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한국경제’는 오는 8월부터 삼성바이오로직스가 화이자의 위탁을 받아 코로나19 백신을 생산하게 됐다고 단독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위탁 생산의 규모는 연 10억 회분(5억 명분)으로 아시아 시장은 물론 국내에도 공급돼 백신 수급난에서 한숨 돌리게 됐다.

‘한국경제’는 정부 고위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해 인천 송도 삼성바이오로직스 3공장에 화이자 양산 설비를 마련했고 이를 바탕으로 8월부터 양산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사실이라면 굉장한 낭보였다. 기사는 한국 CMO(의약품 위탁 생산)업의 높아진 위상을 보여주는 것이라 추어올렸다. 반도체에 이어 제약, 바이오 부문에서 신수종 사업을 기르려는 삼성의 행보와 이로 인해 얻게 될 글로벌 백신 허브라는 부상을 조명했다.

SK바이오사이언스가 기술을 이전받아 생산하려는 노바벡스 백신 허가 지연과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혈전 부작용도 짚은 뒤 mRNA 방식의 화이자는 후유증도 보고되지 않았다며 이번 발표에 의미를 부여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3공장 기공식(출처 청와대)
삼성바이오로직스 3공장 기공식(출처 청와대)

오후가 되자 낭보는 사라졌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공식적인 부인이 나왔다. 회사는 이 보도와 관련 “사실이 아니다”라는 공시를 발표했다. 반나절의 기쁨이었다. 단순한 해프닝이라고 하기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경제신문이 보도한 비중이 작지 않다. 정부 고위 관계자가 확인을 해줬다는 대목도 쉽사리 보이지 않는다.

이를 두고 이재용 부회장 사면용 분위기 조성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 부회장이 세계적인 인맥을 활용해 ‘화이자’ 백신을 들여올 수 있다는 이야기는 몇 달 전부터 나왔다. 정부도 못 하는 일을 세계적인 기업인이 해낼 수 있다는 그림이었다.

그에 발맞춰 편법 승계를 완성하기 위해 국정농단을 조력했던 혐의를 차치하자는 반응이 나왔다. 백신 수급이란 위난을 해결하는 조건으로 죄를 덮어주자는 주장.

마치 2009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이건희 회장 단독 사면 같은 모양새였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IOC 위원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하던 이건희 회장을 단독 사면해 논란을 일으켰다. 이 회장의 혐의였던 삼성 비자금 사건은 이재용 부회장에게 회사를 물려주려는 편법 승계의 일환으로 벌어진 일이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3공장 기공식에 참석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출처 청와대)
삼성바이오로직스 3공장 기공식에 참석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출처 청와대)

화이자의 위탁 생산 공장으로 지목됐던 송도 3공장은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의 신사업 가운데 하나인 바이오산업을 위해 각별히 챙기고 살폈던 공장으로 꼽힌다. ‘한국경제’의 보도가 삼성, 이재용, 화이자, 백신 수급이란 연결고리를 불러일으킴으로써 사면론에 힘을 실으려는 노골적인 의도로 읽히는 까닭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화이자 백신 위탁 생산 보도는 오전의 해프닝으로 그쳤지만 ‘백신 수급’의 화급함을 앞세워 ‘이재용 구하기’를 모색하는 경제신문의 삼성 관련 보도는 골똘히 들여다볼 일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분식회계 사건)는 이재용 부회장 편법 승계의 두 가지 최종 고리 가운데 하나였다.

이환희 기자

일생을 지망생으로 살았다. 가수지망생, PD지망생을 거쳐 취업지망생까지. 지망은 늘 지망으로 그쳤고 이루거나 되지 못했다. 현재는 이야기를 짓는 일을 지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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