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바이러스와 인간

지난 17일 0시 기준 확진자 60명, 누적 인원 1만3672명, 사망자 293명. 숫자를 찾으러 품을 들였다. 한때는 모든 포털과 뉴스채널 상단에 붙박아 두던 숫자였다. 우리를 지배하고 옭아맸던 숫자는 매일 바뀌는 주파수처럼 느껴졌다. 코로나 19 확진자가 본격적으로 급증하던 올해 2월부터 달수로 여섯 달이 지났다. 이 반년이란 세월 사이 많은 것이 변하고 바뀌었다.

일을 잃거나(잊거나) 쉬는 사람이 대량으로 늘었다. 학교 수업의 개념이 전면적으로 개편됐다. 얼굴을 마주하지 않는 일이 미덕처럼 여겨졌다. 새천년의 문을 열었던 세계화 시대는 잠정적으로 중단됐다. 기침과 재채기 끝에 불안과 죄의식이 바투 달라붙었다.

수 세기를 이어온 인간의 문명과 사회상, 발달의 관성이 뿌리 끝부터 지적받고 반박되기 시작했다. 코로나19는 우리를 가만히 놓아두지 않았고, 미래를 내다본다는 학자들은 “미래, 인류를 가장 크게 위협할 존재는 바이러스”라고 단언했다. 바이러스는 늘 우리 곁에 있었으나 요즘처럼 인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적이 없었다.

한편, 소독약 매큰한 냄새로 가득한 병동과 진료실에서 간난고투한 의료진을 향한 찬사와 응원이 이어졌다. 지지는 몇 달을 충천하다 이제는 사람들 마음속에 고여 있다. 코로나19가 여전히 우리 곁에 머물러 있는 가운데, 감염현장에서 분투하는 의사의 기록이 책으로 묶여 나왔다고 하여 찾아 읽었다. 인천의 한 병원에서 근무하는 호흡기내과 이낙원 전문의가 쓴 <바이러스와 인간>이다.

<바이러스와 인간>(이낙원 지음/글항아리 출판)

책은 일기 글을 모아 장(章)을 구분지어 놓은 구성이다. 코로나 확진자가 증가세를 거쳐 급증하던 2~3월에 집중된 기록이었다. 저자는 심상치 않은 바이러스 확진 추이를 짐작이라도 했는지 2월 초부터 코로나 일기를 적기 시작했다.

저자가 근무하던 병원이 코로나19 선별 진료소로 확대 개편되자 저자는 그곳에서 느끼고 보고 깨닫고 익히고 경험한 많은 일들을 기록했다. 임상의로 환자를 진료하는 일과 더불어 기초·연구 분야에 박학하고 다상량(多商量)해 단순한 하루 일상에서부터 급박한 호흡부전과 고열 환자를 처치하는 현장의 모습뿐만 아니라 바이러스라는 개념 일반, 특성 등을 쉬운 대상에 은유하여 풀어놓는 솜씨가 그만이었다.

고백하자면, 최근 일상이 엉망이었다. 무위했고 도식했다. 하루에 약간 량 글줄이나 읽고 저녁에 적는 하루 기록이 일상의 전부였다. 몸은 무기력했고 기분은 가라앉으며 기록은 먼지처럼 헐하게 느껴졌다. 최근에 벌어진 비극적인 사건 하나에 영향을 받기도 했다. 세상 권력과 명예 정점에 서 있던 인사하나가 삽시간에 생을 놓아버리는 순간을 마주하면서 그만 오만 의욕이 떨어져 나갔다. 모든 움직임과 기록이 무슨 의미가 있나 라고 여겼다.

그러던 차에 만난 이 두 달여의 기록은 나태한 삶을 재우쳤고 의욕을 불어넣어 주었다. 세상에 쓸모없는 존재와 흔적은 없으며 한낱 미생물인 바이러스와 세균도 오늘과 일상을 성실히 살아가는데 보다 고등 생물인 인간이 이래선 되겠냐는 깨달음이었다.

저자가 일러준바, 고등 존재만이 가질 수 있다는 긍정과 낙천의 마음을 먹기로 다짐했다. 어쩌면 오랜 코로나 시국으로 생긴 이른바 ‘코로나 블루(코로나19 시국이 오래 이어지면서 발생한 우울증)’일 수도 있겠다는 저자의 분석을 수긍했다.

책은 직업의사로서 코로나19 사태를 돌파하는 저자의 일상 말고도 바이러스라는 종의 특성을 상술한다. 인간의 특성, 오랜 습속과도 비교하고 대조해 흥미를 더한다. 얇은 소책자 분량의 책이지만 전하는 바는 결코 가볍지 않다. 간간이 전문적이고 학술적인 내용도 있지만, 각을 잡고 본격 학술서란 외피를 입고 쓰인 서적이 아니라 접근 장벽이 낮다. 저자의 해설 솜씨를 믿어도 좋다.

제목인 <바이러스와 인간>은 그런 면에서 지나치게 거창한 느낌이다. 그예 제목이 부담스럽다면, 만화 ‘아기와 나’ 혹은 영화 ‘녹차의 맛’과 같은 무게감으로 생각하면 한결 접근하기 쉽다.

코로나19 대폭풍을 지났는지는 모르나 우리는 여전히 바이러스 대유행한 복판에 있다.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마치 늘 염두에 두어야 할 가스 중간밸브처럼 경계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자연스레 현장에서 늘 고투하는 의료진을 떠올리게 됐는데 최근 서점가엔 그들을 그린 책들이 속속 출간되는 중이다. 고무적인 일이다.

종래 출간될 코로나19 백서와 더불어 현장 의료진의 기록은 인류를 구원했던 전사들의 위대한 유산이자 묵묵히 하루를 살아내고 제 일을 해내는 당당한 생활인의 흔적이 될 테니 말이다. 이낙원 저자의 <바이러스와 인간>도, 대구와 경북 지역 코로나 진료소 현장을 그린 이재태의 <그곳에 희망을 심었네>도 널리 읽혔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울러 미비하고 부실한 공공의료 시스템도 보강되고 확충되었으면 한다. 결국 의지와 선택 문제일 텐데, 이제 바이러스의 습격은 시나리오 안에서만 이뤄지지 않고 현실 속에서 번연히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낙원 지음/글항아리 출판)
(이낙원 지음/글항아리 출판)

본지가 지난 6일 보도한 #‘덕분에’라는 말보다 공공의료 확충 요구한 간호사들 기사에서 간호사들은 “대통령은 덕분에 챌린지라는 말보다도 ‘한 명이라도 더 살려야 한다’는 현장 간호사들의 간절한 외침에 답해야 한다”며 “환자의 생명이 손에 달린 간호사에게 다음은 없다”고 외쳤다.

이환희 기자

일생을 지망생으로 살았다. 가수지망생, PD지망생을 거쳐 취업지망생까지. 지망은 늘 지망으로 그쳤고 이루거나 되지 못했다. 현재는 이야기를 짓는 일을 지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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