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국경없는의사회 구호활동가 유한나
이름: 유한나
포지션: 보건증진교육 매니저(Health Promotion Activity Manager)
파견 국가: 방글라데시
활동 지역: 콕스바자르(Cox’s Bazar)
파견 기간: 2019년 9월~2020년 8월
- 구호 현장에서 어떤 일을 하셨나요?
안녕하세요. 국경없는의사회 구호활동가 유한나입니다. 저는 2019년 9월부터 2020년 8월까지 11개월 동안 로힝야 난민 캠프 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Cox’s Bazar)에 머무는 로힝야 난민들은 3년 전 미얀마 군부의 폭력과 지속적인 차별을 견디지 못해 국경을 건너 이곳으로 피난을 왔습니다. 과거에는 코끼리들이 살던 언덕과 평야에 약 90만명이 밀집한 거대한 난민 캠프가 자리 잡게 된 것이죠. 국경없는의사회는 캠프 곳곳에 다양한 규모의 병원을 세우고, 필수적인 의료서비스(응급 의료, 분만 지원, 예방접종, 정신건강, 만성질환 치료 등)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난민 캠프에서는 대나무와 플라스틱 시트로 이루어진 약 7평 남짓한 집에 평균 5~6명으로 구성된 가정이 생활하고 있고, 공용 수도와 공용 화장실을 사용합니다. 대규모의 인원이 매우 제한되고 밀집된 환경에서 살고 있죠. 또 로힝야 난민들은 국적이 없기 때문에 안정적인 직업을 가질 수 없고, 국제기구와 비정부기구(NGO)에서 보급하는 식량에 생계를 의존하고 있습니다. 아이들 역시 적절한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고, 마음껏 놀 수 있는 공간조차 없이 생활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저는 보건증진교육(Health Promotion) 활동을 담당하는 매니저로,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로힝야 난민들이 늦지 않게 병원에 찾아와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다리를 놓는 역할을 했습니다. 많은 로힝야 난민들은 과거 미얀마에서 로힝야족이라는 이유로 병원에서 차별을 받고, 심지어는 적절한 치료조차 받지 못한 경험이 있습니다. 따라서, 현대 의학보다는 부적 등을 활용한 토속신앙이나 전통적으로 구전되는 치료법(예: 약초 치료나 전통 산파를 통한 분만)을 대안으로 이용하고 있죠.
우리 보건증진교육 팀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경없는의사회는 그 누구도 차별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지속해서 전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병원에는 항상 환자들이 긴 줄을 이룰 정도로, 난민들은 국경없는의사회에 높은 신뢰를 보이고 있습니다. 보건증진교육 팀에는 현지 로힝야 난민들도 많은데, 사회문화적 특성을 고려한 건강 관련 메시지를 로힝야족의 언어를 사용해 전달하기 위해서입니다.
- 지난해 초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확산됐는데, 코로나19 이전과 이후 활동은 어떻게 바뀌었나요?
지난해 초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확신되고 팬데믹이 선언되면서, 제가 활동한 로힝야 난민 캠프에서도 큰 영향이 있었습니다. 특히 제가 담당한 보건증진교육 활동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죠. 우선 코로나19 이전 보건증진교육 활동은 세 가지의 주요 건강문제를 우선순위로 두었는데, 바로 정신건강, 가정 내 분만과 감염병이었습니다.
코로나19 이전 활동
많은 로힝야 난민들은 미얀마에서 가족이나 이웃이 눈앞에서 폭행당하는 것을 목격하거나, 자신이 직접 그런 아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또는 이런 폭력의 위협으로부터 도망쳐 국경을 건넌 것이죠. 이런 상황은 난민들의 정신건강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난민 캠프에서 정신과 의사, 심리학자와 상담사가 있는 정신건강 진료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제가 담당했던 보건증진교육 활동은 어느 사회에나 존재하는 정신건강 문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터부시함을 극복하고, 정신건강의 중요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을 개선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또한 전통 산파(traditional birth attendant)에 의해 이루어지는 가정 내 분만의 위험성을 알리고, 분만을 위해 병원을 방문하도록 주민들을 교육했습니다. 산파들을 팀원으로 고용해서 직접 병원 내 분만을 유도하도록 하는 활동도 진행했습니다. 제가 활동한 캠프에서는 병원 내 분만율이 1년 전과 비교해 10배 이상 증가하기도 했답니다.
난민 캠프는 많은 인구가 비위생적인 환경에 노출돼 있어서 감염병의 위험이 큽니다. 실제로 매해 취약계층 아동들은 홍역이나 디프테리아 등 감염병으로 고통받았습니다. 따라서 보건증진교육 팀은 분기별로 캠프 내 모든 가정을 방문해 사망률과 그 원인을 모니터링하고, 감염병으로 의심되는 환자를 발견하면 이웃 가정을 추적 조사해 조기에 확인하고 치료받을 수 있도록 안내하는 활동을 계속해오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활동
지난해 초 코로나19가 확산된 이후에는 활동의 많은 부분이 코로나19 대응에 집중됐습니다. 지난해 4월 코로나19가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서 처음 확산될 무렵 난민 캠프 내에서는 잘못된 정보와 가짜뉴스가 만연했고, 그로 인해 사람들이 병원 방문을 꺼리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보건증진교육 팀은 코로나19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반복적으로 전파하고, 발생 현황을 주민들과 지속해서 공유했습니다.
로힝야 난민들이 재정적인 부담으로 마스크를 사용하지 않거나 가족이 마스크 한 개를 돌려쓰곤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집에서 마스크를 직접 제작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영상을 만들어서 캠프 내 가정과 재단사를 중심으로 지역사회에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캠프 내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에는 사람들이 이웃의 눈총을 받거나 관계 기관에서 자신을 쫓아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검사받기를 꺼리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환자들을 조기 발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지만, 우리는 환자와 가족이 이웃에게 차별받지 않도록 보호용품을 지원하고 일일 모니터링을 시작했습니다. 또한 지역 지도자와 협력해 ‘낙인 반대(Anti-stigma)’ 캠페인을 벌이고, 모든 관계 기관이 위협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로힝야 환자의 격리와 치료를 진행할 수 있도록 대화에 나섰습니다.
- 이번 활동에 참여하며 인상 깊었던 일이나 얻은 교훈이 있나요?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고단한 현실에서도 빛을 발하는 사람들의 강인한 생존력’이 가장 기억에 남을 같습니다. 우리 보건증진교육 팀원 중에는 고향에 어마어마하게 큰 농지와 집을 소유했던 사람도 있고, 공무원으로, 한 기관의 장으로 근무했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하루아침에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낯선 땅으로 와야 했지만,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일을 감사하게 여기고, 자신의 업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로힝야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여성의 사회 참여가 제한된 가부장적인 사회입니다. 우리 팀의 여성 팀원에게도 일하는 것이 정숙하지 않다고 비난하거나 단체에 항의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로힝야 여성이 가족의 생계를 짊어지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찾아 나서는 모습을 봤습니다. 한 예로, 우리 팀에서 10명 정도의 여성 팀원을 더 찾기 위해 공고를 냈을 때, 3일 만에 300개가 넘는 지원서가 도착했습니다. 어렵게 지원서를 작성하고 사진을 붙여 보낸 그 정성에 마음이 뭉클해졌습니다.
지금도 많은 로힝야 사람들이 자녀에게 더 나은 삶의 기회를 주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 등지로 향하는 배에 오릅니다. 그 험난한 여정에서 많은 사람이 질병을 얻기도 하고 심지어는 목숨을 잃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말이죠.
- 앞으로 어떤 계획을 하고 있나요?
아마도 몇 달간 휴식 시간을 가지면서 다음 활동을 준비하지 않을까 합니다. 다만 조금 더 다양한 활동 기회를 얻기 위해 프랑스어 공부를 시작해볼 생각입니다. 얼마나 걸릴진 아직 모르겠지만, 천천히 해보고 싶습니다.
- 미래 보건증진교육가에게 한마디
제가 보건증진교육가의 길을 걷게 된 것은 건강과 관련된 행동을 결정하는데 아주 다양한 요인이 있고, 이 요인들이 합리적인 방향으로만 움직이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흥미롭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예로, 대부분의 사람은 운동이 건강에 좋다는 걸 알지만, 실제로 운동을 하는지 여부는 개인마다 다릅니다. 이 경우 운동의 이점을 설명하는 건강 교육뿐만 아니라, 편리하게 운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거나 함께 운동할 수 있는 또래 그룹을 결성하는 등의 전략을 생각해 볼 수 있겠죠.
실제 현장에서 보건증진교육가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은 간호사나 의사 등 의학적 배경을 가진 사람부터 교육학, 인류학, 심리학 등 배경을 가진 사람들까지 매우 다양합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지역사회와 협업하는 것을 즐기고, 사회문화적 감수성이 높다는 점은 공통 사항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또한, 긴급 의료를 제공하는 것과 환자 중심적인 의료를 제공하는 것 사이에 균형을 이루도록 프로젝트팀 내에서 협의하고 제안하는 역할도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현재 팬데믹과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 코로나19 병상과 진단키트를 긴급히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환자들이 병원을 찾지 않으면 무의미하듯이, 환자 중심적인 활동을 통해 치료가 필요한 환자가 적절한 의료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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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없는의사회전 대학병원 연구원. 'MBN 세상의눈', '용감한 기자들', 'EBS 다큐프라임' 출연. 내부고발·공익제보 받습니다. healthtapa@gmail.com