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삼성과 고 이건희 회장의 유족이 발표한 상속세와 사회환원 내용과 관련 세간의 반응이 뜨겁다. 약 12조원. 전 세계적인 규모라는 상속세는 국내 상속세 3년 치 전체 분을 웃도는 수준이다.

더불어 이 회장 재산의 사회환원까지. 언론의 관심은 주로 희귀한 이 회장 컬렉션에 집중됐지만 1조원 가량의 기부금은 감염병 대응과 어린이 환자 지원에 쓰이게 된다. 이렇듯 다방면에 걸친 삼성과 이 회장의 관심은 헬스케어, 질병, 장애 문화에도 영향을 끼친다.

고 이건희 삼성 회장
고 이건희 삼성 회장

국내는 물론 세계적인 수준의 삼성서울병원은 삼성생명공익재단 산하로 1994년 11월 개원한다. 1100병상이란 규모에 철저한 ‘환자중심병원’이란 문화는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 의료진이 환자에게 하대던 문화가 남아있었기에 삼성병원이 보여준 파격은 입소문을 타고 우리의 의료 문화를 바꿔갔다. 촌지를 받던 관습도 타파했다.

의료 역량 역시 세계적이었다. 폐암으로 한 차례 쓰러져 삼성병원에서 진단과 치료를 받던 이 회장이 국내 사정으로 미국 MD앤더슨 병원으로 옮겼고 현지 의료진이 단층 촬영 영상만으로 이 회장의 병을 어떻게 발견했는지 감탄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제는 병원마다 병설해 수익에 큰 보탬이 되는 장례식장에도 이 회장의 눈길이 미쳤다. <월간조선>이 보도한 이 회장의 생전 육성에서 그는 “장례식장 가봤어? 꽃이고 음식이고 바가지 씌우고. 주변의 거지들은 다 몰려들어서 어수선한 분위기 만들고. 슬픈 유족들 더 슬프게 만든다”며 “삼성의료원이 그런 문화를 없애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장례식장이 깨끗하고 엄숙한 곳이라는 새로운 이미지를 삼성이 만드는 거야”라고 지시했다. 그의 지시로 변모한 삼성의 장례식장에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삼성의 변화가 국내 장례식장과 장례문화 변화의 단초가 됐다.

2015년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 사태 당시 중심에 있던 경험은 이 회장 사후 감염전문병원으로 눈을 돌리는 데 작용하지 않았을까. 삼성의 발표에 따르면 1조원 가운데 7000억원은 감염병에 대응하는 데 사용되고, 이 중 5000억원은 한국 최초의 감염병 전문병원인 ‘중앙감염병 전문병원’ 건립에 사용된다. 메르스와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정부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염원하던 시설이지만 재정부담 등의 문제로 검토만 하던 시설이었다.

중앙감염병전문병원은 일반·중환자·고도 음압병상, 음압수술실, 생물안전 검사실 등 첨단 설비까지 갖춘 150병상 규모의 세계적인 수준의 병원으로 건립될 계획이라고 알려졌다. 2000억원은 질병관리청 산하 국립감염병연구소의 최첨단 연구소 건축 및 필요 설비 구축, 감염병 백신 및 치료제 개발을 위한 제반 연구 지원 등 감염병 대응을 위한 인프라 확충에 편성될 예정이다.

3000억원은 소아암·희귀질환에 걸려 고통을 겪으면서도 비싼 치료비 때문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어린이 환자들을 위해 지원한다. 이로 인해 향후 10년 동안 소아암 환아 1만 2000여명, 희귀질환 환아 5000여명 등 총 1만7000여명이 도움을 받게 될 전망이다.

이 회장의 관심이 다방면으로 퍼진 건 타고난 성정과 외로웠던 이국에서의 유년생활도 작용하지만, 그가 겪은 일들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승용차를 몰다 2톤 트럭과 큰 사고를 겪고 폐암이란 지병을 앓던 기억이 질병과 병원시설 등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소문난 애견가였던 생애는 맹인안내견 훈련 사업으로 그를 이끌었다.

그는 “우리나라에 없는 사례를 삼성이 만들어. 우리가 잘 되면 경쟁사들도 다 따라오게 돼 있어”라는 말을 자주 했다. 이 회장과 삼성이 드리운 그늘도 작지 않지만, 그에 비례해 밝힌 빛도 한국 사회 각 분야에 닿았다. 세간의 인식과 달리 이 회장의 사회공헌에 대한 의지는 진심이었다.

이환희 기자

일생을 지망생으로 살았다. 가수지망생, PD지망생을 거쳐 취업지망생까지. 지망은 늘 지망으로 그쳤고 이루거나 되지 못했다. 현재는 이야기를 짓는 일을 지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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