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없는의사회와 특허법 개정 연합 등 전 세계 관계단체들이 지난 10일 약제내성 결핵 치료 규모를 늘리고 사망자 수를 줄이기 위해 존슨앤드존슨에 항결핵제 베다퀼린(bedaquiline)의 가격을 ‘1일1달러’로 인하할 것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미국, 남아공, 브라질, 벨기에, 우크라이나, 스페인의 존슨앤드존슨 앞에서 약제내성 결핵 환자들이 결핵약 하루 복용치를 1달러 미만에 살 수 있도록 가격 인하를 요구하는 시위를 열었으며, 수많은 결핵 활동가와 시민단체의 지지와 참여가 잇따랐다.

국경없는의사회 필수의약품 접근성 강화 캠페인(Access Campaign, 이하 액세스 캠페인)의 HIV/결핵 정책 고문 샤로난 린치(Sharonann Lynch)는 “베다퀼린은 납세자들과 전 세계 결핵 관련 기관의 자금으로 개발된 것”이라며 “베다퀼린 개발에 기여한 이들의 의견도 약값 책정에 반영되어야 하며, 존슨앤존슨는 모든 약제내성 결핵 환자가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하루 복용 가격을 1달러 미만으로 낮춰야 한다. 베다퀼린 가격이 인하될 때까지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베다퀼린은 상당한 납세자 및 비영리 기관, 기부자의 지원을 받아 개발됐다. 약품의 사용법을 알리고 치료 효과를 입증하는 중요한 역할은 대부분 결핵 연구 기관, 각국 보건부, 그리고 국경없는의사회를 비롯한 치료 제공 기관이 담당했으며, 납세자 및 기타 후원자의 재정적 지원으로 이뤄졌다.

이런 국제적인 공동의 기여에도 불구하고 특허는 수많은 국가에서 존슨앤드존슨이 독점하고 있으며, 어느 국가에서 판매될지 결정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존슨앤드존슨은 앞서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자사 다른 약품들의 판매 승인을 앞당길 수 있는 우선심사권을 획득해 상당한 경제적 이득을 거둔 바 있다.

Bacteriological laboratory in Grozny TB Dispensary. MoH laboratory specialist performing MGIT tests to assess susceptibility to anti-TB drugs(출처 국경없는의사회)


존슨앤드존슨은 현재 베다퀼린 가격을 국경없는의사회가 요구하는 가격의 두 배로 책정한 상태다. 존슨앤드존슨은 유엔 연계 결핵 약품 및 진단기기 조달 기관인 글로벌약품조달기구(Global Drug Facility, 이하 GDF)를 통해 베다퀼린 구매가 가능한 국가에서 6개월 치료과정분을 400달러(한화 약 47만원)에 판매 중이다.

하지만 영국 리버풀 대학(University of Liverpool) 연구진에 따르면, 베다퀼린은 아주 낮은 가격으로도 충분히 생산 및 판매가 가능하다. 연 10만8000개 치료세트가 판매된다고 가정 시 1일치가 무려 25센트까지 내려갈 수 있다. 1일치를 1달러에 판매할 경우, 대부분 약제 내성 결핵 환자에게 필요한 20개월 치료분은 600달러(한화 약 72만원) 선에서 해결할 수 있다.

현재 존슨앤드존슨이 GDF를 통해 약품 구매가 가능한 국가에 책정한 20개월 치료분의 최저가는 약 1200달러(한화 약 143만원)로 하루 2달러이며, 그 외 국가에는 더 높은 가격에 팔고 있다. 이런 과도한 가격은 약제 내성 결핵 유행으로 시달리는 수많은 국가에서 약품이 보급되는 것을 어렵게 한다. 특히 베다퀼린은 결핵 치료요법에 필요한 다양한 약품 중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남아공 칼리쳐에서 다중약물내성 결핵 치료를 받고 올해 초 완치된 놀루드웨 마반드렐라(Noludwe Mabandlela)는 “베다퀼린 덕분에 살 수 있었다”며 “이전에 주사약을 사용해 치료받을 땐 많은 부작용을 겼었으나 베다퀼린으로 바꾼 후에는 빠르게 건강이 회복됐다”고 전했다.

이어 “다른 사람들은 이런 고통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존슨앤드존슨 같은 제약회사들이 약제내성 결핵 환자의 생명줄 같은 이 약의 가격 인상을 중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베다퀼린은 지난 50여년간 개발된 신종 결핵 치료제 세 개 중 하나다(다른 두 개는 델라마니드(delamanid)와 프레토마니드(pretomanid)다). 신약 이전 대부분 국가에서 사용된 약제내성 결핵 치료요법은 환자들이 하루에 많게는 알약 20개씩을 2년간 복용하고 매일 주사를 맞아야 했으며, 정신증 혹은 지속적인 메스꺼움, 청력 소실까지 극심한 부작용을 겪었다. 이러한 차선의 치료요법을 통한 치료율은 다중약제내성 결핵 환자는 55%, 광범위 약제내성 결핵환자는 34%에 불과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8년, 베다퀼린을 처방받은 환자의 치료 결과가 개선됐다는 것을 보여준 통계를 바탕으로 베다퀼린을 주사 약품 대신 모든 전 경구 치료요법에 중점적으로 사용할 것을 권고했다.

베다퀼린 사용은 이미 효과를 보이고 있다. 치료 성공률이 떨어지는 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자, 다제내성 결핵(pre-XDR-TB) 환자, 광범위약제내성 결핵 환자에게도 효능을 발휘하고 있다. 벨라루스에서 베다퀼린을 처방받은 244명의 환자(이중 96%는 다제내성 결핵 또는 광범위약제내성 결핵 환자였다) 중 87%가 치료에 성공한 사례도 있다.

국경없는의사회 액세스 캠페인 의료 고문 필라르 우스테로(Pilar Ustero)는 “우리는 너무나 많은 환자가 고통스러운 주사약 외에는 대안이 없어 청력을 잃거나, 직업을 잃거나, 심지어 목숨까지 잃는 것을 봤다”며 “베다퀼린은 이 상황을 크게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는 베다퀼린에 접근성을 가진 약제내성 결핵환자들은 부작용을 겪지 않아도 되며 완치될 확률이 높아졌다”며 “베다퀼린은 어느 곳에서나, 누구나 이용 가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각국의 결핵 프로그램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보건기구가 다중약제내성 결핵 치료의 핵심약품으로 베다퀼린을 사용할 것을 권고한 이후 약 1만2000명만이 베다퀼린을 포함하는 치료요법을 받았다. 이는 매년 약제내성 결핵에 걸리는 55만8000명(2018년 세계결핵보고서)의 80%가 베다퀼린 처방이 필요하다는 것을 고려하면 매우 미미한 숫자다.

베다퀼린이 포함돼 더욱 내성이 강한 치료법이 신속히 확산되려면 다른 결핵 제약회사들이 복제약을 만들 수 있도록 하는 등 존슨앤드존슨이 모든 사람이 적절한 가격에 약을 살 수 있도록 접근성을 확대해야 한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전 세계 최대 비정부 결핵 치료 공급 기관이며, 30년 넘게 국가 보건 기관과 협력해 장기분쟁지역, 도시 빈민촌, 감옥, 난민 캠프, 그리고 기타 소외지역에서 결핵 치료에 기여하고 있다. 지난해 9월 기준, 14개국에 걸쳐 2000여명 이상이 신종 치료제를 처방받았으며 그중 633명은 40년만에 개발된 다른 신종 결핵 치료제 중 하나인 델라마니드, 1530명은 베다퀼린, 그리고 227명은 두 약품의 조합을 처방받았다.

국경없는의사회는 또한 장기적으로 베다퀼린을 적절한 가격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특허 장벽을 허물고 보다 많은 생산자의 시장진입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올해 2월 국경없는의사회는 존슨앤드존슨이 인도에서 출원한 특허에 대한 약제내성 결핵 생존자 두 명의 이의제기를 지지했다.

또한 국경없는의사회는 약제내성 결핵이 긴급한 보건 위기임을 고려해, 인도 정부가 특허 출원을 기각하고 자체 결핵 약품 생산자들에 강제실시권을 발부해 인도 국가 결핵 프로그램에 베다퀼린을 공급할 수 있도록 독려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는 추후 중요한 의약품에 대한 접근을 가로막는 특허 장벽들을 극복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 되는 한편, 다른 국가 또한 높은 가격을 근거로 강제실시권을 발부할 수 있는 선례를 제공할 수 있다.

소외 질병 우선심사권 프로그램 하에 FDA 적격 소외 질병 의약품(약품이나 백신)을 승인할 시, 신약개발업체에 우선심사권이 수여된다. 이 심사권은 해당 신약개발업체의 모든 약품이나 백신에 대한 식품의약국 검토를 가속하는데 사용할 수 있다. 반대로 개발업체는 심사권을 다른 기관에 양도할 수도 있으며, 앞서 350만달러에 양도된 선례가 있다.
김승한 기자

전 대학병원 연구원. 'MBN 세상의눈', '용감한 기자들', 'EBS 다큐프라임' 출연. 내부고발·공익제보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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