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 글로벌 제약사들 간 인수합병이 활발하게 진행됐다. MSD-엑셀러론, CSL-비포파마, 오라클-서너 등 수백억 달러에 달하는 ‘빅딜’이 하반기에 이뤄졌고 상반기에도 못지않은 인수가 이어졌다.

전 세계적으로 이뤄진 제약사 간 인수합병 건을 집계해보면 총 32건. 인수 액수는 약 1171억5500만 달러(한화 약 139조2387억원)에 이른다. 액수와 조건이 알려지지 않은 7건의 비공개 인수합병 거래를 감안하면 규모는 이보다 더 클 것으로 분석된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상반기엔 바이오텍 간 인수가 주를 이뤘던 한편 달리 하반기에는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그룹 오라클이 참여하는 등 굵직한 거래가 진행됐다. 하반기 거래를 통해 분석해보면 글로벌 제약사들의 관심은 항암제와 자가면역질환 분야에 집중됐다. 코로나19 백신으로 관심을 받은 mRNA 기술을 사들이려는 움직임도 보였다.

지난 20일 체결된 소프트웨어 기업 오라클의 전자 의료기록 업체 ‘서너’ 인수는 제약업계에서 이례적인 거래라고 입을 모았다. 인수 금액은 무려 283억 달러(약 33조6346억원). 2011년 기준 마이크로소프트웨어에 이어 일반 기업용 소프트웨어로 세계 2위를 차지하고 하드웨어 역시 강세를 보이는 오라클은 서너를 인수함으로써 신수종 분야 헬스케어 사업을 강화해나갈 계획이다. 이번 인수는 오라클 역사상 가장 큰 거래로 기록되기도 했다. 시간이 흘렀지만, 오라클의 2014년 매출액은 382억7000만 달러, 영업이익은 147억5000만 달러였다.

희귀약 전문 개발업체인 엑셀러론 인수자는 MSD로 낙착됐다. BMS와 경쟁 끝에 엑셀러론을 115억 달러(약 13조6678억원)에 계약을 체결했다. 오라클을 제외하면 올해 글로벌 제약사가 진행한 인수합병 중 가장 큰 규모다.

엑셀러론은 골수암 및 베타지중해빈혈 치료제 ‘레블로질’을 개발했고, 폐동맥 고혈압 치료제 ‘소타터셉트’ 후기 임상을 진행한 상황에서 MSD는 이번 인수로 희귀질환 분야를 강화해 면역항암제의 대명사라 불리는 키트루다와 더불어 시너지를 기대하고 있다.

앞서 올 2월 MSD는 판디온 테라퓨틱스를 18억5000만 달러(약 2조1201억원)로 인수합병 협상에 성공하며 면역 질환 관련 기술을 확보하기도 했다.

지난 14일 호주 제약사 CSL은 스위스 제약기업인 비포 파마를 117억 달러(약 13조9055억원)에 인수했다. 비포 파마는 신장질환 치료제를 여럿 출시해 시장에 내놓은 상태. 여기에 개발 중이거나 임상을 앞두거나, 품목 허가를 예정 중인 약제까지 합하면 CSL은 약 37개에 이르는 다양한 제약 라인을 보유하게 된다. 이를 바탕으로 CSL은 새해 들어 더 큰 도약을 준비한다.

올해 바이오텍 인수합병 시장에서 사노피의 기세가 맹렬했다. 무려 6건의 거래. 올해 초부터 카이맵(1월)과 타이달(4월)을 각각 14억5000만 달러(약 1조7233억원), 4억7000만 달러(약 5586억원)에 인수했고 이어 8월 트랜스레이트를 32억 달러(약 3조8032억원), 카드몬을 19억 달러(약 2조2582억원)에 확보했다. 12월에는 오리짐과 아뮤닉스 두 곳과 인수 계약을 체결했다. 아뮤닉스의 계약 규모는 12억2500만 달러(약 1조4559억원)이며, 오리짐의 계약 규모는 비공개다.

타이달과 트랜스레이트는 모두 mRNA 기술을 가진 곳. 과거 백신 명가로 꼽혔던 사노피로선 mRNA 기술을 확보함으로써 델타, 오미크론 등의 변형 바이러스로 뻗어 나가는 코로나19 국면에 새로운 백신 개발을 모색할 예정이다. 실제 올해 6월 mRNA 백신 개발을 위한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밝혔다. 타이달과 트랜스레이트 두 곳을 인수한지 얼마 안 돼 나온 발표다.

이뿐만 아니라 사노피는 자가면역질환 신약 개발사인 카이맵과 피부질환 관련 백신 개발업체인 오리짐을 인수해 백신은 물론 다양한 질환을 예방하거나 치료하는 제약하는 사내 시너지를 통해 개발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 중이다. 올해 사노피가 바이오텍 인수에 쓴 금액은 82억 달러(약 9조7457억원)로 비공개 계약 건도 상당하다.

노바티스는 올해 두 곳의 안질환 유전자 치료제 전문 개발 기업을 인수했다. 인수 후 유전자 치료 신약에 의지를 드러내게 된다. 9월 인수한 아크토스와 12월 인수한 자이로스코프 모두 AAV 기반 유전자 치료제를 개발하는 곳이다. 노바티스는 인수합병된 회사의 개발 기술을 토대로 자사의 제품으로 개발하는 데 능한 기업이다. 2018년 아벡시스 인수로 AAV 유전자 치료제 ‘졸겐스마’를 성공적으로 상업화한 바 있다.

화이자는 아레나와 트릴리움 인수에 약 90억 달러를 투입했다. 트릴리움은 CD47을 표적하는 항암제 개발 기업으로 여러 글로벌 제약사들이 CD47 약물을 개발 중인데, 이번 거래에 화이자도 본격적인 경쟁에 뛰어들었다. 아레나는 S1P를 표적하는 자가면역질환 신약 개발 기업으로 알려졌다.

올 한해 역시 글로벌 제약사들 간의 인수합병 양태가 활발했다. 제약사들은 자사가 보유하지 못한 기술을 개발한 회사를 인수함으로써 자사 보유 기술과 시너지를 내 거나 새로운 제약을 개발하는 밑절미로 삼기도 했다. 눈여겨볼 기업은 오라클로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회사가 제약사를 인수합병함으로써 보일 성과에 많은 사람의 시선이 쏠리는 중이다. 이번 인수를 비춰봤을 때 바이오텍 간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 기업 역시 바이오텍 기업을 확보함으로써 신수종 사업 혹은 보유업종을 다층화하는 실례로 삼을 수 있다. 국내의 삼성 역시 바이오기업을 세움으로써 전자와의 승수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코로나19의 변종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부유하고 아직 정복되지 못한 새해에도 글로벌 바이오텍 간 인수합병이 활발해질 전망이다. 반면, 우리 제약기업들은 자사가 개발한 제약 그리고 거대 글로벌 기업의 특허에만 목을 매는 수세적 경영을 이어갈 듯하다. 

업계 관계자는 “당장 오는 3월 만료되는 당뇨 관련 가브스 특허에 수십여 개 국내 제약기업이 제네릭을 만들 채비를 하고 있다”며 “더 나은 경영 혹은 혁신을 위한 인수합병은 우리 현실에 난망할 뿐이다”고 말했다.

이환희 기자

일생을 지망생으로 살았다. 가수지망생, PD지망생을 거쳐 취업지망생까지. 지망은 늘 지망으로 그쳤고 이루거나 되지 못했다. 현재는 이야기를 짓는 일을 지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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