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늑장 백신계약으로 비난이 빗발치는 가운데 이를 보도한 언론에 외압을 가한 정황이 드러났다.

의료전문매체 <데일리메디>가 지난 16일 화이자·모더나 ‘코로나19 백신’ 구매 검토 없었던 듯 기사를 보도했다.

코로나19 감염병의 해결책으로 떠오르는 ‘화이자와 모더나’가 국내에서 긴급사용승인을 요청하거나 시도했던 적이 없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해당 기사에서 식약처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신속심사과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를 통해 “질병관리청으로부터 화이자나 모더나 코로나19 백신 특례수입(긴급사용승인)을 위한 검토 요청을 받은 바가 없다”고 밝혔다. 당시 정부는 아스트로제네카라는 백신 확보에 총력을 다하는 중이었다.

그로부터 한 달 전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회에 출석해 “화이자와 모더나가 한국에 연락을 해와 신속하게 계약을 체결할 것을 촉구했다. 백신 확보에서 불리하지 않은 여건에 있다”고 말했다.

한국이 아스트로제네카뿐만 아니라 모더나와 화이자의 백신 확보에도 적극적으로 나선다고 시사한 발언이다. 16일 <데일리메디> 기사에 따르면 박 장관의 발언은 거짓말이 된 셈이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8일 코박스 퍼실러티(COVAX Facility, 약 1000만 명분)와 글로벌 백신 기업(약 3400만 명분)을 통해 최대 4400만명 분의 해외개발 백신을 선구매한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박 장관의 발언은 사실이 됐다. <데일리메디>의 기사가 증발해버렸기 때문이다. 현재 해당 기사는 홈페이지에서 찾아볼 수 없다. 장관의 발언에 반하는 기사 내용이라 사라졌는가 하는 의혹이 이는 대목이다.

담당 기자는 에두르지 않고 이야기했다. 기사를 쓴 <데일리메디> 신지호 기자는 “식약처에서 기사를 내려달라고 요청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사실관계가 틀리지 않았고 식약처 관계자의 발언도 그대로 옮긴 기사였다.

<데일리메디>에서 식약처를 출입하고 백신 관련 기사를 전담하는 신 기자에게 이유를 묻자 “내가 쓴 기사 표현이 세고 예민한 부분이 있다고 해서라고 들었다. 데스크를 통해 요청을 받았는데, 데스크의 방침이라 (기사 삭제는)어쩔 수 없었다”고 답했다.

그는 이어 “전에도 코로나19 백신과 관련해 기사를 쓰면 어떤 대목은 표현이 세고, 어떤 표현은 이러저러해서 자극적이기에 우려가 된다”며 부서와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식약처 국장급 선에서 기사 수정 지시가 내려왔다고 전했다. 다른 기자와 타사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를 묻자 그건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의료전문매체 <데일리메디> 12월 16일자 화이자·모더나 ‘코로나19 백신’ 구매 검토 없었던 듯 기사 전문

삭제 기사 속에 등장한 식약처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신속심사과의 관계자와 통화했다. 부서장인 김희성 과장은 부서 직원이 <데일리메디> 기자의 전화를 받았다며 “일반적인 취재 관련 인터뷰 지원으로 기억한다”고 알려왔다.

기사를 삭제하라는 요청을 했냐는 물음엔 “수정이나 삭제 이야기는 아는 바 없다”며 “부서 관계자가 말했던 내용이 기사와 달랐지만, 우리 부서에서 따로 수정 요청을 전하거나 내려달라고 한 바는 없다”고 잘랐다.

김 과장은 “식약처의 대언론 대응 절차는 사실관계 확인을 거친 뒤 대변인실이 해명자료나 설명자료를 내는 것이 일반적이다”고 말했다. 해당 기사를 지원한 부서에서 수정 요청은 없었으나 신 기자의 증언에 따르면 식약처 요로(국장급)에서 <데일리메디> 상부 선을 거쳐 기사를 삭제하라는 압력을 넣었다는 추정이 드는 대목이다.

의료전문매체  12월 16일자 화이자·모더나 ‘코로나19 백신’ 구매 검토 없었던 듯 기사 전문
의료전문매체 12월 16일자 화이자·모더나 ‘코로나19 백신’ 구매 검토 없었던 듯 기사 전문

노환규 전 의협회장은 기사 삭제 사태를 전하며 자신의 페이스북에 “의약전문지는 보건복지부가 기사를 내리라고 하면 내려야 한다”고 적었다. 삭제된 기사의 기자는 답하지 않았지만, 의료전문지와 식약처 사이의 관행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방역 당국에서 코로나19 백신과 관련된 사실을 어떻게 취급하고 다루는지 이번 기사 삭제 건을 통해 짐작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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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환희 기자

일생을 지망생으로 살았다. 가수지망생, PD지망생을 거쳐 취업지망생까지. 지망은 늘 지망으로 그쳤고 이루거나 되지 못했다. 현재는 이야기를 짓는 일을 지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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