍼는 아버지가 암 선고를 받으면서부터 삶이 달라졌다고 한다. 아버지의 암이 화학물질 때문이라고 확신한 그녀는 일단 자신이 쓰는 화장품부터 천연으로 바꾸기로 했다. 하지만 어느 화장품에나 파라벤과 인공색소와 프탈레이트가 들어있는 것을 보고는 절망에 빠졌다.

그래서 유럽의 과학자들과 몇 년 동안 연구해 드디어 화학물질이 전혀 없으면서 훌륭한 성능을 발휘하는 100% 천연제품을 개발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개발한 제품을 모아 2007년 ‘타타 하퍼’라는 브랜드를 만들었고 이후로 쭉 승승장구했다. 현재 타타 하퍼의 기업 가치는 130억 달러로 평가된다.

다단계 교육 및 판매 방식을 도입한 뷰티카운터의 설립자 그렉 렌프류

그렉 랜프류는 ‘웨딩 리스트’의 창립자로 2003년 마사 스튜어트가 이 회사를 인수하면서 한 차례 화제의 인물이 됐던 사업가다. 2013년 새롭게 시작한 사업이 바로 클린 뷰티 브랜드인 ‘뷰티 카운터(Beautycounter)’다. 그녀는 화장품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고 잘 몰랐다고 한다. 어느 날 유럽이 금지하는 화장품 성분들을 FDA는 금지하지 않고 있으며, 화장품회사들은 유해한 성분을 아무 규제 없이 마음대로 쓰고 있다는 말을 듣게 됐다. 이를 계기로 그녀는 미국 여성들에게 안전한 화장품을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게 된다.

그녀가 생각한 비즈니스 모델은 여성들에게 안전한 화장품을 판매하면서 동시에 화학성분에 대해 교육하고 의식 있는 소비자가 되도록 계몽하는 것이다. 그래서 일대일로 교육을 하는 다단계 판매방식을 도입했다. 몇몇 정치인과 손을 잡고 화장품 규제 법안을 발의해 통과시키는 운동도 하고 있다. “뷰티에 진실과 정의를 실현하겠다”는 것이 그녀가 밝힌 비전이다.

두 사람의 창업 스토리가 감동적인가? 글을 쓰면 쓸수록 필자는 속이 불편하고 메스꺼워진다. 클린 뷰티 동참자들은 계속 ‘소비자 운동’, ‘혁명’, ‘계몽’, ‘진실’, ‘정의’ 등의 단어를 늘어놓는다. 하지만 이것은 그저 보기 좋게 포장된 비즈니스일 뿐이다. 그것도 사람들의 케모포비아를 자극해 화학물질에 대한 공포를 불어넣고 심지어 의식 있는 소비자가 된다는 자부심에 특별한 제품을 쓴다는 허영심까지 부추기는 비즈니스에 불과하다.

가장 억지스러운 것은 기존의 천연화장품 브랜드들로부터 자신들을 구분 짓는 이들의 태도다. 아베다나 바디샵 같은 큰 브랜드는 아무리 천연 성분으로 제품을 만들어도 클린 뷰티로 인정해주지 않는다. 반드시 대기업이 아니어야 하고, 신생 브랜드여야 하고, 더 고집스러운 철학이 있어야 하고, 그래서 대체로 고가여야 한다.

기네스 팰트로의 구프는 125달러나 하는 각질제거제, 185달러나 하는 세럼, 90달러나 하는 클렌저를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판매하고 있다. 타타 하퍼의 모이스처라이저도 기본이 100달러가 넘는다. 최고급 스페인산 라벤더 추출물과 로즈힙 오일에서 추출한 레티놀산 등 차원이 다른 원료를 썼기 때문이란다. 의식 있는 소비자라면 높은 기준을 가진 만큼 당연히 이 정도 돈을 쓸 줄 알아야 한다는 식이다.

고가에 판매되는 기네스 펠트로의 구프

 

고가에 판매되는 타타 하퍼의 제품

하지만 성분표를 보면 기존 천연화장품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정제수를 알로에베라즙이나 레몬즙, 포도즙, 사과즙으로 대체하고 AHA와 BHA를 천연재료에서 추출한다고 해서 화장품의 효과가 달라지는 게 아니다.

게다가 파라벤을 절대 써서는 안 되는 ‘네버 리스트(Never List)’에 올려놓고 파라벤과 같은 계열인 소듐벤조에이트를 쓰는 행위는 뭔가? 파라벤은 안 되는데 페녹시에탄올은 되는 이유는 뭔가? 뭔가 획기적으로 다른 것처럼 포장해놨지만 기존 천연화장품들이 저지르는 모순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을 뿐이다.

무엇보다도 클린 뷰티 운동은 전제 자체가 잘못됐다. 이들은 FDA가 화장품을 규제하지 않기 때문에 시장에 나오는 모든 화장품이 화학물질로 범벅이 됐다는 전제 하에 이 운동을 펼치고 있다. 유럽연합은 무려 1400개의 성분을 금지하고 있는데 미국은 겨우 몇 개만 금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FDA는 규제를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업계의 자율 규제라는 다른 시스템을 채택한 것일 뿐이다. FDA는 화장품협회에 안전한 화장품을 만들 것을 주문했고, 화장품협회는 직접 기금을 조성해 독립적 과학자들로 이루어진 ‘성분검토회’를 만들었다. 성분검토회는 문제가 되는 모든 성분의 위해성을 검토하여 보고서를 낸다.

이 보고서는 업계의 자율규약이 되어 기업으로 전달된다. FDA는 이 보고서를 기준으로 시중의 화장품을 수거해 안전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 모니터링한다. 만약 보고서의 기준을 초과하거나 쓰여서는 안 될 성분이 검출되거나 세균, 곰팡이 등에 오염되었다면 곧바로 연방법원을 통해 제품의 회수, 생산 중단 등의 명령을 내릴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자율 규제 방식은 불안하다.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한국도 포함) 정부가 직접 금지성분 리스트를 만들고 검출한도를 규제하고 있으니 미국인들이 보기에도 이상할 것이다. 일찍이 EWG가 이 문제를 물고 늘어져 화장품이 위험하다고 미국인들을 설득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지금 ‘클린 뷰티’ 운동도 바로 이 전략을 그대로 쓰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한 가지 놓친 것이 있다. 만약 미국 화장품이 그렇게 제멋대로 만들어진다면, 어떻게 미국이 세계 2위의 화장품 수출국일 수 있겠는가? 미국은 한 해 53억 달러 어치의 화장품을 해외로 수출한다(2017년 기준). 세계 곳곳에 미국 화장품이 안 들어가는 곳이 없다. ‘클린 뷰티’ 운동가들은 유럽이 금지하는 1400개의 성분을 미국은 금지하지 않았다고 징징거리는데 유럽 기준을 충족하지 않으면 유럽 수출 자체가 불가능하다. 우리 식약처의 기준을 충족하지 않으면 우리나라에도 못 들어온다.

그러니 클린 뷰티 운동의 전제는 와르르 무너진다. 미국 화장품회사들은 안전기준을 잘 지키고 있고 FDA는 다른 방식으로 효율적으로 규제를 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FDA가 규제를 하지 않는다는 이들의 주장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이들 스스로 증명했다. 지난해에 제시카 알바가 만든 유아용 물티슈와 파우더가 곰팡이와 세균 오염으로 FDA에 의해 회수명령을 받았다. 뷰티카운터도 ‘누리싱 데이크림’에서 세균이 검출돼 회수명령을 받았다. 규제를 안 한다고 징징거리더니 규제를 당했을 때는 변명만 늘어놓았다.

어니스트컴퍼니를 창립해 화장품, 유아용품, 세제 등을 판매하는 제시카 알바

 

구프를 창립해 화장품은 물론 식품, 건강보조제, 패션까지 판매하고 있는 기네스 펠트로

‘클린 뷰티’ 운동가들은 멀쩡한 화장품을 위험하다고 주장해 대중에게 겁을 주고, 그것을 마치 소비자 계몽운동인 양 포장하고, 자기들 제품을 선택하는 것이 더 현명하고 가치 있는 선택인 것처럼 사람들을 세뇌시켰다. 사람들은 기네스 펠트로의 멋지게 늙어가는 생얼과 엄마가 되어도 여전히 싱그러운 제시카 알바의 사진을 보며 저들의 멋진 삶에 나도 동참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진실은 다르다. 이들은 그저 예쁘고 머리 좋은 여자들의 케모포비아 장사에 이용당한 것이다.

필자가 더 우려하는 것은 이렇게 허접한 ‘클린 뷰티’ 운동이 분명히 한국에도 상륙할 것이라는 점이다. 화장품 회사들도 벤치마킹하겠지만 환경단체, 특히 페미니즘 단체들이 이것을 그대로 벤치마킹할 게 분명하다. 이들은 ‘지구를 위한 여성의 목소리’를 벤치마킹해 생리대 사태를 벌였고, ‘캠페인 포 세이프 코스메틱’과 EWG를 벤치마킹해 프탈레이트와 중금속에 대한 과장된 뉴스를 퍼뜨렸다.

그래도 미국은 실제로 FDA가 직접 규제를 안 한다는 빈틈이라도 있다. 한국은 유럽과 마찬가지로 식약처가 1400여개의 금지성분을 만들었고 검출한도와 사용한도를 꼼꼼하게 적용해 감독하고 있다. 우리나라 화장품도 세계 수출시장의 8%를 차지할 정도로 곳곳에 수출된다. 도대체 어떤 명목으로 한국 화장품이 위험하다고 말할 것인가? 제발 아무 거나 가져와서 한국에 끼워맞추지 않았으면 한다.

최지현

화장품비평가. 작가 겸 번역가. ‘뉴스위크’ 한국어판 번역위원을 지냈다. 2004년과 2008년에 두 차례 폴라 비가운의 ‘나 없이 화장품 사러 가지 마라’를 번역하면서 화장품과 미용 산업에 눈을 떴다. 이후 화장품비평가로 활동하면서 ‘헬스경향’, ‘한겨레’ 등에 과학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화장품의 기능과 쓰임을 정확히 알리고 있다. 지은 책으로 '서른다섯, 다시 화장품 사러 갑니다'(2020·세종도서 선정), ‘화장품이 궁금한 너에게’(2019), ‘나나의 네버엔딩 스토리’(공저), ‘명품 피부를 망치는 42가지 진실’(공저) 등이, 옮긴 책으로 ‘하루 30분 혼자 읽기의 힘’, ‘아무것도 못 버리는 사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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